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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지역

심층연구
Studies in Comprehensive Regional Strategies 12-11 12-11 전략지역심층연구 12-11
2012년 KIEP 연구보고서
무역이 고용 및 부가가치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정책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DDA 협상 지연의 요인 분석과 국제적 대응방안 남 신흥경제국가들에 대한 종합적·심층적인 이해를

한국 기발효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


아 위해 [전략지역 심층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 이의 일환으로 인도/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
무역자유화 효과의 실증분석과 정책 대응: 소비자후생을
중심으로
의 아시아/러시아/몽골,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지역에
대한 연구결과물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경제개방과 R&D 정책의 상호작용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토
저탄소 녹색성장정책과 다자무역규범 간의 조화:

주요 쟁점과 정책 시사점 문
제 [2012년 전략지역 심층연구 보고서]

Africa
신기후변화체제하에서 한국의 대응전략:
새로운 감축-지원 통합 메커니즘의 모색 연
국가 채무가 국가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 분석 구 12-01 한·인도 제약산업 비교분석을 통한 협력과 경쟁 전략
12-02 신정부 출범 이후 미얀마 개혁·개방에 대한 주요국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거시금융 정책의 평가와 시사점 대응과 시사점

금융시장을 통한 효율적 환헷지 방안과 정책적 시사점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12-03


12-04
미얀마 외교정책의 변화와 주요국과의 관계
자바 경제회랑에 대한 한·인니 산업협력방안
대규모 외부충격(disasters)이 거시경제 및 금융시장에 12-05 라오스의 인적자원개발 분야 ODA 현황과
미치는 영향
한국의 지원전략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과 유로존의 개혁과제 12-06 몽골의 투자환경과 한국기업의 진출 확대방안
12-07 중앙아시아 에너지 수출국 국부펀드의 특징과 시사점:
한ㆍ중ㆍ일 경제협의체 구상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최빈개도국 개발과제와 한국의 ODA 정책방향 12-08 카자흐스탄의 산업다변화 정책과 녹색성장 협력방안 연구
12-09 CAREC(Central Asia Regional Economic
G2 시대 일본의 대중(對中) 경제협력 현황과 시사점
Cooperation)의 현황과 한국의 협력방안
중국 도시화의 시장 창출 효과와 리스크 분석
The Study of Land Issues in South Africa 장용규 12-10 러시아·중국·인도 삼각협력체제의 전략적 함의와
시사점
중국기업 연구개발 투자의 특징과 시사점 황규득
12-11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중국ㆍ대만ㆍ홍콩의 경제통합과 정책적 시사점 설병수
Yongkyu Chang, Kyudeug Hwang, Byung-Soo Seol, Kyoung Hwa Kang 12-12 동부아프리카 2개국(에티오피아, 케냐)의
강경화 사회경제개발 역량강화를 위한 협력방안 연구
러시아의 해외직접투자 패턴과 한국의 투자 유치 확대방안 and Bethel Ghebru
베 텔 12-13 에티오피아의 중소기업 발전과제와 한국의 개발협력
한국의 메콩 지역개발 중장기 협력방안: 농업, 인프라 및
방안
인적자원개발을 중심으로
2001년 남아공 정부는 향후 15년 안에 농지의 30%를 재분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토지재분배 정책을 발표했다. 하 12-14 브라질 북동부지역의 투자환경과 한국의 진출 확대방안
동남아 주요 국가들의 인력송출 현황과 한국의 대응방안 지만 2010년 남아공 정부는 토지 개혁의 실패를 인정했다. 2009년 말까지 농지 가운데 불과 6.9%-약 567만 헥타 12-15 중남미 엘리트집단 특성에 관한 연구
르-만이 재분배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추진 의지부족과 아파르트헤이트의 잔재 등이 그 원인으로 지적되는 가 강장 12-16 이슬람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구조와 위험요인
아시아 주요국의 대인도 경제협력 현황과 시사점 경용
운데, 남아공 정부는 2011년에『토지개혁청서(Green Paper on Land Reform)』
를 발표했다. 이 정책은‘자발적 구매 화규 12-17 이란의 정치·권력구조와 주요 정파별 경제정책
안데스 자원부국과의 경제협력 확대 방안: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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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발적 판매자’원리를 재검토하고, 시장 주도적 토지 개혁을 폐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2-18 싱가포르의 주요 산업: MICE, 의료관광을 중심으로
에콰도르,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베황
규 12-19 조지아의 주요 산업: 교통인프라, 정보통신 산업을 중심으로
중동지역 정세변화에 따른 대중동 新경제협력 방안 모색 텔득 12-20 멕시코의 주요 산업: 석유화학,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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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요르단의 주요 산업: 전력, 의료 산업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건설ㆍ플랜트 시장특성 분석 및 한국의 진출방안 설
병 12-22 모잠비크의 주요 산업: 전력산업, 농업을 중심으로
북한의 시장화 현황과 경제체제의 변화 전망 수 12-23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Ⅰ: 인도, 동남아시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의 진로모색과 시사점 12-24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Ⅱ: 중앙아시아


12-25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Ⅲ: 러시아, 몽골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경제의 진로모색과 시사점 Republic of South Africa 12-26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Ⅳ: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EU 금융감독 및 규제변화 137-747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대로 246
T.02-3460-1001 F.02-3460-1122 http://www.kiep.go.kr 정가 10,000원
전략지역심층연구 12-11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장용규ㆍ황규득ㆍ설병수ㆍ강경화ㆍ베 텔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국문요약❙

본 연구의 목적은 17세기 중반 남아공에서 아프리카인과 백인 정착민이


접촉한 이래 뜨거운 쟁점이 되어온 토지 문제의 복잡성과 함의를 역사적․사
회경제적 맥락에서 고찰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목적하에 먼저 남아공 사람들
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을 살펴보았다. 둘째, 식민지 시대 이전의 토지 보
유 체계 및 17세기 중반 이후 유럽인 정착민의 토지 수탈 과정을 고찰하였
다. 셋째,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여러 부정적 측면을 토지 관련 정책의 맥락
에서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뒤 아프리카민
족회의가 주도하는 흑인 정권이 들어선 199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남아공
토지 정책에 대해 살펴보았다.
토지에 대한 남아공 반투인의 태도는 오랜 역사와 사회관계를 통해 몸속
에 각인되어 온 DNA와 같은 것이다. 반투인의 토지 관계는 기본적으로 가
족, 친족, 마을 공동체 등 다양한 층위의 사회 집단과 구성원이 맺고 있는 사
회관계를 통해 굳어져왔다. 남아공의 토지는 관습적으로 ‘다중의 보유권’이라
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특정 토지의 ‘법적’ 보유권자가 없는 상태에서
두 명 이상이 보유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남아공 반투 사회의
토지 관계는 마을 공동체와 집안 내부의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식민지 시기 이전의 남아공에서 반투인은 대체로 수렵-채집, 목축, 농경-목축
혼합 경제를 통해 삶을 영위했다. 그 당시 토지 보유 체계는 공동체 구성원들
에게 토지를 비롯한 모든 천연자원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권을 허용했다. 상
이한 생계 방식을 가진 집단들 간에는 인적․물적 교류도 빈번했다. 그러나
유럽인이 남아공에 도래한 이후 토착적 토지 보유 체계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17세기 이후 남아공은 소수의 백인 정착민과 영국 제국주의의 영향력 아
래 놓여 있었으며, 이들이 기획하고 추진한 토지 정책에 대부분의 아프리카
인이 끌려다니게 되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인은 소수의 백인 정착민에 의한
토지 강탈의 역사를 경험했으며, 자신들이 대대로 경작해 왔던 농지의 대부
분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렇듯 토지와 관련된 남아공의 역사는 백인 정착민
에 의한 지배와 착취로 얼룩져 있다. 이것은 남아공 토지 문제의 중심에는 식
민지 정복과 토지 강탈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네덜란드계 백인 정착민인 아프리카너 집단이 남아공의 패권을 장악한
1950년대 이후 남아공은 토지의 사적 보유권을 제도적으로 도입했다. 이는
관습에 기초한 반투 사회의 토지에 대한 인식과 충돌하면서 반투인과 토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러한 변화는 대개의 남아공 농민들에게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해 왔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남아공 반투인의 토지
를 강탈하기 위해서 독소 조항을 담은 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남아공
반투인은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쫓겨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지정한 보호구역(Bantustan)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남아공 전체
면적의 70% 이상을 전체 인구의 15% 안팎이었던 백인 정착민이 차지하는
기형적 토지 점유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남아공 토지 문제의 출발점이
고, 현재까지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1990년대 초반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후 남아공은 시장 주도적인 토지
개혁 프로그램들을 가동시켜왔다. 이 프로그램들은 아주 야심적이며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총체적으로 왜곡된 토지 분배 체계의 부
당함을 바로잡고, 빈곤을 감소시키고, 지속 가능한 토지 이용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 토지 보유 형태를 확립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에 등장한 여러 정부들은 남아공 전통 토지


체계의 유산을 장려하거나 보호하려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왔다. 하나의 결과로서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의
토지 개혁 정책들은 실패, 양면성, 모호함, 딜레마, 모순 등의 단어로 특징지
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남아공이 식민지 지배를 통해 형성된 사회질서를 청
산하지 못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토지에 기반한 생계는 농촌과 도시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요
하다. 높은 실업률과 불안정한 도시 소득의 맥락에서, 그들은 천연자원을 통
해 식량, 주거지 및 소득의 원천을 확보하고, 소규모 농업이나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이러한 원천이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생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긴요하다는 사실은, 이것이 빈곤 감소를 목적으로 하는 각종 정책과 프로그
램에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지 및 천연자원과 관련된 토지 보유 문제
는 탈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공이 직면한 핵심 문제 중의 하나이다.
다른 한편, 때때로 잠재적이기도 하던 토지 개혁이 현재는 더욱 두드러지
고 있다. 과거와 미래에 관한 국가적 논쟁에서 토지 개혁은 항상 정서적이고
상징적인 측면을 지닌다. 유사한 맥락에서 토착적 토지 체계를 보존하려는
프로그램과 정책의 주창자들은 이 체계가 순수하게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생태학적․문화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정부는
토지 정책을 숙고하는 과정에서 토착적 토지 체계와 관련된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그 체계가 생계 목적을 위
해 농민들에게 충분한 토지 접근권을 실제로 제공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게다가 어떤 미래의 정부 정책은 해당 공동체와 개인에게 선택의 융통성과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남아공에서 토지 개혁의 주된 목적은
토지 권리의 공정하고 정당한 변화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남아공 사
람들, 특히 여전히 대부분의 거대 농장을 보유하고 있는 아프리카너와 관행
에 따른 소규모 농업에 의존해야 하는 반투인은 토지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
다는 점이다. ‘자발적 구매자와 자발적 판매자’의 원리하에 시행된 정부 정책
은 자유 시장의 원칙에 입각해, 토지 문제를 토지 판매자와 토지 구매자의 자
유 의지에 떠넘기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너와 반투인
모두 농경지를 떠나서 살 수 없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토지 개혁 문제는 남아공의 잠재적 분쟁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토지를 강제로 몰수하지 않고 백인 농장주와 가격 협상을 벌여 원소
유주임을 주장하는 흑인 주민에게 배분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협상이 원
만하게 진행되지 않아 겨우 4%만이 이전되었다. 지금 같은 속도로 업무가 처
리되면 토지 분쟁이 해결되는 데는 60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으로 인해, 남
아공 흑인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면 정치 불만으로 표출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차 례

❙국문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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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 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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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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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 목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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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구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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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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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아공의 토지와 생활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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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지에 대한 반투 사회의 인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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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반투인의 토지 이용 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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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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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민지 시대 이전의 토지 보유 체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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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인의 도래와 토지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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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아파르트헤이트 시대(1948~93년)의 토지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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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8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토지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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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70년대부터 1993년까지의 토지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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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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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아공 사회의 변화와 토지 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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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지 개혁 정책의 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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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토지 개혁 상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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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토지 개혁 정책의 제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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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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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지 개혁 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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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지 재분배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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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토지 반환 및 보상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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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토지 보유 조건 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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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요약 및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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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남아공 토지 문제 관련 정책적 제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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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아공 토지 관련 아카이브 구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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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아공 토지 관련 전문가 육성 및 네트워크 구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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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아공 민관과의 ‘지속 가능한 토지 개발’ 협력 모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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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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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부 록: 남아공의 경제 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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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Executive Summ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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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차례

표 5-1. 토지문제부의 1996~97년 예산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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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2. 남아공의 헥타르당 토지 평균가(1995~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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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3. 주별 헥타르당 실제 평균가(1995~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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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4. 토지 수요 및 교부 상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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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5. 전체 토지 거래 및 전체 상업 농지 거래에서 재분배된 토지 비중
(1995~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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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6. 전체 토지 거래에 분배된 주별 토지 비중(1995~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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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7. 전체 상업 농지 대비 전체 토지 거래의 주별 비중(1995~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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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8. 행정 장관 자치구의 토지 재분배 프로젝트 보급률(1994~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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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9. 주별 토지 청구 건수의 비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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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10. 남아공의 주별 보유 조건 프로젝트의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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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6-1. SLAG와 LRAD 정책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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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6-2. LRAD의 핵심 목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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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6-3. PLAS의 주요 기대 목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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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6-4. 주별 토지 반환 청구 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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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6-5. 토지 보유 조건 개혁(2008년 3월~2009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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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차례

그림 2-1. 남아공의 식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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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 남아공의 인구 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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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다중적 토지 보유 체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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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1. 반투인의 초기 정착지와 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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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2. 남아공의 정착지(1700~184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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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3. 보어인의 대이주(1836~4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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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4. 1899~1910년의 남아공 역사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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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1. 10개의 반투스탄 영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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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2. 인종적 집중 및 홈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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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3. 1961~90년까지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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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1. 1994년 이후 남아공의 주요 토지 개혁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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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상자 차례

글상자 8-1. 1차 자료의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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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제1장 서 론

1. 연구 배경
2. 연구 목적
3. 연구 방법
1. 연구 배경

현재 아프리카의 토지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과거 ‘황금광 시대(Gold


Rush)’에 비견할 만하다. 세계은행 보고서(The World Bank 2010)에 의
하면, 전 세계적으로 약 4,500만 헥타르의 땅이 타국에 임대 및 매매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중 아프리카 대륙 내 토지의 임대 또는 매매 비율은
전 세계 임대 및 매매 면적의 70% 가량을 차지한다. 반면 아프리카개발
은행(Gurara and Birhanu 2012)의 보고서는 사뭇 다른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아프리카개발은행은 전 세계적으로 8,000만 헥타르에 달하는 임대
및 매매된 토지 중 아프리카의 비중이 64%(약 5,000만 헥타르)라고 밝히
고 있다(Gurara and Birhanu 2012, p. 1). 두 기관의 수치를 놓고 볼 때,
심지어 보수적인 세계은행조차,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의 토지를
향한 ‘토지광 시대(Land Rush)’1)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토지광 시대’는 해외 주요 국가들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라는 공격적 방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 국가는
매입 또는 임차한 토지에 대규모 플랜테이션(plantation)을 조성해 자국의
식량 안보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중
동 국가들은 급속한 산업화와 사막화 등으로 인한 경작지 부족을 아프리
카 대륙에서 토지 임차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남수단

1) ‘토지광 시대’는 주로 부유한 (서방) 국가들이 저발전 국가의 땅을 매입 또는 임차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이유로 ‘토지광 시대’는 새로운 식민 지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날레파(Rachel Nalepa)는 아프리카 국가 중 (남)수단,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가
나와 모잠비크가 주요 대상 국가이며, 지난 몇 년 동안 사하라 이남에 위치한 27개 국가
에서 5,100만에서 6,300만 헥타르에 해당하는 토지가 임차 또는 매매되었다고 밝히고 있
다(Nalepa 2011, p. 16).

1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South Sudan) 등지에서 토지를 임차하고 있지만, 아직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왜 21세기에 접어들어 세계는 아프리카의 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새로운 아프리카 분할(New Scramble for Africa)’이라고 불릴 정도의 아
프리카 토지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2008년 세계 식량 가격이 세계 최고
치를 기록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식량 자급이 충분치 않고 토지가 부족한
유럽과 아시아, 중동 국가들이 자국의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나 투자 목적
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농지를 임차 또는 매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프
리카 국가들은 자국민을 위한 경작지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국
가 재정 확보라는 유혹에 자국의 땅을 팔아넘기고 있다. 이처럼 토지는
아프리카의 풍부한 광물과 함께 ‘아프리카의 자원’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토지문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조심스런 접
근을 필요로 한다.
먼저, 아프리카 토지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프
리카의 토지 문제는 점차 가용 경작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도 첨예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에 1인당 13.5
헥타르에 달했던 경작 면적이 불과 55년 사이(2005년 기준)에 1인당 3.5
헥타르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경작 면적 축소는 대부분 아프리카 대
륙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함께 토지의 산성화와 사막화로 이어지는 환경
파괴에서 비롯된 것이다.2) 또한 토지의 산성화와 환경 파괴 등으로 인한
경지 축소는 경제적 재분배와 정치 안정 등의 문제와 긴밀하게 얽혀 있

2) The World Bank(http://go.worldbank.org/9H7HC6KZI0). 현재 아프리카 전체의 경작 가용


능력은 이 대륙의 18% 정도에 불과하다.

제1장 서론 ❙ 13
다. 아프리카의 토지 문제는 경제적 평등과 토지의 재분배, 그리고 이를
통한 정치적 정의 실천이라는 문제에까지 확대된다. 특히 최근의 토지 재
분배 문제에서는 젠더 이슈와 관련해 여성의 토지 보유권(tenure rights)
문제가 뜨거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경작지 부족 문제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식량 안보에 위협적인 요소이다. 때문에 국제 사회와 아프리
카 국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속 가능한 토지 개발’에 관심을 두
고 있다.
다른 한편, 아프리카의 토지는 관습에 따른 소유권과 법적 소유권이 혼
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의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은 대개 소
작농이다. 이들은 아프리카 전체 식량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식량 안보의
주춧돌이다. 문제는 이들이 법적 소유권과는 무관하게 관습에 따른 토지
보유권을 갖고 있어, 외국의 일방적인 ‘토지광 시대’는 소작농들의 반감
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국가의 일방
적인 토지 수용으로 인해 지역민의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케냐에 진출했
던 남아공의 회사가 지역 주민들의 토지 수용 반대에 부딪혀 결국 사업을
접은 것은 좋은 예이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토지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접
근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토지 개혁이 불평등했던 과거에 대
한 역사적 보상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은 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는 경제
정의 실천이지만, 토지에 대한 법적 보유권을 갖고 있는 유럽인 정착민의
입장에서는 토지 사유권 침해이다. 유럽인 정착민의 이런 입장으로 인해
토지 개혁은 첨예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의 토지 문제는 경제적 가치와 함께 역사성, 사

14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회․문화적 가치, 정치적 가치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관점에서 조명되어
야 한다. 특히 남아공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적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
들에서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강제 수탈을 당한 토지에 대한
반환 또는 보상 문제는 여전히 첨예한 사회 문제로 남아 있다.
국내에서는 아프리카의 토지 문제와 관련된 논문이나 정책 보고서 등
의 출판이 부진한 편이다. 기존에 출판된 논문이나 정책 보고서 등은 대
부분 개괄적인 내용과 함께 토지 정책과 관련해 외국인 직접투자의 한 방
편으로 접근하고 있다. 물론 세계 각국이 자국의 토지 부족을 아프리카
대륙에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아프리카 토지
와 직접 투자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아프리카 토지 문제에 대한 학술적 접근은 향후 우리 정부의 對아프리카
개발 협력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를 위
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토지 관련 법규가 가장 잘 정비되어 있는 남아공의
토지 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연구 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남아공의 토지 문제를 다각도에서 고찰함으로써, 향


후 대남아공 진출 전략 수립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다. 국
내외에서 출판된 남아공 토지 관련 보고서나 논문은 토지의 경제적 가치
나 법적 소유권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보고서와 논문
이 남아공의 토지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아공
토지 문제의 복합적 성격을 조명하기에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현 남아공

제1장 서론 ❙ 15
의 토지 문제는 남아공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 및 사회 구조와 밀접한 관
련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남아공의 토지 문제는 정치․경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본 보고서의 목적
은 남아공 토지 문제에 대한 복합적 접근을 통해 기존의 연구 결과물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는 데 있다.
먼저, 남아공 토지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남아공 토지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은 토지와 관련된 관습의 이해를 토대로 한다. 관습적
으로 남아공의 토지는 ‘공유지’라는 개념이 발달해왔다. 즉, 남아공의 토
지는 전통적으로 왕이나 추장 등이 보유하고 있는 공유지를 지역민에게
임대해 주는 관습적 ‘보유 체계(tenure system)’를 유지해 왔다. 일반적으
로 ‘토지에 대한 관습법’이라고 알려진 이 제도는 토지의 보유권이 지역
의 세력가(왕이나 추장)에게 있는 동시에, 토지를 임차한 소작농이 그 토
지를 점유, 상속할 수 있는 실질적 보유권을 보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토지에 대한 ‘법적 이중성(legal dualism)’ 또는 ‘법적 다중성(legal plural-
ism)’이라고 한다. 이런 관습에 따른 ‘토지 보유’의 문제는 토지 보유권이
성문화된 법적 제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특정 개인의 토지
보유 기준은 추장과 지역민들이 ‘관습’에 따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테두
리 안에서 인정된다. 원천적으로 특정 지역의 토지는 그 지역을 관할하는
왕이나 추장의 소유이다. 하지만 일단 특정 개인이 토지를 분할 받으면,
그 토지의 사용권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 있다. 개인이 토지를 일정
기간 방치하지 않는 이상, 왕이나 추장도 그 토지를 회수할 수 없다.
관습에 따른 ‘토지보유의 다중성’의 문제는 현대 사회의 환경에서 ‘토
지 문서’라는 성문화된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 소유권을 놓고 법적 공

1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남아공 정부가 토지
보유권의 성문화를 위해 토지를 구획하고 이를 실거주자에게 매매하려고
하자, 지역 주민들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토지
보유권과 관련된 이런 문제는 특히 관습법이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되는
농촌 지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례이다.
두 번째, 토지에 대한 실질적 보유권을 보유하고 있는 남아공 사람들은
토지를 단순히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이들은 토지에 대해 강
한 정서적 연대감(emotional solidarity)을 가지고 있다. 이 정서적 연대감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친족 중심의 토지 소유관계나, 토지의 대한 종교적
의미 등을 포착해야 한다(De Beer 1995, pp. 2-3; 2006, p. 24). 대개의
남아공 사람들에게 있어 토지는 단순히 생활 터전의 차원을 넘어서 역사
적․문화적․정신적 중요성을 지닌다. 토지는 남아공 사람들의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유지․강화해 주는 사회 체계의 기반이다. 달리 말해, 남아공
의 토지에 대한 이해는 경제적 차원의 접근과 함께 인문학적 이해가 수반
되어야 한다.
따라서 본 보고서에서는 남아공 토지에 대한 관습적 인식과 이용 방법,
유럽인 정착민의 토지 수탈 전개 과정을 살펴본 뒤, 이를 바탕으로 1994
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African National Congress) 정권이 들어선
이후의 토지 정책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2000년 이후 도입된 토지 정
책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를 중심으로, 현재 남아공의 토지 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제1장 서론 ❙ 17
3. 연구 방법

본 연구 사업에서는 문헌조사와 현지조사가 병행되었다. 다만 5개월이


라는 짧은 기간에 연구를 수행해야 했던 점을 감안할 때, 깊이 있는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결과물 제출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따
라서 본 연구진은 남아공 토지 관련 문헌을 분석하는 한편, 짧은 기간의
현지 방문을 통해 남아공 토지 연구자와 관련 기관의 전문가를 만나 연구
주제와 관련된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 현지조사는 2012년 7월 17일에서
26일까지 10일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프리토리아
(Pretoria)와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진행되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지사를 방문해 각 지사의 차장과 소장을 만나 해외 투자와 관련된 남
아공 토지법에 관해 면담을 실시했다. 프리토리아에서는 남아공 현지 변
호사를 만나 남아공의 토지수용법에 대해 면담을 가졌다. 케이프타운에서
는 인문과학연구위원회(HSRC: Human Sciences Research Council)와 웨
스턴케이프대학교(UWC: University of the Western Cape)를 방문했다.
인문과학연구위원회에서는 피터 제이콥스 박사(Dr. Peter Jacobs)와 토지
재분배(land redistribution) 문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면담을 가졌다. 웨스
턴케이프대학교에서는 벤 카즌스 교수(Prof. Ben Cousins)와 토지 재분
배, 토지 보유(land tenure)를 둘러싼 남아공의 토지 문제 및 개혁 이슈
전반에 대해 심도 있는 면담을 진행했다.

18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제2장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

1. 남아공의 토지와 생활양식


2. 토지에 대한 반투 사회의 인식
3. 반투인의 토지 이용 관행
1. 남아공의 토지와 생활양식

세계에서 25번째로 큰 국가인 남아공은 120만㎢의 면적을 가지고 있


다. 이 면적은 한반도의 약 다섯 배에 해당한다. 남아공 지형은 크게 해
안(cost-line) 평야와 해안 내륙(costal marginal zone), 드라켄스버그
(Drakensburg)3) 산맥을 중심으로 한 급경사면(great escarpment)과 중북
부의 고원 평야 지대(plateau)로 구분된다. 남아공 지형은 해안에서 시작
해 내륙으로 60~240㎞가량 펼쳐진 평야 지대와 드라켄스버그 산맥 너머
형성된 1,600m 이상의 내륙 고원 평원으로 구성된다. 남아공의 해안은
접안이 용이하지 않아 자연 항구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남아공의 주요
항구인 케이프타운과 리처드베이(Richards Bay), 더반(Durban)과 포트에
드워드(Port Edward) 등은 모두 인공 항구이다.
해안 내륙은 주로 저지대 평야로 급경사면에서 흘러 내려오는 크고 작
은 강과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역은 비옥한 충적토와 풍부한 강
수량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사짓기에 적합한 지중해성 기후(케이프
타운 일대)와 아열대 기후(더반 일대)에 속해 남아공의 곡창 지대로 꼽힌
다. 특히 크와줄루-나탈(KwaZulu-Natal) 주(州)의 더반에서 음팡게니
(Mpangeni)에 이르는 70㎞가량의 지역은 아프리카 최대의 사탕수수 플
랜테이션이 조성된 곳으로 유명하다.

3) 드라켄스버그(3,482m)라는 이름은 백인들이 지은 이름으로, ‘용(Draken)’의 ‘산맥(berg)’


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드라켄스버그 산맥은 크게 북부, 중부, 남부 지역으로 나뉜다. 드
라켄스버그는 2000년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남아공의 응구니 사람들은 이 산
맥이 마치 창날을 일렬로 세워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우카흘람바(Ukhahlamba)’라
불러 왔다.

2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그림 2-1. 남아공의 식생

자료: http://images.nationmaster.com/images/motw/africa/south_africa_veg_1979.jpg

드라켄스버그 산맥을 중심으로 형성된 급경사면은 내륙 고원 평야 지


대와 해안 저지대 평야를 가르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 드라켄스버그 산맥
북쪽의 내륙 고원 평야 지대는 서쪽으로는 반건조(semi-arid) 사막 지형,
동쪽으로는 고대륙에 속한다. 따라서 내륙 평야 지대는 농경지로 적합하
지 않은 토양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7~8월 사이에 한랭한 겨울 날씨
를 보여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다.4) 다만 동북부 고대륙은 자
원의 축복을 받은 지역으로 남아공 경제의 중추인 다이아몬드 광산과 금
광 등이 발달되어 있다.5)

4) 실제로 남아공에서 경작이 가능한 토지 면적은 전체 국토의 12% 정도에 불과하다.


5) 아프리카의 고대륙은 남아공 북부에서 시작해 보츠와나 일부와 잠비아, 콩고민주공화국까지
이어진다. 이 지역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광물이 가장 풍부하게 매장된 곳으로 유명하다.

제2장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 ❙21


남아공의 생태계(ecosystem)와 문화권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산솜
(Sansom 1974)은 남아공의 지형을 크게 서부(북서부 내륙 고원 평야 지
대)와 동부(해안을 따라 형성된 저지대와 동북부 고원 평야 지대)로 구분
한다. 두 지형은 남아공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드라켄스버그 산맥을
중심으로 나뉜다. 내륙 고원 평야 지대는 1,600m 이상의 고원에 끝없는
사바나 평원이 펼쳐진 것이 특징이다. 일찍이 이 지역에 정착했던 소토-
츠와나(Sotho-Tswana) 계열의 반투인6)은 지형상 농경이 용이하지 않으
므로 목축에 의존하는 경제 활동을 유지해왔으며, 19세기 초반에 케이프
타운에서 이주해온 유럽인 정착민에게 많은 땅을 빼앗기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일대에는 지하자원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어, 일찍이 광
산을 통한 토지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된 곳이 많다. 남아공 현지인들에게
는 ‘금의 땅(eGoli)’로 알려져 있을 만큼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밀집
되어 있는 곳이다.
반면 동부 지형에는 응구니(Nguni) 계열의 반투인이 정착했다. 동부
지형은 드라켄스버그 산맥에서 흘러내린 크고 작은 강과 언덕으로 형성
되어 있다. 특히 강어귀의 충적토는 농경에 적합해 응구니인의 기본적인
생산 양식을 형성했다. 하지만 동부 지형에 살던 반투인도 19세기 이후에
이주를 시작한 유럽인 정착민에게 밀려 대부분의 땅을 내주게 된다.
두 지형의 생태계는 그레이트피쉬 강(Great Fish River)에서 보츠와나
를 지나는 강우선을 중심으로 여름 집중 강우 지역과 건조 사막 지역으로

6) 반투인은 남아공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을 총칭하는 말이다. 반투인은 사하라 이남 아


프리카를 지배하고 있는 인종으로, 남아공에는 남부 반투(Southern Bantu)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남부 반투인에는 남아공을 대표하는 다양한 아프리카 민족, 예를 들어
줄루(Zulu), 코사(Xhosa), 소토(Sotho), 츠와나(Tswana), 통가(Thonga) 등이 속해 있다.

2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구분된다. 여름 집중 강우 지역은 남아공의 한겨울인 7월과 8월 사이에
500㎜ 이상의 강우량을 보이는 지역을 가리킨다. 동부 지역이 대체로 여
기에 해당하며, 서부 지형에 해당하는 북서쪽 내륙 고원(트란스발, 보츠와
나, 나미비아 등)으로 올라갈수록 강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 특히
이 지역은 겨울철에 서리가 내릴 정도의 추위로 인해 농작물 재배가 어려
운 곳이 많다. 동부 지형 중 내륙 고원에 해당하는 동북부(림포포, 움흘랑
가, 짐바브웨)는 서북부 고원 지대에 비해 강수량이 많지만, 역시 혹독한
겨울 추위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낮은 지역이다.
반면 남아공에는 좁은 해안을 따라 크고 작은 강이 흘러내리며, 강어귀
에 충적토가 쌓여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 평야 지대는 곡물 재배에
유리하며, 특히 연평균 19℃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크와줄루-나탈 주는
비옥한 해안의 평야 지대와 함께 풍부한 강수량을 보유하고 있어 남아공
을 대표하는 곡창 지대로 꼽히고 있다. 이런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남아
공의 인구는 전 국토에 걸쳐 골고루 분포하지 못하고 동부 지형에 밀집되
는 경향을 보여 준다(그림 2-2 참고).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웨스턴케이
프와 노던케이프)은 대개 주거지나 농경지로 부적합한 반건조 지역이라,
실제로 많은 곳이 황무지 상태로 있다.
남아공의 토지 이용은 유럽인 정착민이 소유하고 있던 상업형 대농장
또는 광산과 반투스탄에 살고 있던 반투인 소유의 생계형 소규모 농장으
로 크게 구분된다. 남아공에는 이미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사탕수수와
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상업형 농업
이 발달했다.

제2장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 ❙23


그림 2-2. 남아공의 인구 밀도

자료: http://rava.qsens.net/themes/human-settlements-version-2/images-1/2011-10-13%203d%20no%20
rainfall.jpg/image_large

상업형 농업은 아프리카너(Afrikaner)라 불리는 유럽계 남아공 정착민


들이 주도해온 방식이다. 현재 남아공에 있는 옥토의 대부분은 이들이 소
유하고 있는 사유지이다. 땅에 대한 이들의 집착은 역사적으로 아프리카
사회와의 크고 작은 갈등을 불러왔다. 하지만 남아공의 정치․경제력을
장악한 유럽인 정착민은 아프리카인이 차지하고 있던 옥토를 강제로 몰
수한 뒤 이를 사유화하는 데 성공한다. 결과적으로 1950년대에 남아공 전
체 토지의 80% 이상을 전체 국민의 15% 안팎에 불과한 유럽인 정착민이
소유하는 불균형적인 토지 보유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문제는 1994
년에 들어선 아프리카민족회의 정권에게는 뜨거운 감자였으나, ‘자발적

24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구매자/자발적 판매자(willing-buyer/willing-seller)’ 정책을 펼치는 현 정
부의 소극적 정책으로 인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2. 토지에 대한 반투 사회의 인식

남아공에서 토지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물질적․상징적 공간이다.


이는 남아공의 아프리카인 사회뿐만 아니라 유럽인 정착민 사회도 마찬
가지이다. 특히 남아공의 주류 아프리카인인 반투인과 유럽계 정착민인
아프리카너에게 있어 토지는 곧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다. 이들에게 토지
는 자신들의 정체성 자체이기도 하다.7) 특히 토지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한 아프리카너에게 토지는 삶의 근원이기 때문에, 남아공 정부가 추진
하고 있는 ‘자발적 판매자(유럽인 정착민)와 자발적 구매자(아프리카인)’
정책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아프리카너 못지않게 반투인도 토지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특히 토
지에 대한 반투인의 인식은 친족, 종교, 관습 등과 촘촘히 얽혀 있기 때문
에, 토지를 단순히 매매 가능한 상품으로 생각하는 외부인의 시각에서 이
해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Hammond-Tooke 1998; Schapera
1956[1937]).
토지에 대한 남아공 반투인의 태도는 오랜 역사와 사회관계를 통해 몸

7) 남아공의 유럽인 정착사는 곧 토지 보유를 둘러싼 반투인과의 투쟁사를 의미한다. 유럽인


정착민, 특히 보어인이 1830년대 말 케이프타운을 떠나 ‘대이주(The Great Trek)’를 시
작한 이후, 그들과 반투인 간에는 100여 년 동안 토지 쟁탈전이 벌어지게 된다. 결과적으
로 1940년대 말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시작될 무렵, 남아공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는
백인 정착민이 남아공 전체 토지의 70% 이상을 보유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띠게 된다.

제2장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 ❙25


속에 각인되어 온 DNA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반투인의 토지 관계는
가족, 친족, 마을 공동체 등 다양한 층위의 사회 집단과 그 구성원들이
맺고 있는 사회관계를 통해 굳어져왔다. 더 나아가 토지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조상 혼령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따라서 남아
공 반투인의 토지에 대한 이해는 반투인의 사회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가. 토지와 친족, 정치 구조의 상관관계

남아공은 가부장제(patriarchal) 사회이다. 토지 보유권은 한 집안의 가


장(또는 그 형제)이 갖고 있다. 토지는 원칙적으로 아들(장자)에게 상속되
는데 이 원칙이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즉, 가장은 토지를 비롯한
집안의 승계권을 특정 아들에게 넘겨줄 수 있다. 승계권을 받지 못한 자
식들은 성장해 결혼을 하게 되면 분가를 하게 되어 있다.
분가를 하는 자식은 아버지가 분할해준 토지에 살거나 추장 또는 마을
지도자에게 빈 땅에 대한 사용권을 요청하기도 한다. 토지에 대한 압박이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추장이나 마을 지도자가 개인이 요청한 토지에 대
해 사용권과 보유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이 특정 토지에
대한 사용권을 요청할 경우, 추장이나 마을 지도자는 해당 토지가 정말
사용되고 있지 않은지를 확인한 후에 사용권을 부여한다. 분가한 자식은
대부분 아버지와 형제가 살고 있는 근처의 빈 땅에 대한 사용권을 요청하
게 된다. 이런 방식을 통해 일정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토지는 아버지와
그 형제들, 아버지와 그 자식들이 보유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 특정
지역의 토지는 특정 집안에 귀속되는 경우가 많다.

2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남아공의 토지 보유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아공의 정치 구조와
‘관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아공의 정치 구조와 ‘관습적’ 토지 보유
체계를 설명하기 위해 남아공의 대표적 민족인 줄루(amaZulu) 사회를 사
례로 들기로 한다.
줄루 사회의 정치 구조는 ‘4단계 위계질서’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Hammond-Tooke 1998, p. 48). 이러한 정치 구조는 관습에 기초하며 줄
루 사회를 비롯해 소토-츠와나 등 남아공 반투 사회에 일반적으로 적용된
다. 먼저, 줄루인의 정치 구조에 있어서 정점에는 ‘추장(inkosi mkubwa)’
을 비롯한 ‘전통적 지도자(traditional leader)’가 있다. 전통적 지도자는
특정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보유한다. 이 통치권의 영역 중 가장 강력한
힘은 토지를 분배해 줄 수 있는 권한과 관련된다. 추장은 자신이 관할하
는 광활한 지역을 다시 ‘하위 추장(inkosi)’에게 분배해준다. 하위 추장은

그림 2-3. 다중적 토지 보유 체계

자료: Hammond-Tooke(1998), p. 48.

제2장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 ❙27


추장을 대신해 자신이 부여받은 지역을 관할하는데, 역시 토지 분배권을
중심으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한다. 하위 추장은 다시 권한의 일부를 지역
(ingodi) 단위의 ‘마을 촌장(induna)’에게 양도한다. 그는 실질적으로 마
을 거주민이 정착할 공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토지의 최종 보유자는
한 집안(umuzi)의 가장(umnumzane)이다. 가장이 보유한 토지에 대해서는
상위 권력이 그 보유권을 강제로 빼앗아 갈 수 없다. 따라서 집안은 줄루
사회에서 토지 보유권을 가진 최하위 집단이다.
집안의 토지는 가장에게 소유권이 있으며, 가장은 자신의 부인(들)에게
다시 토지를 나눠 준다. 부인에게 나눠 준 토지는 부인과 이혼할 경우 또
는 부인이 사망할 경우, 다시 남편에게 귀속된다. 집안의 규모가 커질 경
우(토지의 압박이 생길 경우), 결혼한 자식(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분가해
자신만의 우무지를 세울 수 있다. 토지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대개 마
을 촌장의 중재하에 해결을 하게 된다. 토지 분쟁은 개인 경작지의 범위
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반투 사회에서는 토지의 경계, 특히 농경지의 경
계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관례에 따라 토지를 경작
해왔기 때문에, 숲을 개간해 경작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타인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우무지(umuzi)를 장기간 방치할 경우 타인이 그 우
무지를 점유할 수 있는데, ‘장기간’이라는 개념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종종 일어난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법적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위중한 상황에서는 하위 추장이 운영하는 ‘전통 법정(traditional
court)’에서 관습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28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나. 토지와 종교

반투인은 ‘전통적으로’ 토지에 신성함을 부여한다. 특히 조상 혼령


(amadlozi)이 토지에서 생산되는 작물의 풍족함을 보장해 준다고 믿기 때
문에 그들은 토지를 조상 혼령과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예를 들어 줄루
사회에서 한 집안의 가장이 사망할 경우, 그의 무덤은 집 울타리 안에 마
련된다. 가장이 사망했어도 그는 여전히 그 집안의 주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부계 사회가 대부분인 반투 사회에서 성씨(surname)는 조상 혼령의 역
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후손들은 조상 혼령의 존재를 중요하게 인식
해야 한다. 특히 토지는 조상 혼령이 중재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후손들이 조상 혼령을 인정하는 대가로 조상 혼령은 후손들이 살고 있는
땅을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반투
인은 집이나 토지를 매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토
지를 매매하는 것은 조상 혼령에 대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교적 관행은 관습을 통해 구체화된다.
반투 사회에서 이른 봄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과 추수를 할 때 조상 혼
령에게 제의를 지내는 것은 반투인의 인식 속에 조상 혼령과 토지가 얼마
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남아공 내륙 고원에 살고 있는
벤다(Venda) 사회에서는 ‘비의 여왕(rain queen)’에게 제의를 지내면 농
사철에 적절한 비를 내려 풍요를 보장해준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남아공의
줄루 사회에서도 이른 봄에 대지를 관장하는 ‘봄의 여신(Nomkhumbulwana)’
에게 제의를 지내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을 유지해왔다.
대부분의 반투 사회에는 마을마다 성지(sacred land)로 여겨지는 곳이

제2장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 ❙29


있다. 주로 왕이나 추장이 소유한 특정 강이나 숲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성지에는 조상 혼령이나 반투 사회를 보호해주는 자연령이 살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에 함부로 접근하는 것을 꺼린다. 그들은 주로
아이들의 성인식이나 농번기 의례 등 중요한 행사를 치를 때 이외에는 성
지에 접근하지 않는다.
이처럼 반투인은 토지에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토지는 무생물이 아니라 인간처럼 살아 숨 쉬는 생물의 자격을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반투 사회에서는 토지를 사고팔 수 있는 부동산
으로 인식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도시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남아공에서조차 사람들
은 고향이라는 개념을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에게 고향
은 조상들이 살아왔고, 조상 혼령이 보호해주는 대지(大地)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케이프타운 인근에 살고 있는 코사인들은
고향을 ‘움놈보(Umnonbo, 뿌리)’라고 부른다. 사전적으로 움놈보는 ‘등
잔 심지’를 일컫는다. 등잔 심지는 등잔 밑바닥에 있는 파라핀을 불꽃과
연결시켜 주는 에너지의 전달 통로이다. 코사인에게 대지는 이처럼 자신
들의 삶의 원동력으로 인식된다.
줄루 사회에서 토지는 ‘인까바(Inkaba, 탯줄)’라고 불린다. 줄루인은 아
이가 태어나면 즉시 탯줄을 태워 집 마당에 묻는다. 따라서 줄루인은 탯
줄을 대지와 연결시켜, 줄루인의 물리적․정신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
재로 인식한다. 따라서 줄루인에게 자신이 태어난 고향은 자신의 일생과
함께하는 정체성인 것이다. 따라서 도시에서 생활하는 남아공 반투인은
은퇴 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꿈꾸며, 죽

30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어서 고향 땅에 묻혀 조상 혼령으로 살기를 희망한다. 이처럼 남아공 반
투인에게 토지는 삶의 근원 그 자체로 인식된다.

3. 반투인의 토지 이용 관행

보하난(Bohannan 1963)이 아프리카의 토지 관습 연구는 “보유 규칙


(rules of tenure)을 찾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남아공의 토지 문제는
‘보유권’의 행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남아공의 토지는 ‘관습적으
로’ ‘다중의 보유권(multiple tenure rights)’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중의 보유권’이란 특정 토지의 ‘법적’ 보유권자가 없는 상태에서 두 명
이상이 보유권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러한 체계에서는 추장이
나 전통적 지도자와 실제 토지 점유자(주로 한 집안의 가장)가 토지 보유
권을 공동으로 가지게 된다(Bohannan 1963).
남아공의 토지 보유권 문제는 도시와 농촌 간에 확연한 차이가 난다.
남아공 도시의 경우 토지에 대한 개개인의 ‘사적 보유권’이 법적으로 보
장되어 있다. 시의회에서 관리하는 공유지를 제외하고, 도시 지역의 모든
토지는 개인에게 귀속된다. 또한 유럽인 정착민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의
경우에도 법적으로 보호받는 ‘사적 보유권’이 적용된다. 반면 반투인이
살고 있는 농촌의 경우에는 상황이 복잡해진다. 앞서 말했듯이 반투 사회
의 토지와 관련해서는 ‘추장-하위 추장-마을 촌장-가장’으로 이어지는 ‘다
중의 보유권’이 인정된다.
반투 사회의 토지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우무지(umuzi)라
고 불리는 거주용 토지가 있다. 우무지 사용자는 대개 가장, 부인(들), 기

제2장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 ❙31


혼의 자녀로 구성된 ‘확대 가족(extended family)’이다. 결혼한 자식들도
종종 일정 기간(주로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 부모와 함께 거주한다. 결혼
한 자식이 아이를 낳으면 부모로부터 분가해서 새로운 우무지를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개의 우무지는 주변에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텃밭을
두고 있다. 우무지는 사고팔 수 있는 재산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우무지를
사고팔 수 있는 경우는 이곳에 건물이나 나무 등 부동산이 있을 때뿐이
다. 우무지는 자식(주로 장자)에게 상속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경작용 토지(amasimu)가 있다. 경작용 토지는 우무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경작용 토지의 경계는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나무에서 저기 있는 나무 사이’라는 식의
모호한 경계가 정해져 있을 뿐이다. 따라서 농사철이 되면 경작용 토지의
경계를 놓고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잦다. 이런 경우 마을 촌장이나 하
위 추장 등이 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한다. 경작용 토지 역시 매매를 할
수 있는 재산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식에게 상속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공유지가 있다. 공유지는 관습적으로 마을 또는 지역의 공
익을 위해 필요한 땅이다. 공유지의 대표적 예로 목초지를 들 수 있다.
남아공 반투인은 농경과 목축을 병행하는 경제 활동을 해왔다. 농경의 경
우 개인이 보유한 농경지를 통한 경제 활동이 가능하지만, 목축의 경우에
는 사정이 달라진다. 대개는 마을의 거주 구역 외곽에 위치한 넓은 들판
이나 언덕이 공유지로 사용된다. 마을 주민들은 이 공유지에 가축을 풀어
놓을 수 있다. 공유지에는 마을 사람들이 땔감을 구할 수 있는 숲도 포함
되어 있다. 이 공유지는 특정 개인이 보유권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주
인 없는’ 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역민 모두가 보유권을 갖

32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고 있는’ 땅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거주용 토지와 경작용 토지는 상속이 가능하지만 매매는 불가능한 것
이 특징이다. 예외적으로 토지의 매매가 가능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토지 그 자체를 매매한다는 의미보다 토지에 투자한 부동산(건물, 나무
등)을 매매한다는 의미가 강조된다. 토지를 배분 받은 사람이 일정 기간
토지를 방치(거주하지 않거나 경작을 포기한 경우)하게 되면, 그 토지는
다시 전통적 지도자(또는 전통적 지도자협의회)에게 귀속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끝난 뒤 추장 등 전통적 지도자는 지속적인 로
비를 통해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농촌 지역에서 토지 분배 권
한을 유지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는 농촌 지역에서 토지 분배가 강력한
정치권력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03~04년에 남아공 의회에서
논의된 공동체토지권리법(CLRA: Communal Land Rights Act)을 둘러싼
갈등에서 표면화되었다. 이 법률에 의하면 정부에서 ‘지역 공동체’로의
공유지 이전은 ‘사법적 개인 보유’를 인정하기 전에 이를 명문화하는 문
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 법률에 의하면 토지 보유권이 발생되기 전에 공
유지는 부부가 공동으로 소유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이 법률은 농촌의
토지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통적 협의회(traditional councils)’를 설립하
여 토지 문제를 총괄하는 한편, ‘지역 공동체’가 공유지의 보유권을 갖도
록 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문제의 소지는 ‘전통적 협의회’ 구성원의 최
소 3분의 1이 여성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이 조항은 남성 중
심의 토지 보유권을 인정하고 있던 관습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남아공 반투 사회의 토지 관계는 마을 공동체와 집안 내부의 권력관계
를 담고 있다. 관습적으로 남아공의 토지 관계는 젠더와 세대를 비롯한

제2장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 인식 및 이용 관행 ❙33


다른 사회적 위계질서를 반영한다. 농촌 지역에서 토지는 남성들이 권력
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다. 남아공 반투 사회는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마을에 들어가 사는 ‘부거제(patrilocal residence)’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방인인 여성의 토지 보유권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불평등한 사
회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설령 결혼한 여성이 토지를 보유한다고 해도 사
회 안전망은 불완전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특히 미혼 여성이나 과부의
경우 토지 보유권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
다. 여성의 취약한 토지 보유권은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이전과 이후에 큰
차이가 없다.

3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1. 식민지 시대 이전의 토지 보유 체계
2. 백인의 도래와 토지 문제
식민지 시기 이전의 남아공에서 반투인은 대체로 수렵-채집, 목축, 농
경-목축 혼합 경제를 통해 삶을 영위했다. 당시의 토지 보유 체계는 공동
체 구성원들에게 토지를 비롯한 모든 천연자원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권
을 허용했다. 상이한 생계 방식을 가진 집단들 간에는 인적․물적 교류도
빈번했다. 그러나 유럽인이 남아공에 도래한 이후 토착적 토지 보유 체계
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반투인에 대한 백인의 정복 과
정에서 비롯되었다. 1913년의 원주민토지법(Natives Land Act)에서부터
1946년의 컬러드정착법(Coloured 8) Persons Settlement Act)에 이르는 일
련의 법률 제정과 시행 과정에서 남아공의 흑인은 유례없는 인종 차별과
함께 토지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했다. 아래에서는 식민지 시기 이전의 토
착적 토지 보유 체계 및 백인 도래 이후의 토지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8) 컬러드는 남아공에서 백인과 흑인 또는 백인과 말레이 제도에서 온 이주민 사이에서 태


어난 혼혈인을 가리킨다(이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내용을 발췌․정리하였음). 컬
러드의 대부분은 케이프 주 서부의 케이프타운 및 그 교외 지역, 포트엘리자베스(Port
Elizabeth), 여러 농촌 지역에서 산다. 그들은 주로 상류층 남자와 하층민 여자 사이의 금
지된 결합―예컨대 백인 남자와 여자 노예, 남자 노예와 코이코이족(호텐토트족) 또는 산
족(부시맨) 여자―에서 태어난 자손이다. 이 가운데 노예들은 마다가스카르, 말레이 제도,
스리랑카(실론), 인도 출신이지만, 반투족 등의 흑인 혼혈은 적은 편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하에서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백인과 흑인의 중간이었다. 백인이 지배하는 동안 컬
러드는 동류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백인은 그들을 차별하고, 그들은 흑인에 속하
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비교적 흰 피부를 가진 컬러드와 백인
간에는 상당히 많은 결혼이 행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백인 사회에 흡수되었다. 그러나
1948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채택되자, 이들은 직업 차별을 받게 되었으며, 보통 선거
권을 박탈당했다. 또한 1985년까지 인종 간의 결혼과 성관계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사회
적으로 컬러드를 흑인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졌다. 컬러드에 대한 각종 차별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철폐된 후 사라졌다.

36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1. 식민지 시대 이전의 토지 보유 체계

식민지 시대 이전의 남아공에서 토지 보유의 기본 형태는 반투인의 세


가지 생계 체계 혹은 경제 체계―즉, 수렵-채집, 목축, 농경-목축 혼합 경
제―와 대체로 일치했다(Coles 1993, p. 703). 남부 아프리카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아온 산(San)족은 수렵과 채집을 통해 생존했던 소규모 집단
혹은 군단(群團, band)으로 조직되어 있었다(Shostak 1981, 재인용: Coles
1993, p. 704). 수렵과 채집을 위한 토지 접근권은 군단 내 자신의 성원권
에 달려 있었다. 각각의 군단은 명목상 우두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군단 영토 내의 자원을 소유했다. 그러나 그 군단의 모든 구성원은 물
웅덩이, 사냥감, 채집 자원을 공유했다. 어떤 군단의 영토로 들어온 이방
인들이 그 지역의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군단 우두머리의 허가가
필요했다.
다른 한편, 산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코이코이(Khoikhoi)족은
산족의 군단보다 상당히 큰 추장 사회로 조직된 목축민이었다
(Omer-Cooper 1987, p. 5, 재인용: Coles 1993, p. 704). 그들은 양과 소
를 길렀다. 소는 생계뿐만 아니라 탈것과 전쟁에도 이용되었다. 코이코이
족도 수렵과 채집을 행했으며, 아프리카 농경민들―후에는 네덜란드 정
착민들―과의 무역에도 참여했다(Omer-Cooper 1987, p. 7; Davenport
1990, p. 8, 재인용: Coles 1993, p. 704). 산족과 마찬가지로 코이코이족
은 씨족(clan) 구성원들이 초지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동 토지 보유 체
계를 지니고 있었다. 코이코이족은 산족과 사이좋게 살았다. 때때로 산족
은 코이코이족의 고객이 되거나 코이코이족에 의해 흡수되었다. 코이코이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37


족은 산족의 군단에 합류하기도 하면서 산족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였다.
또한 산족과 코이코이족은 농경민인 반투어 화자 집단과 결합하거나 그
들을 위해 일하기도 했다. 이들 세 집단 간에는 외혼도 흔하게 이루어졌
다(Omer-Cooper 1987, p. 16, 재인용: Coles 1993, p. 704).

그림 3-1. 반투인의 초기 정착지와 이주

자료: http://www.south-africa-tou rs-and-travel.com/images/southward-migration-of-the-bantu-bantu.jpg

유럽인이 도래하기 이전 남아공에서는 토착 반투 농경민의 두 개의 기


본적 하위 집단을 대표하는 공동체나 추장제 사회도 번성했다(Greenberg
1970, 재인용: Coles 1993, p. 705). 코사족, 줄루족, 템부(Thembu)족, 음

3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폰도(Mpondo)족, 응고니(Ngoni)족, 스와지(Swazi)족 등을 포함하는 응구
니 민족들은 인도양과 케이프타운 동쪽 및 북동쪽의 드라켄스버그 사이
의 해안을 따라 살았다(Davenport 1990, pp. 55-61, 재인용: Coles 1993,
p. 705). 소토-츠와나 민족들은 오늘날 보츠와나, 트란스발(Transvaal), 오
렌지자유 주(Orange Free State), 레소토, 케이프의 베추아나랜드(Bechuanaland)
자치구들(districts)이 된 내륙에 살았다(Davenport 1990, 51-54, Coles
1993, 705에서 재인용).
이들 민족의 거의 대부분은 약간의 수렵과 공예품 생산과 함께 농경과
목축을 결합시켰다. 응구니 집단에서는 목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 두 민족 집단은 정착 유형도 달랐다. 대개의 응구니 민족들은 분산
된 거주지와 농가에서 생활한 반면, 소토-츠와나 민족들은 종종 목초지와
농지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이나 타운에 집중해서 살았다. 양 집단은 영토
에 기반을 둔 광범한 씨족 및 종족 조직을 가졌다. 종족이나 가족 집단의
구성원들은 가축 사육과 경작을 위해서 공동으로 토지를 사용했다. 몇몇
응구니와 소토-츠와나 민족들은 추장제뿐만 아니라 위계적 국가도 발달시
켰다(Omer-Cooper 1990, pp. 207-209, 재인용: Coles 1993, p. 705).
남아공의 토착적 토지 보유 체계하에서, 공동체 성원권은 한 개인에게
그 공동체의 토지뿐만 아니라 각종 자원―장작, 식물, 물, 사냥감 등―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했다(Jones 1965, p. 33, 재인용: Coles 1993,
p. 705; Thompson 2010[2001], p. 23 참고). 추장이나 군단 혹은 종족
(lineage) 우두머리는 토지를 소유하고, 그것을 공동체 구성원―흔히 가장
을 통해서―에게 할당했다. 대체로 가장은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
분한 토지를 받았고, 그 이상을 축적하지 않았다. 그러나 추장이나 국가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39


우두머리는 토지 축적이 가능했다. 어떤 사회에서는 개인적 권리가 우물
이나 나무 열매까지 포함했다(Jones 1965, pp. 33-35, 재인용: Coles
1993, pp. 705-706).
개인적 권리와 공동 권리는 융통성이 있었다. 예컨대 경작을 위해서 개
인이나 가족에게 할당된 토지는 수확 이후에 그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의
방목 등을 위해 사용될 수 있었다(Jones 1965, p. 35, 재인용: Coles
1993, p. 706). 또한 이동 경작 관행은 충분한 생산력을 회복할 때까지
휴경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고갈된 토지를 필요로 했다. 농가가 쉽게 접근
가능한 모든 토지가 고갈될 때, 그 집단은 새로운 장소로 이동했다. 이후
에 그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그 휴경지를 사용할 수 있을지라도, 원래
경작자의 주장이 대체로 우세했다. 토지가 풍부한 상황에서는 정확한 토
지 경계를 긋는 것이 불필요했다. 그러나 토지가 희소하고 인구 압박이
증가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명확한 경계를 인식했다(Jones 1965, 재인
용: Coles 1993, p. 706).
요컨대 남아공 토착 사회의 토지 보유 체계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
게 합리적인 토지 몫에 대한 접근권 및 그 공동체에서 이용 가능한 천연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허용했다(Coles 1993, p. 706). 유럽인의 침입, 증
대하는 유럽인의 존재, 남아공 민족들에 대한 정복9)은 이 모든 원리를 문
제 삼도록 했고, 토착적 토지 보유 형태를 인종적 범주에 기반한 접근권
과 함께 자유 토지 보유권 체계로 점차 대체했다.

9) 식민지 정복은 아프리카인의 정치적 독립을 크게 파괴했으며, 토지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접근권을 심하게 축소시켰다는 게 지배적 견해이다.

40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2. 백인의 도래와 토지 문제

오늘날의 남아공에 정착한 첫 번째 유럽인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Dutch East India Company)10)의 대표자들이었다. 17세기 초반 그들은
서인도 제도로 가는 도중에 물자를 보충할 수 있는 무역선 정거장을 건설
하기 위해서 케이프로 파견되었다(Magubane 1990, pp. 25-26). 남부 아
프리카의 반투인은 처음에는 유럽인을 환영했다. 그러나 1652년부터 네
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오늘날 남아공의 케이프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주
장했다.11) 유럽인은 수렵-채집민인 산족, 목축민인 코이코이족, 반투계 농
경 민족들의 토지 보유 체계의 생존력을 붕괴시키기 시작했다(Magubane

10) 1602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세계 최대의 무역 회사이자 네덜란드 밖에 있는 하나의 국


가였다(Thompson 2010[2001], p. 32). 오늘날의 남아공은 네덜란드 상인 기업의 부산
물로 시작되었다. 이 회사의 설립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이하는 󰡔위키백과󰡕의
자료를 발췌․정리하였음). 네덜란드 상인들은 동인도 물산을 리스본에서 발트 해 상품
과의 교환으로 획득하고 있었다. 그들이 에스파냐의 압력으로 물러나게 되자, 동인도와
의 직접 무역의 기운이 높아져 먼저 1594년 암스테르담에 원국(遠國) 회사가 설립되었
으며, 그 후 동종의 회사 설립과 합병 과정을 거쳐 1600년 암스테르담에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고, 연달아 홀란트 등에 약 10개의 동인도 회사가 난립했다. 이 때문에 각 기업
간의 불이익이 초래되었고, 에스파냐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통합이 필요하게 되어 의회
의 요구에 따라 동인도 무역의 여러 회사는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 통합되
었다. 동인도 회사의 번영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세계적 지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7
세기 후반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과의 대립에서 점차 인도를 거점으로 하는 영국 세력에
게 압도당하면서 1799년 동인도 회사는 해산되었다. 그 후에는 네덜란드 정부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되어 네덜란드령 동인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11) 1652년 이전에도 몇몇 유럽인 선단이 오늘날의 남아공을 방문한 적이 있다. 1488년에
는 포르투갈의 바톨로뮤 디아즈(Bartholomew Diaz, 1451~1500)가 이끄는 선단이 희망
봉 근처에 내려서 코이인과 접촉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497년에는 바스코 다가마
(Vasco Da Gama, 1460/1469~1524)가 나탈 지역에 잠깐 기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남아공에 영구적으로 정착하지 않았다. 따라서 얀 판 리벡((Jan van Riebeek,
1619~1677)이 이끈 동인도 회사 직원들(130명의 남녀)의 정착이 남아공 유럽인 정착민
사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홀(Hall 2009, p. 1)이 언급했듯이 1652년 네덜란드
인의 케이프 정착은 남아공에서 장기간 진행된 토지 박탈 역사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41


1990, pp. 20-36). 아프리카인은 자신들의 생계와 토지가 점차 위협받게
되자, 유럽인의 정착과 팽창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결국 유럽인
은 남부 아프리카 민족들이 가지고 있던 토지의 많은 부분을 요구하고 점
유했다(Magubane 1990, pp. 47-54). 백인으로부터 흑인을 재배치하고 격
리하기 시작한 것은 코이코이족이 더 이상 솔트 강(Salt River)과 리스벡
강(Liesbeck River)에 거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1658년이었다
(Pearce 1997, 재인용: Thwala 2006, p. 58).
17세기 후반 동안 네덜란드인, 독일인, 프랑스인, 벨기에 위그노 교도
(Huguenots) 등은 농업과 가축 사육을 시작하기 위해 남아공에 도착했다
(Coles 1993, p. 707). 이들 이주자는 네덜란드어를 자신들의 주요 언어
로, 그리고 네덜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를 그 식민지의
공식 교회로 채택했다. 이후에 이들 유럽인 이주자는 보어인이라 알려지
게 되었다. 이들은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코이 지역에서 온 노예들을 자신
들의 목장 노동자와 농장 노동자로 이용했다. 백인 노동 계급은 결코 생
겨나지 않았다. 대신에 이들 유럽인은 비(非)백인만이 천한 노동에 적합
하다는 견해를 점차 수용했다. 계급 구별은 인종 구분과 일치했다.
백인은 목장 경영과 농업 활동을 통해 세력을 내륙으로 확장하고, 이
과정에서 그들은 아프리카의 지역 민족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산족과 코
이코이족이 유럽인의 침입에 대항하려고 했을지라도, 그 후 어느 집단도
유럽인 이주자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Omer-Cooper 1990, p. 28, 재인
용: Coles 1993, p. 707). 이 두 토착 집단의 구성원은 결국 추방당하고
사냥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거나 동화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농경민들은
산족과 코이코이족이 그랬던 것보다 남부 아프리카의 유럽인 정착지에

42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그림 3-2. 남아공의 정착지(1700~1848년)

자료: http://www.planetware.com/i/map/SAF/the-settlement-of-south-africa-map.jpg

더 많은 도전을 안겨주었다(Denoon and Nyeko 1984, pp. 22-24, 재인용:


Coles 1993, p. 707).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인은 가축 사육과 경작을 위해 더 많
은 토지를 찾으면서, 케이프를 벗어나 동쪽과 북쪽으로 이동했다. 18세기
후반 그들은 코이족 정착지를 밀어내면서 농경민인 코사족과 조우했으며,
결국 코사족을 그레이트피쉬 강 너머로 밀어내기 위해서 일련의 전쟁을
치렀다(Omer-Cooper 1990, p. 34, 재인용: Coles 1993, p. 707). 이 당시
코사족과 다른 농경 민족들도 가축, 토지, 자원을 찾기 위해 세력을 확장
하고 있었다. 1780년 피쉬 강에서 유럽인과 토착 남부 아프리카인 간의
갈등은 토착 농경 민족의 대규모 이동(dislocations)과 그들의 토지에 대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43


한 전유의 시작을 알렸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 기간에 케이프식민지(Cape Colony)에 대한 통
치권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영국으로 양도되었다(Omer-Cooper
1990, p. 42, 재인용: Coles 1993, p. 708). 19세기 초반 유럽에서 케이프
로 유입된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주자들이 그곳에서 개발한 인종
적 특권 체계를 위협했다(Davenport 1987, p. 32, 재인용: Coles 1993,
p. 708). 1807년에는 영국에서 노예무역의 폐지와 더불어 노예 수입이 종
식되었다. 1828년 영국 정부는 케이프식민지 내 코이족의 이동에 대한 초
기의 제한을 철폐하고, 그들에게 백인과의 완전한 법률적 평등을 인정하
는 법령 50호를 통과시켰다. 이러한 평등은 비백인의 적절한 지위에 대한
보어인의 견해에 불쾌감을 주고, 그들의 노동 공급을 위협했다(Davenport
1987, p. 41, 재인용: Coles 1993, p. 708).
1834년의 노예 해방, 이스턴케이프(Eastern Cape)에서 코사와의 지속
적 갈등, 그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영국의 지지 결여, 식민지에서의 인종
관계에 대한 영국 정부의 태도 등은 1836년부터 1838년까지 보어인 이주
자들로 하여금 내륙 북쪽으로의 ‘대이주’를 시작하도록 했다(Davenport
1987, p. 68, 재인용: Coles 1993, p. 708). 아프리카너로도 알려진 보어인
개척자들은 오렌지 강(Orange River)을 건너 트란소란기아(Transorangia),
나탈, 트란스발로 들어가는 대이주를 단행했다. 이들 주에서는 음페카네
(Mfecane)12)의 일부로서 아프리카 농경민들 간의 싸움이 만연해 있었다

12) ‘음페카네’는 줄루어로 ‘부서지거나 깨지는 시대(the era of the crushing or breaking)’
혹은 ‘고난의 시간(time of troubles)’이라는 의미를 지닌다(이하의 내용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되었음). 역사적 의미에서 음페카네는 ‘1810~30년에 벌
어진 줄루족과 응구니족의 전쟁과 이에 따른 강제 이주’를 가리킨다. 음페카네로 인해

4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Davenport 1987, p. 44, 재인용: Coles 1993, p. 708). 보어인은 수많은
아프리카 농경 민족들에 대한 군사 원정길에 올랐다. 농경 민족들은 보어
인의 확장에 저항했으며, 영국인은 이들 조우 중의 일부에 말려들었다. 보
어인의 노력은 결국 나탈공화국, 오렌지자유국, 트란스발공화국의 설립으
로 귀결되었다(Omer-Cooper 1990, p. 84, 재인용: Coles 1993, p. 708).
1847년 영국은 줄루 전쟁에서 생겨난 핑고 난민들(Fingo refugees)을
위해 이스턴케이프에 첫 번째 보류지를 도입하고, 그들에게 개인 소유지
를 할당했다(Denoon and Nyeko 1984, p. 70, 재인용: Coles 1993, p.
709). 그 후 이 보류지 체계는 오늘날의 남아공을 구성하는 공화국들의
다른 지역들에도 확대되었다. 식민지 행정부는 때로는 부족 당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때론 정부 관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보류지 내의 토지 할당을
통제했다(Jones 1965, p. 12, p. 37, 재인용: Coles 1993, p. 709). 그러나
토착적 토지 보유 체계는 대개의 보류지에서 존속했다.

남부와 중부 아프리카를 비롯해 동아프리카의 일부에 이르는 지역의 인구 분포와 사회


적․정치적 구성이 바뀌었다. 음페카네는 샤카(Shaka, 1787~1828)가 이끄는 줄루 군사
왕국의 발흥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는 응구니계 부족들 간의 전쟁 양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샤카의 왕국은 기근과 사회 불안이 계속되던 시대에 발흥했으며, 남동부
아프리카의 형성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현상의 일부였다. 이러한 국가 형성은 델라고아
만의 무역을 둘러싼 극심한 경쟁의 결과이기도 했다. 음페카네는 광대한 지역으로 부족
간의 대립이 확장되는 방식을 띠었으며, 인구 과잉과 과도한 목축으로 황폐화된 지역에
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남아프리카의 경우만 해도 음페카네로 인해 피난민들이 앞다투
어 산속의 은신처로 몸을 피하거나 죽임을 당하면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으며, 방대한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이로 인해 백인이 나탈과 하이펠트 고원(Highveld)으로 영역을
확대하기가 더 쉬워졌다. 케이프식민지의 경우 음펭구족으로 알려진 피난민들이 트란스
케이의 주민들 속으로 떼 지어 밀려들어옴으로써, 동쪽 국경에 대한 압박이 증가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음페카네의 결과로 바수토(Basuto)와 스와지를 비롯해 은데벨레와 가
자(모잠비크) 같은 강력한 흑인 왕국들이 새로 출현하여 백인의 침투에 대항했다. 음페
카네가 야기한 충격은 남아프리카 훨씬 너머까지 영향을 미쳤다. 주민들은 샤카의 군대
를 피해 북동부로는 탄자니아와 말라위(응구니계 부족), 북서쪽으로는 잠비아의 바로첼
란드(콜롤로계 부족)로 피난했다.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45


그림 3-3. 보어인의 대이주(1836~46년)

자료: http://www.arthursclipart.org/southafrica/people%20and%20places/great%20trek%20(2).gif

1867년 케이프의 웨스트그리쿠아랜드(West Griqualand)에서의 다이아


몬드 발견과 1886년 트란스발에서의 황금 발견은 남아공에 광범한 경제
변화를 일으켰다(Coles 1993, p. 709). 광산 개발은 여러 공화국을 가로지

46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르는 새로운 운송 체계의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상당한 이주 노동력을
광산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유럽인은 아프리카인의 노동력과 거주 지역
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그들은 흑인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남아 있지 못하
게 하거나 광산 근처의 숙소에 살지 못하도록 하고, 가족 구성원들을 데
려와 살지 못하도록 했다(Omer-Cooper 1990, p. 123, 재인용: Coles 1993, p.
709).
요컨대 1830년대부터 19세기 말까지 보어트렉커(Voortrekkers) 및 영
국 식민지 정부는 정복과 진압을 통해 남아공 내륙 지역의 반투 민족 집
단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했다(De Beer 2006, p. 26). 백인의 지배와 관리
기간 동안, 흑인 공동체의 영토들은 보어공화국에서 분명히 경계가 지어
졌다. 이것은 보어인의 영토 분리 정책과 일치했다. 반투 민족 지역 합병
은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합병은 오늘날의
노던케이프(Northern Cape) 주의 몇몇 지역뿐만 아니라 이스턴케이프 주
와 크와줄루-나탈 주에서 발생했다. 이들 주에서는 거주 지역의 재배치와
조정이 반투 민족의 거주 지역 붕괴를 초래했다.
트란스발공화국과 오렌지자유국을 지배하던 보어인과 영국 간의 갈등
은 마침내 남아공의 보어 전쟁(1899~1902년)13)에서 절정에 달했다

13) 보어 전쟁은 1차 보어 전쟁(1880~81년)과 2차 보어 전쟁(1899~1902년)으로 나뉜다(이


하의 내용은 󰡔위키백과󰡕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되었음). 1차 보어 전쟁은 영국과 보어인
사이의 첫 분쟁으로, ‘제1차 앵글로-보어 전쟁’ 또는 ‘트란스발 전쟁’으로도 불린다. 1차
보어 전쟁은 규모가 비교적 크지 않은 국지전이었다. 이 전쟁은 1880년 12월 16일에
발발하여 1881년 3월 23일에 평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종식되었다. 평화 조약에 따라 영
국은 1852년과 1854년에 각각 건설된 트란스발공화국과 오렌지자유국의 독립을 인정했
다. 그 후 보어인은 이들 지역에 정착해 살았다. 그런데 1867년에는 오렌지자유국에서
다이아몬드가, 1886년에는 트란스발공화국에서 금이 다량 발견되었다. 이것은 2차 보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즉, 영국은 이들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2차 보어 전쟁을 일으
켰다. 2차 보어 전쟁은 1차 보어 전쟁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파급 효과도 컸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47


(Davenport 1987, pp. 191-200, 재인용: Coles 1993, p. 709). 이 전쟁의
최후 승자는 영국이었다. 보어 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자유 토지 보유 체
계는 트란스발, 케이프, 나탈 전역에서 존속했다(Jones 1965: 12, Coles
1993, p. 709에서 재인용). 이들 주에서는 비백인의 토지 권리 획득에 대
한 제한이 없었다. 오렌지자유국에서 남아공 흑인은 단지 한 구역 내의
토지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주의 전역에서는 아프리카
반투 민족들의 토지 권리 패턴이, 토지가 토착 민족들―이들 중의 상당수
가 자신들의 토지에서 쫓겨났다―을 위해 지정되는 보류지 체계의 형태
로 출현했다.
1910년 4개의 남아공 식민지들, 즉 케이프, 나탈, 트란스발, 오렌지자
유국은 남아프리카연방을 형성했다. 이 당시 영국은 주로 비백인 인구를
가진 남부 아프리카의 몇몇 다른 지역을 직접 통치했다. 그러나 영국은
그들이 그 연방에 편입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Jones 1965, p. 11, 재
인용: Coles 1993, p. 710). 예컨대 1868년 영국은 그 땅에 있는 아프리카
인 공동체들을 지배하기 위해 백인 행정부를 직접 수립하여 바수토랜드
(Basutoland)를 합병했다. 이것은 아프리카인의 토지 점유를 방해하고 그
것을 백인 이주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 영국은 스와질란드
와 베추아나랜드를 합병했다. 영국은 이들 세 지역을 모두 고등위원회 영
토(High Commission Territories)로 관리했으며, 1910년 이후에도 이들을
계속해서 직접 통치했다(Omer-Cooper 1990, p. 167, 재인용: Coles 1993, p. 710).

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어 전쟁’은 이 전쟁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2차 보어 전쟁


은 1899년 10월 11일에 발발하여 1902년 5월 31일에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종결되었다.
이 전쟁의 결과로 트란스발공화국과 오렌지자유국의 영토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4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그림 3-4. 1899~1910년의 남아공 역사 지도

자료: http://www.zululand.co.za/blog/zululand-getaways/historical-ladysmith

비록 그 연방이 앵글로-보어 전쟁에서 보어공화국의 군사적 패배의 결


과로 생겨나고, 영국이 세 개의 고등위원회 영토를 남아공에 양도하는 것
을 거부했을지라도, 영국은 새로운 연방에서 많은 것을 보어 지도자들에
게 양보했다. 영국이 외교 정책을 통제하는 동안 두 명의 트란스발 장군
―아프리카너인 얀 스머츠(Jan Smuts, 1870~1950)와 루이스 보타(Louis
Botha, 1862~1919)―은 그 새로운 정부를 이끌었다(Omer-Cooper 1990,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49


재인용: Coles 1993, p. 710). 게다가 1910년의 남아프리카 헌법과 연방
시기의 정치 제도는 인종 분리와 전(前) 보어공화국에 이미 존재했던 불
평등을 확대하고 더욱 굳건하게 했다. 그 연방의 전체 지역 중 단지 약
7%만이 비백인 아프리카인을 위한 보류지로 남겨졌다(Maylam 1986, p.
144, 재인용: Coles 1993, p. 710에서 재인용). 다른 주들로 확장되는 비
백인을 위한 더욱 자유로운 케이프 선거 규정 대신에, 제한된 아프리카인
엘리트와 컬러드(Coloureds)를 위한 투표권은 결국 제거되었다.
연방 의회에서 지위가 낮으나 더욱 강력한 하원(House of Assembly)
은 유럽인 혈통의 사람들만을 의석에 앉히고자 했다. 케이프를 제외한 지
역에서는 백인 성인 남성만이 대표자에게 투표를 할 수 있었다(Carter
1977, 재인용: Coles 1993, p. 710). 농촌 선거구는 평균보다 15% 적게
허용된 반면, 도시 선거구는 평균보다 15% 많게 허용되었다(Denoon and
Nyeko 1984, pp. 164-165, pp. 171-172, 재인용: Coles 1993, pp. 710-711).
이것은 백인 농민 집단들에게 선거상의 이점을 제공했다. 광산 노동자와
같이 점증하는 흑인 이주자 집단들은 대표자를 가지지 못하고, 정치적으
로 단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토지 문제와 관련된 결정적 계기는 1913년 6월에 통과된 원주민토지
법이었다(Walker 2002, p. 7). 이 법은 아프리카인의 합법적인 토지 점유
구역을 제한하고, 아프리카인 현금 소작인(cash tenants)과 물납 소작인
(sharecroppers)을 그들의 토지에서 몰아냈으며, 결국 물납 소작 및 지대-
소작인(rent-tenant) 계약을 소작 노동(labor tenancy)로 대체했다(Thwala
2006, p. 58).14) 원주민토지법으로 인해서 흑인에게는 단지 10%의 토지

14)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관련하여 디틀헤이크(A. Ditlhake)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50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만이 남겨지게 되었다. 다른 한편, 1918년 보류지의 흑인은 그들이 생존
하는 데 필요한 작물의 45%만을 생산할 수 있었다(Kahn 2007, p. 3). 40
년 전 그들은 생계에 필요한 작물을 충분하게 생산할 수 있었고,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었다. 해가 지나면서 더욱더 제한적인 법률이 시행
됨에 따라 보류지의 생산성은 25%까지 떨어졌다. 번성하던 농업적 생활
방식은 조직적으로 파괴되었다.
1923년에는 도시 지역에서 백인과 흑인의 거주지 분리라는 원칙이 생
겨났다. 이 원칙은 1950년의 집단지역법(Group Areas Act)에 의해 확대
되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작은 토지에 살면서 생기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개선 계획이 도입되었다. 이 계획은 가축을 살처분하고,
거주지와 들판/목초지 사이를 울타리로 가로막고, 사람들을 농지에서 몰
아내어 마을로 이동시키는 내용을 포함했다.

(Ditlhake 1997, pp. 220-221, 재인용: Bob 1999, p. 73): “조직적인 토지 강탈의 결과
로서, 아프리카인은 토지와의 변동적이고 유동적인 생산관계를 강요당했다. 그들은 토
지 소유, 물납 소작, 소작 노동을 거쳐 토지가 전혀 없는 상태(total landlessness)로 이
동했다. 물납 소작과 소작 노동은 백인 농장주도 아프리카인도 원치 않았던 모순적 관
계였다. 그러나 양자는 이 관계를 강요당했다. 이러한 배열은 아프리카인의 토지 소유
권에 대한 부정 및 아프리카인과 백인 지주 간의 점점 불평등해지는 권력관계를 나타
낸다.” 다른 한편, 남아공에서 토지 강탈의 역사는 친숙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사가 두
가지 상이한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Walker
2003, p. 4). 즉, 토지 강탈의 역사는 남아공 사람들의 정치 생활을 알려주는 일반적이
고 대중적인 설명일 뿐만 아니라, 특수하고 대단히 지역적인 맥락과 역동성을 가지는
실제적 강탈의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토지 개혁은 반드시 후자의 수준에서 작동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수준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나, 정책의 상이한 결과와 더불어 대개 독
립적인 영역으로 기능한다. 전자는 가능한 한 단기간 내에 많은 토지 청구를 해결하고,
많은 헥타르를 재분배하는 데 있어서 속도를 요구한다. 후자는 적절한 수혜자 확인, 참
여 및 제도적 발전을 위한 시간을 요구한다. 즉, 후자는 단지 계획, 실행 및 서비스 준
비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남아공의 토지 개혁 프로그램은 특
별한 사람들의 영역에서는 불공정을 두드러지게 감소시키고 있는 반면, 일반 사람들의
영역에서는 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51


1925년의 「원주민과세․개발법(Native Taxation and Development
Act)」은 오두막세(hut taxes)와 다른 세금들 이외에도 18세 이상의 모든
남성에게 균일한 정액의 인두세를 도입하여, 그 영토와 원주민 보류지에
있는 모든 아프리카인에게 보다 무거운 세금 부담을 강요했다(Oettle et
al. 1998, p. 15). 인두세 수입 중의 일부는 그 영토에 농업부(Departments
of Agriculture)를 설립하는 데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들 담당 부서를
관리한 것은 백인이었다. 그리고 현장 수준에서는 농업학교에서 훈련된
아프리카인이 배치되었다. 실연자(demonstrators)라 불린 이들의 과업은
근대 농업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었다. 이 기술은 황소를 끄는 근대적 도
구, 작물 및 재배 패턴, 가축 관리 관행 등을 포함한다. 이들 과학적 접근
법은 단기간에 농업 생산에서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Oettle et
al. 1998, pp. 15-16). 오히려 경제적 및 인구학적 추세가 농업 생산고
(agricultural output)와 흑인 홈랜드(homelands)의 무역 균형을 변화시키
는 데 더욱 중요했다. 그러나 이들 과학적 접근법은 간작(間作) 및 다른
전통적 관행을 줄곧 단념시키고, 외부 투입에 대한 높은 의존과 더불어
근대적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 기술의 촉진으로 귀결되어온 경향
의 시작이었다.
버몬트위원회(Beaumont Commission)라고도 불린 원주민토지위원회
(Natives Land Commission)는 몇몇 지역 위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De
Beer 2006, p. 26). 이 위원회는 흑인 정착을 위한 부가적 토지를 확보하
기 위해서 구성되었다. 1916년에 작성된 버몬트위원회의 권고 사항들은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통과된 1936년의 ‘원주민신탁․토지법
(Native Trust and Land Act)’에서 구체화되었다. 이 법은 양도된 지역

52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released areas)에서 흑인 점유용 토지를 취득하고 구매할 수 있는 원주
민 신탁업체를 제공했다. 모든 관유지(crown land)는 흑인의 점유를 위해
남겨졌다. 양도된 지역의 모든 관유지는 관리, 유지, 정착, 흑인의 물질
적․도덕적 복지의 증진을 위해 신탁업체에게 양도되었다. 양도된 지역
에서 취득된 약 600만 헥타르의 토지는 예정지(scheduled areas)의 토지
에 점차 추가되었다. 많은 부족이 자신들의 부족 지역을 확대하기 위해서
농장을 사는 것도 허용되었다. 1937년에 제정된 원주민법률개정법(Natives
Laws Amendment Act)은 흑인이 도시 지역에서 토지를 구매하는 것을
금지시켰다(Thwala 2006, p. 58). 그 후 1946년에 정부가 제정한 컬러드
정착법에 의하면 고위층이나 컬러드만이 토지를 취득할 수 있었다
(Jaichand 1997, p. 6, 재인용: Mannerback and Fransson 2003, p. 15).

제3장 토지를 둘러싼 남아공 사람들과 유럽인의 충돌 ❙53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제4장
아파르트헤이트 시대(1948~93년)의
토지 정책
1. 1948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토지 정책
2. 1970년대부터 1993년까지의 토지 정책
아파르트헤이트15)의 뼈대는 영국 식민지 당국이 케이프 식민지와 나
탈 등지에 도입한 통행법(Pass Laws)16)의 유산이다. 이 법은 영국 식민지
당국의 통제하에 있는 백인과 유색 인종의 거주 구역으로 흑인이 접근하
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시행되었다. 1948년 남아프리카연방에서 열린
총선거에서 아프리카너가 이끄는 국민당(National Party)이 승리하면서
반세기에 가까운 ‘아파르트헤이트 시대’가 열렸다. 아파르트헤이트의 궁
극적 목적은 소수의 백인 집단이 자원을 확보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정
치적 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모든 사람을 인종 등급으로 나누어 백인, 흑인, 유색
인, 인도인 등으로 분류했다. 또한 백인 정권은 인종별 거주지 분리, 통혼
금지, 출입 구역 분리 등을 통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노골적인 백인
지상주의 국가를 지향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공의 현대사를 크게 후

15) 사실 아파르트헤이트는 ‘이론상’으론 큰 결함이 없어 보인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다인종


사회인 남아프리카연방에서 문화적 혼동과 사회적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종을 분리
하자는 정책이었다. 유럽인은 유럽인의 문화적 가치를, 아프리카인은 아프리카인의 문
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독자적인’ 길을 걷자는 것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기초를 놓은 사람은 얀 스머츠이다. 스머츠의 견해에 의하면 아프리카는 원초적으로 인
류의 모체와 같고 인류의 요람이며, 이 대륙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은 어린이와 같은
심리 상태와 외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스머츠가 계획하고 있던 ‘분리(segregation)’
정책의 시발점이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야만적인 아프리카인에게 유럽인의 평등권과
참정권을 부여하는 행위는 그들에게 전혀 좋은 일이 아니며, 오히려 아프리카인의 ‘전
통’과 사회 제도를 파괴한다. 또한 스머츠의 견지에서 볼 때 흑인의 독자적인 발전은 현
재와 같이 흑인과 백인이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는 한 요원한 것이었다. 따라서 스머츠
는 백인 사회와 흑인 사회에 모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흑인 사회와 백인
사회를 물리적으로 가르는 분리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6) 아프리카인은 통행법에 저항했다. 1960년 3월에는 샤퍼빌(Sharpeville) 학살 사건이 일
어났다. 이것은 트란스발 지역의 작은 타운인 샤퍼빌에서 통행법에 반발해 일어난 시위
를 경찰이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69명을 사살하고 1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이
었다. 이 사건이 외신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국제적인 비난
을 받았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오히려 통행법을 강화했다.

56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퇴시켰는데, 특히 흑인의 정신적․물질적 삶 전반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
들었다. 아래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여러 부정적 측면을 토지 관련 정
책의 맥락에서 살펴볼 것이다.

1. 1948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토지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는 1940년대 당시 정치적으로 분열된 아프리카너 공동


체가 정치적 통합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1948년에 집권한
아파르트헤이트 정부는 백인 소수자 지배를 촉진하기 위해서 흑인 인구
에 대한 공간적 통제를 실시했다(Platzky and Walker 1985, 재인용:
Walker 2002, p. 7).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이주는 값싼 노동력에 대한
접근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적극 장려되었다. 임금 노동자들의 경제적 희
생 및 그들의 작업장 근처에 있는 부양가족이나 날로 커지는 도시 흑인
공동체의 정치적 압력은 다루어지지 않았다(Oettle et al. 1998, p. 16).
남성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호스텔(hostel)17)은 그들에게 기본적 거처를
제공했다. 그러나 호스텔을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이주자와 토지의 관계는 계속해서 더욱 유리되었고, 농업 기술은 상실
되거나 개발되지 않았다.
1950년에는 집단지역법도 공표되었다. 이 법은 거주지와 상업 지역을
인종적으로 분리시키고, 인종 간 재산 행위(property actions)를 통제했다

17) 정부가 거의 무료로 제공하는 호스텔은 노동자들을 위한 기숙사이다. 호스텔은 농촌 지


역 출신의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 되어왔다.

제4장 아파르트헤이트 시대(1948~93년)의 토지 정책 ❙57


(Thwala 2006, p. 58). 분리적이고 불평등한 발전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1951년에는 반투자치법(Bantu Authorities Act)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부족적․지역적․영토적 자치를 허락했다.18) 1951년에는 무단 점유의
완전한 불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불법적 무단점유법(Illegal Squatting
Act)」도 통과되었다. 이 법은 정부가 백인 농장에서 쫓겨난 잉여 인구에
게 재정착 캠프를 설립하는 것을 허용했다.
1954년에는 원주민재정착법(Natives Resettlement Act)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국가에게 요하네스버그와 그 이웃 지역들의 행정 장관 자치구
(magisterial district)의 어떤 지역으로부터 아프리카인을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Thwala 2006, p. 58). 1959년에는 반투스탄19)을 건설하
고, 보류지를 남아공 흑인의 정치적 홈랜드(political homeland)로 만들기
위해 반투자치정부촉진법(Promotion of Bantu Self-Government Act)이
제정되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인은 고전적인 분할 지배 전략에 의해 10개
의 종족(ethnic) 반투스탄20)이나 홈랜드에 다시 묶이게 되었다(Walker

18) 이 법의 실행은 이들 당국을 중앙 국가의 지역 부문(arm)으로 포함시키고, 이들의 독립


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Ntsebeza 1999, pp. 1-2). 아파르트헤이트 국가가 악질적
으로 변함에 따라 전통적 지도자들도 그렇게 되었다. 그들은 대개의 농촌 사람들에게
존경과 정통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19) 반투스탄 건설 계획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처음 마련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케이
프식민지에서는 1913~36년 사이에 아프리카인의 거주 구역을 제한하는 법령이 시행되
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원주민부 장관이던 베어워드(H. F. Verwoerd, 1901~
1966)는 아프리카인의 ‘원래 고향’을 되찾아 주자는 주장을 했다. 1951년 말란(D. F.
Malan, 1874~1959) 정권은 반투자치법을 도입해 ‘반투스탄’을 설립할 근거를 마련했다.
반투스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남아공 내 아프리카인에 대해 ‘물리적인 제거’가 아닌 ‘법
적 제거’를 시도하는 데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남아공 내에서 아프리카인을 물
리적으로 몰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아프
리카인이 백인의 정치․경제적 패권에 도전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시민권을 박탈하려고
했다.
20) 이들 10개의 반투스탄 중에서 TVBC로 불리었던 4곳(트란스케이, 벤다, 보푸사츠와나,

5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2002, p. 7).21) 이 전략의 일부는 전통적 구조에 토대를 둔 부족 당국을
지역 행정의 가장 낮은 단계에 편입시키는 것을 포함했다.

그림 4-1. 10개의 반투스탄 영토

자료: http://kids.britannica.com/elementary/art-129344/Bantustan-territories-in-South-Africa-during-the-apartheid-era

시스케이)은 남아공 정부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고, 나머지 6곳은 제한된 자치권을 실


행했다. 트란스케이(코사족)는 1976년 10월 26일, 보푸사츠와나(츠와나족)는 1977년 12
월 6일, 벤다(벤다족)는 1979년 9월 13일, 시스케이(시스케이족: 코사족의 일파)는 1981
년 12월 4일에 각각 독립 선언을 했다. 가잔클루(샨간족), 카은과네(스와지족), 콰은데벨
레(은데벨레족), 크와줄루(줄루족), 레보와(북소토족 혹은 페디족), 크와크와(남소토족)
등은 반(半)자치를 선택했다.
21) 실제로 반투스탄에 머물렀던 아프리카인은 55%에 불과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땅이 터무니없이 작은 데다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돈을 벌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대도시
인근 타운으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의도했던 반투스탄
정책은 무산되고, 1994년에 정권 교체가 일어나면서 모든 반투스탄은 다시 남아공에 합
병된다.

제4장 아파르트헤이트 시대(1948~93년)의 토지 정책 ❙59


다른 한편, 1950년대에 입안된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자유헌장(Freedom
Charter)은 “기아와 토지에 대한 굶주림을 추방하기 위해서 토지는 그것
을 작동하는 사람들 간에 공유되고 재분배될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자유
헌장은 아프리카에서 탈식민화가 그 의제(agenda) 위에서 무르익던 시기
에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이상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즉, 그 당시 아파르트헤이트 정부는 규정을 강화하고 있었으며, 정부의 탈
식민화라는 아이디어는 반투스탄 전략의 형태로 ‘재부족화(re-tribalization)’
를 꾀하는 것이었다(Ntsebeza 2007, pp. 2-3). 그래서 반투스탄 전략과 같
은 아파르트헤이트 법률과 관행에 대한 저항은 아프리카민족회의와

그림 4-2. 인종적 집중 및 홈랜드

자료: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1/South_Africa_racial_map,_1979.gif

6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범아프리카회의(PAC: Pan African Congress)와 같은 정치 조직에 대한
금지령을 초래하면서, 정치적 반대에 대한 악의 있는 탄압을 가져왔다.
첫 번째 재배치(relocation) 캠프들이 설치된 것은 1960년대 초반이었
다. 이것은 추방된 노동 소작인, 불필요한 농장 노동자, 실직한 도시민을
쫓아내고 포함시키려는 시도였다(Thwala 2006, p. 58). 1964년에 통과된
흑인법률수정법(Black Laws Amendment Act)은 원주민신탁법(Native
Trust Act)과 더불어 종국에는 소작 노동과 농장에서의 무단 거주를 폐지

그림 4-3. 1961~90년까지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전쟁

자료: http://www.cartografareilpresente.org/IMG/jpg/the_fight_against_apartheid_jpg-2.jpg

제4장 아파르트헤이트 시대(1948~93년)의 토지 정책 ❙61


하는 데 사용되었다. 토지법 및 여타 관련 법, 정착 계획, 강압적 추방,
반투스탄 체계는 이전의 흑인 홈랜드를 과밀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2. 1970년대부터 1993년까지의 토지 정책

남아공 흑인을 위한 20년간의 분리된 영토 개발 운동은 1970년의 흑인


홈랜드시민권법(Black Homelands Citizenship Act)과 1971년의 흑인홈
랜드헌법(Black Homelands Constitution Act)에서 절정에 달했다
(Devenish 1987, pp. 28-36, 재인용: Coles 1993, p. 714). 시민권법은 남
아공의 모든 흑인―어떤 홈랜드에 결코 거주한 적이 없고, 거기에 친척이
나 어떤 연고도 없는 흑인조차도―은 몇몇 정부 당국의 영토(territorial
authority areas)나 홈랜드 중의 하나에서 시민권을 가진다는 점을 규정했
다(Devenish 1987, pp. 36-37, 재인용: Coles 1993, p. 714). 헌법은 남아
공 정부에게 이들 홈랜드의 자치를 인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헌
법이 통과된 후에 몇몇 반투스탄은 자치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1960년과 1980년 사이에 350여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홈랜
드와 흑인 주거 지역(black townships)으로 쫓겨나 재배치되었다(Pearce
1997, 재인용: Thwala 2006, p. 59). 하나의 결과로서 흑인 지역에서는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예컨대 1970년과 1983년 사이에 크와크와
(QwaQwa)의 인구는 2만 5,334명에서 50만 명으로 증가했다(Pearce
1997, 재인용: Thwala 2006, p. 59). 홈랜드의 인구 밀도는 평방킬로미터
당 평균 151명인 반면, 남아공 나머지 지역의 인구 밀도는 평방킬로미터
당 19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1980년대에는 남아공 흑인의 39%가 도시

6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지역에 거주한 데 비해, 백인은 88%가 도시 지역에 거주했다. 1985년에
백인은 3만 7,000동의 잉여 주택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도시 지역과 홈
랜드의 흑인은 각각 최소한 34만 2,000동과 28만 1,269동의 주택 부족을
경험했다(Pearce 1997, 재인용: Thwala 2006, p. 59).
위의 사실들은 남아공에서 자원 할당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낸다. 그러
나 1970년대 후반이 되자 남아공은 흑인이 도시 지역에서 영구적인 토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Thwala 2006, p. 59). 그래서
1978년에는 99년간 차지권(leasehold) 체계를 도입하고, 1986년에는 유
입통제법(Influx Control Act)을 폐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현상
유지가 지배적이던 농촌 지역22)에서의 토지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
다. 따라서 자원과 부(富)의 재분배에 대한 요구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남아공에서 흑인 토지 강탈은 백인 농장주들 간의 경쟁을 완화하고, 농
장과 광산에서 일할 수 있는 값싼 노동 풀(pool)을 창출하려는 욕구 때문
에 발생했다. 토지 소유권과 통제 패턴 역시 흑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통제 기제(mechanism) 및 자본주의 경제에 요구되는 인구 잉여를 근본적
으로 구조화시켰다(Thwala 2006, p. 59).
다른 한편, 이전의 토지 개혁 정책들에 의한 개인, 가족 및 공동체의
사회적 이탈(social dislocation)은 깊게 상처를 내는 방식으로 ‘사회의 피륙
(fabric of society)’을 찢어 놓았다(Walker 2002, p. 8). 게다가 이것은 과

22) 남아공의 농업 구조는 본질적으로 아주 이원적이다. 이전의 백인 농촌 지역은 대규모


생산에 종사하고 세계 시장과 강하게 연결되는 자본 집약적인 상업적 농업(commercial
farming) 부문이다. 이에 반해 이전의 흑인 홈랜드는 저투입(low-input), 노동 집약적 형
태의 생계 생산에 지배되는 궁핍한 부문이다(Hall 2004, p. 213; Lahiff 2007a, p. 3;
Makhwaje 2008, p. 8 참고). 과거 정부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들 두 부문은 근대와 전
통을 각각 반영한다(Wolpe 1972).

제4장 아파르트헤이트 시대(1948~93년)의 토지 정책 ❙63


거의 인정된 가치와 조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계속해서 사회
적 응집력(social cohesion)을 손상시키고 개발 노력을 지연시켰다.
1991년 3월 12일에는 󰡔토지개혁․동반법안백서(White Paper on Land
Reform and Accompanying Bills)󰡕가 공표되었다. 이와 더불어 남아공 정
부는 토지 개혁에 대한 국민당의 일반적 접근―구체적인 정책, 이행 법률
등―을 시작했다. 출발점으로서 󰡔토지개혁․동반법안백서󰡕는 토지 접근
권을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인정하고, 자유 기업과 사유지 소유권이 만연
해 있는 시장 경제의 작동을 통해 획득될 수 있는 접근권을 제안했다
(Coles 1993, p. 726). 이 백서는 상당한 논의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서는 토지 개혁에 대한 남아공 정부의 가장 포괄적
이고 명확한 진술로 남아 있다. 󰡔토지개혁․동반법안백서󰡕는 세 개 영역
에서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
ⅰ) 토지 권리에 대한 접근 가능성 ⅱ) 토지 소유권의 질과 완전성
ⅲ) 효과적인 토지 이용.

첫째, 토지 권리와 관련하여, 정부는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토지 취득


과 소유권에 대한 인종적 제한을 철폐하고자 했다(Coles 1993, p. 726).
이를 통해 정부는 자치 영토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법적 지위를 없애려
고 했다. 󰡔토지개혁․동반법안백서󰡕는 정부가 모든 사람에게 토지에 대
한 접근 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해 민간 및 공공 부문에서 여러 수단을 강
구할 것이라 했을지라도 과거의 정책이나 역사적 사건을 통해 강제로 재
산을 빼앗긴 사람들의 토지를 되돌려 주는 것에 대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둘째, 토지 소유권의 질 및 완전성과 관련하여 󰡔토지개혁․동반법안백

64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서󰡕는 정부가 보다 저급한 질서―즉, 인종에 기반한 토지 보유권―를 향
상시키는 정책에 전념하고, 완전한 소유권이나 보다 나은 토지 보유권에
전념해줄 것을 표명했다(Coles 1993, p. 727). 「토지개혁․동반법안백서」
는 부족적 토지 보유 체계가 계속해서 개인적 토지 보유 체계와 나란히
허용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반면 제안된 정책은 전통적 공동체 체계의
확대를 반대했다. 그러나 정부는 부족 공동체에게 완전한 소유권과 더불어,
정부나 남아공개발신탁업체(SADT: South African Development Trust)
가 신탁 형태로 소유하고 있는 어떤 토지를 양도할 수 있다. 정부는 토지
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고 토지 소유권의 완전성을 보전하
기 위해, 주택 이용 가능성을 개선하면서 불법적 무단 거주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조치를 제안했다.
󰡔토지개혁․동반법안백서󰡕의 세 번째 초점은 토지 이용이었다. 이 영
역에서 정부 정책은 농촌과 도시의 토지 이용에 집중하고, 전체 인구의
이익을 위해 효율적인 토지 이용을 옹호했다(Coles 1993, p. 728). 지역적
개발 요구, 기회 및 조건은 인종을 남아공에서 공간적 배열의 열쇠로 되
돌려 놓았다. 특히 정부는 농촌 지역의 상업 농지의 생산력을 보호하고,
시장 경제 내에서 생산 체계의 개발을 촉진시키고자 했다. 이 정책은 마
케팅에 대한 보다 광범한 접근, 금융, 훈련, 확대 서비스 및 다른 혜택을
제공하면서, 농촌 지역을 개발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계획을 포함했다. 또
한 이 정책은 남아공개발신탁업체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면서 개발을 주관
할 수 있는 국영 기업의 창출을 제안했다.
1991년 남아공 정부는 수십 년 동안 국민당이 비백인을 통제해 왔던
아파르트헤이트 체계를 폐지하기 위해 남아공의 비백인 다수의 대표자들

제4장 아파르트헤이트 시대(1948~93년)의 토지 정책 ❙65


과 협상을 시작했다(Coles 1993, p. 700). 1992년 후반기 동안 정당 간의
의견 차이는 협상 종료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남아공 사람
들에게 사회․정치적 생활에서 더욱 공정한 참여 및 자원에 대한 접근권
을 허용하는 새로운 헌법과 정치 체계를 개발하기 위해서 1993년 초반에
는 회담이 재개되었다.
남아공의 새로운 민주 시대를 예고한 1993년의 임시 헌법은 토지 개혁
에 대한 상세한 조항을 포함하지 않았다(Rugege 2004, p. 3). 이 헌법은
협상 과정에서 주요 이익 집단들, 즉 한편으론 아프리카민족회의와 그 동
맹자 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국민당 정부와 그 동맹자들 간의 협상을
통해 만들어진 타협안이었다. 그 헌법에서 재산권의 포함 문제는 대단한
논쟁거리였다. 해방 운동 측의 몇몇 사람은 이것이 토지 개혁 프로그램을
실행하려는 민주 정부의 노력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유로 기존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재산 조항(property clause)에 반대했다. 또한 “남아공
신헌법에서 기존의 재산권을 확고히 하는 것은 수 세대 동안의 아파르트
헤이트와 강탈의 결과를 인권으로 정당화하고 확고히 하는 것이다”라는 주
장이 제기되기도 했다(Budlender 2000, 재인용: Rugege 2004, p. 3).
다른 한편, 당시 정부와 그 지지자들은 현 지주들에 대한 보상 없이 토
지가 국유화되지 않고, 토지에 굶주린 대다수 사람들에게 양도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그러한 조항의 포함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결국 모든 정
당은 권리 법안에 재산 조항을 포함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포괄적인
토지 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은 없었다. 유일한 조항은 차별적
법률하에서 그러한 권리를 박탈당한 개인이나 공동체를 위한 토지 권리
반환에 관한 것이었다.

6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 남아공 사회의 변화와 토지 개혁


2. 토지 개혁 정책의 방향
3. 토지 개혁 상황
4. 토지 개혁 정책의 제 문제
새로운 남아공에서 토지 개혁은 사회․경제적 관계를 변화시키고, 친
빈곤층(pro-poor) 발전을 위한 구조적 토대를 제공하는 농촌 재구조화 프
로그램의 핵심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닌다(Hall 2004, p. 214). 뿐
만 아니라 토지 개혁은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수행한다.23) 즉, 토지 개혁
은 국가 건설 과정의 일부분으로 역사적 부당함을 시정하려는 남아공의
실제적(tangible) 증거이다. 농촌 인구의 70%가 빈곤선(poverty line) 아
래에 살고, 남아공 인구의 3분의 1이 전체 국토의 13%가 채 안 되는 지역
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들 두 가지 기능의 중요성은 특별하
다고 할 수 있다. 1994년에 집권한 남아공 민주 정부는 경제 민주화를 실
현하기 위한 주된 방법 중의 하나로 토지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아래
에서 보게 되듯이, 정부의 야심찬 계획에도 불구하고 토지 개혁은 수많은
장벽에 부딪혀 왔으며, 그 결과 가시적인 성과도 미미했다. 이 장에서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만델라 정부가 실시한 토지 정책의 내용을 살펴
본 후, 이 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자 한다.

23) 남아공의 토착적 토지 체계의 본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시


대 이후의 토지 개혁 계획에서 중요하다. 첫째, 환경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식민
지 이전의 아프리카 토지 체계는 고유한 자원 관리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Glavovic 1991, p. 316, 재인용: Coles 1993, p. 703). 둘째, 대다수의
남아공 사람들은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가치는 변화 중인 법률 체계 내에서 보호하고 수
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Glavovic 1991, p. 317, 재인용: Coles 1993,
p. 703). 셋째, 유럽인의 침입과 정착이 남아공 반투인과 토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
화시켰을지라도, 식민지 이전 체계의 몇몇 특징은 특히 홈랜드에서 여전히 존속되고 있
다. 남아공의 토착적 토지 체계의 가장 중요한 양상은 토지의 공동 보유이다(Glavovic
1991, p. 283, 재인용: Coles 1993, p. 703). 즉, 추장이나 우두머리는 토지를 소유하거
나 보유하고, 그것을 개인과 집단에게 분배할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토지 보유 요소의
지속적 존재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이후의 토지 개혁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68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1. 남아공 사회의 변화와 토지 개혁

토지 개혁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남아공에서 입법화된 아


파르트헤이트의 종식과 관련된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웨
이너와 레빈이 주장하듯이 남아공에서 발생한 변화의 본질은 농촌의 재
구조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기 때문이다(Weiner and Levin
1995, 재인용: Bob 1999, p. 74). 민주남아공회의(CODESA: Congress
for a Democratic South Africa) 협정은 남아공의 토지 개혁을 위한 뼈대
를 만들었다. 주요 이해 당사자들은 장시간의 논의와 격렬한 토론을 통해
토지 개혁의 범위와 가능한 선택을 결정했다. 레빈과 웨이너는 남아공 맥
락에서 적절한 두 가지 형태의 변화를 확인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정
치 변동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적 혹은 급진적 개혁이다(Levin and
Weiner 1996, 재인용: Bob 1999, p. 74). 전자는 동맹의 창출과 엘리트의
협상 과정을 통해 정치가 정치인과 관료의 영역(preserve)이 되는 엘리트
협정 민주주의의 창출에 토대를 두고 대중과는 결별한다. 온건파와 개혁
파 간의 동맹은 필연적인 사회․경제적 보수주의를 통해 현재 상태를 유
지하는 민주주의 형태를 발생시킨다. 후자는 민주적 대중 운동을 변화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장기간의 구조적 변혁 투쟁의 목적은 대중 운동과 활
동가에 의해 지속적으로 주창되어야 한다.
레빈과 웨이너의 주장에 의하면, “남아공의 변화가 엘리트 협정 민주
주의에 제한된다면, 중대한 토지 및 농업 개혁을 위한 전망은 요원하다.
한 가지 이유는 쉽게 변하지 않는 권력 소유자들은 토지 및 농업 개혁의
내용과 제도적 형태를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69


다”(Levin and Weiner 1996, p. 96, 재인용: Bob 1999, p. 74). 이러한
접근은 농촌 지역에서 토지 개혁이 토지와 권력관계를 개혁하거나 재구
조화하는 것을 방해하면서 비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견해
와 관련하여 웨이너와 레빈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Weiner and Levin
1995, p. 25, 재인용: Bob 1999, p. 74).

우리는 엘리트 협정적이며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가들이 상당량


의 질 좋은 토지를 가난한 농촌 사람들에게 넘겨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믿는다. 지나치게 시장 지향적인 농촌 토지 개혁의 수혜자
는 농업 회사, 정치인, 흑인 사업가 및 상당한 액수의 농외소득이
있는 농촌 가구가 될 것임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시장에 토대
를 둔 해결책은 토지 문제를 풀 수 없다. 왜냐하면 대개의 농촌 사
람들―특히 가난한 여성과 젊은이―은 또 다른 갈등과 싸움을 양
산하면서 여전히 주변화된 채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건․발전프로그램(RDP: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Program)’


의 토지 개혁 계획은 농촌 개발 일반의 추동력으로 간주된다(Bob 1999,
p. 74). 토지문제부(DLA: Department of Land Affairs)는 재건․발전프
로그램에 의해 확인된 10가지의 광범한 목적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 목표는 󰡔남아공 토지정책백서(White Paper on South
African Land Policy)󰡕에 나타나 있다(DLA 1997).

ⅰ) 천연자원―토지, 물, 기타 등등―을 가장 바람직하게 사용


하라.
ⅱ) 5년 내에 농지 중의 30%를 백인으로부터 흑인에게 양도하라.

70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ⅲ) 경제적으로 생존 가능한 농업용지(agricultural holdings)를
창출하라.
ⅳ) 토지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인식하라.
ⅴ) 토지 준비에서 역사적으로 주변화된 집단들에 우선순위를
매겨라.
ⅵ) 모든 남아공 사람들이 살 장소와 안정된 보유 조건을 가지
도록 보장하라.
ⅶ) 모든 남아공 사람들의 소득 및 삶의 질을 향상시켜라.
ⅷ) 다양한 토지 이용 가능성을 제공하라.
ⅸ) 보다 광범한 농촌 개발 구성 요소에 연결고리를 제공하라.
ⅹ) 보다 나은 지역 정부 조직에 연결고리를 제공하라.

위의 목적들은 다양한 토지 개혁 원리에 의해 달성된다(DLA 1997, p.


12). 사회 정의 원리는 토지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고 주장한다. 단순한
정의(justice)의 문제로서, 정부는 수 세대 동안의 강탈과 아파르트헤이트
의 결과를 시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무토지(landlessness) 현상을 해
결하며, 남아공의 불평등한 토지 분배를 개선해야 한다. 빈곤의 측면에서
우선순위는 소득과 식량 확보에 기여할 수 있는 토지를 필요로 하는 가난
한 사람들에게 두어져야 한다. 이것은 토지를 필요로 하는 소외된 집단들
―여성,24) 쫓겨난 소작 노동자, 토지가 없는 농장 노동자 등―에 대한 확

24) 남아공 농촌 지역에서 토지 권리를 포함하는 젠더 관계의 많은 측면은 관습법에 의해


결정된다. 관습법에 따르면 여성은 계약을 하거나 법정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법
률적․사회적 미성년자다(Jacobs 2004, p. 9; Jacobs 2001 참고). 대개의 페미니스트 학
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추장의 권위는 여성의 토지 접근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Bob 1999; Haripriya and Gilmartin 2002). 최근 남아공에서는 결혼 관행의 변화 및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71


인을 요한다. 수요에 기반하고자 하는 태도는 이전의 토지 정책들이 정부
가 입안한 계획과 공급 주도적 접근의 토대 위에서 작동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부적절하고 인기 없는 프로그램으로 귀결되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토지 개혁 프로그램이 표출된 요구에 반응하고,
그 기제와 구조가 이것을 촉진할 수 있도록 확립되어야 한다.
또 다른 원리는 촉진자(facilitator)로서의 정부이다(Bob 1999, p. 75).
농촌 및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의 주변화와 그들의 허약한 조직 때문에 정
부는 그들의 요구가 조직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요구 표출을 촉진하고, 사람들에게 선택에 관
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 부가적 원리는 융통성의 원리이다.
남아공을 가로지르는 주별(州別) 및 지역적 차이는 국가 규범과 기준의
틀 내에서 정책의 융통성 있는 적용을 요구한다. 토지 개혁 정책은 경험
과 요구를 고려하여 적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참여, 책임 및 민주적 의사
결정도 주요 원리들로 간주된다.
정부와 여타 주체들의 파트너로서 공동체와 개인의 참여가 필요하다.
결정은 지역 수준에서 민주적으로 내려져야 한다. 양성(gender) 평등은
토지 개혁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
을 명확히 한다. 이것은 여성 지원자들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생존력과 환경적 지속 가능성도 강조되어야 한다. 즉,
지역 수준에서 개발된 토지 개혁 프로젝트는 경제적으로 생존 가능하고,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해야 한다. 토지에 대한 접근권과 통제권은 기본적

전통적 형태의 결혼 쇠퇴로 인해 토지 분배 체계가 논쟁 대상이 되어왔다. 이 문제와 관


련된 더욱 상세한 내용은 카즌스와 음웰리(Cousins and Mwheli 2007)를 참고하라.

72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인권을 보장하는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욕구―특히 거주
욕구와 생산 욕구―를 해결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토지의 생산적 가치
는 생계 지향적인 농촌 공동체에 특히 중요하다. 토지 개혁 원리들이 사
회 정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토지문제부의 토지 개혁
프로그램은 토지를 교부하기 이전에 가난하고 영향력을 박탈당한 공동체
에게 토지 권리를 보장해주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위의 사항들은 칭찬할 만한 목적이자 원리들이다. 그러나 토지문제부
에 의해 도입된 정책들에 대한 한 가지 비판은 수요 주도적 과정
(demand-led process)이 정부가 그 자신의 어떤 프로젝트도 시작하지 않
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Husy 1995, 재인용: Bob 1999, p. 76).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정부가 그 프로젝트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
는다는 점이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남아공의 토지 개혁 과정에서 선택의 폭을 좁혀왔
다.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자유헌장에 기술되어 있는 “토지는 경작자에게
로” 혹은 “토지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 간에 공유될 것이다”라는 신조
(doctrine)는 그 후에 망각되었다. 시장에 토대를 둔 토지 개혁 과정의 본
질이란 정부는 ‘자발적 판매자’로부터 토지를 사야만 하고, ‘자발적 구매
자’에게 그것을 팔아야만 한다는 것이다(Bob 1999, p. 76). 판매자는 역
사적으로 혜택을 받은 백인 계급이며, 구매자의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혜
택을 받지 못한 아프리카인 계급이다. 그들이 백인에게 도둑맞은 토지를
사는 데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만의 아프리카인
은 토지를 원하고 있고, 현재의 토지 개혁 프로그램에 참여할 준비가 되
어 있다. 그래서 자발적 구매자는 부족하지 않다. 자발적 판매자들은 종종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73


백인 상업농(commercial farmers)이다. 그들은 부풀린 가격으로 토지를
판다(van Zyl et al. 1996, 재인용: Bob 1999. p. 76). 실제로 토지 개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백인 상업농인 셈이다.
시장에 토대를 두는 토지 개혁 프로그램의 한 가지 핵심적 구성요소는
상업적 농업 부문을 지나치게 변화시키거나 재구조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 이것은 세계은행의 접근 방법과 일치한다. 세계은행의 입장에 의하면
산업화된 대규모 농업이나 흑인 소자작농의 상업적 생산이야말로 세계
인구―남아공의 경우에는 도시 거주자들―를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한 잉
여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World Bank 1993, 재인용:
Bob 1999, p. 76). 그래서 상업 부문―주로 백인 남성 농민들―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를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사고 노선(line of thinking)과 일치
한다. 윌리엄스(Williams 1996)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접근 방법은 생
계형 농민의 진입을 막는다. 이러한 견해는 아주 위험하다. 특히 가난한
농촌 가구의 식량 안보 확보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주변화되고 있
는 이들 가구는 가내 소비용 식량을 충분히 생산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그들의 소득 부족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식량을 상업적 농업 부문에서 구
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남아공 신헌법의 윤곽을 잡았던 민주남아공회의 협정에도
불구하고 ‘재건․발전프로그램’의 탄생은 변형적이며(transformative) 빈
곤에 초점을 맞춘 의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Bob 1999, p. 76). 많은
것이 제안되고, 많은 것이 ‘재건․발전프로그램’으로부터 기대되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토지 개혁 과정에서 시장에 대한 강박 관념은 그 프로
그램의 초점인 사회적 재손질과 모순된다. 남아공에서 주요 거시 경제적

7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전략으로서 ‘성장․고용․재분배(GEAR: Growth, Employment and Redistribution)’
프로그램의 출현 및 ‘재건․발전프로그램’의 쇠퇴는 일반적으로 농촌 개
발을 위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Bob 1999, pp. 76-77). ‘성장․고용․재
분배’ 프로그램은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주도하는 정부에 의해 처음으로
표현된 변형적 의제로부터 많은 점에서 후퇴했다. 와일드슈트와 헐버트의
주장에 따르면, ‘성장․고용․재분배’ 프로그램의 주요 초점인 도시 지역
에서의 고용 창출은 농촌 지역으로부터의 이주와 보조를 맞출 것 같지 않
다(Wildschut and Hulbert 1998, 재인용: Bob 1999, p. 77). 나아가 그들
은 농촌의 저발전과 빈곤이 일반적인 경제성장과 가속화되는 도시화에
의해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번스타인은 복지 국가주의적 접
근이나 실업 흡수 정책은 생산적인 상업농(commercial farmers) 형태로
아파르트헤이트 농업의 이중성을 재생산하고, 삶을 거의 이어갈 수 없는
주변적 흑인 소농을 재생산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Bernstein 1992, 재
인용: Bob 1999, p. 77).
‘성장․고용․재분배’ 프로그램의 탁월함을 감안하여 농촌개발체제
(RDF: Rural Development Framework)에서 윤곽이 그려진 농촌 개발 전
략은 지역의 경제성장을 통해 직업 창출에 집중했다. 그래서 󰡔남아공 토
지정책백서󰡕가 토지 개혁을 농촌 지역에서 경제 개발의 중심적 구성 요소
로 간주한 반면, ‘성장․고용․재분배’ 프로그램 내에 위치해 있는 농촌
개발 전략은 이 기능을 토지 개혁에 할당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가 토
지 개혁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
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75


2. 토지 개혁 정책의 방향

1994년에 집권한 남아공의 첫 번째 민주 정부는 토지 및 농업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주도한 정부는 상업적 농업
(commercial farming) 부문뿐만 아니라 깨지기 쉬운 정치적 타협을 유지
하면서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the dispossessed)로부터의 강한 요구를 균
형 잡아야 할 필요에 직면했다. 정부는 세 갈래의 토지 개혁 정책을 선택
했다(Lyne and Darroch 2003, p. 1).

ⅰ) 토지 반환(land restitution): 법률적 과정에 따라, 1913년 이


후에 자신들의 토지를 몰수당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토지를 되찾거나 그것에 합당한 재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ⅱ) 토지 보유 조건 개혁(land tenure reform): 이것은 이전 홈랜드
에서의 불안정한 토지 보유 조건에 집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ⅲ) 토지 재분배(land redistribution): 이것은 농촌의 토지 소유
권에서 인종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민주 정부의 토지 개혁 정책은 1994년의 ‘재건․발전프로그램’에서 처


음으로 공표되었다. 이 문서에서 토지 개혁은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
들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ANC 1994, pp. 7-8, 재인용: Walker 2002, p. 8).

최우선 과제는 사람들의 기본 욕구―직업, 토지, 주택, 물, 전기, 전


기 통신, 교통수단,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 영양, 의료 서비스, 사회복
지―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76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가족과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다. … 프로그램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양의 토지를 재분배하고,
100만 호 이상의 집을 건설하고, 모든 사람에게 깨끗한 물과 공중위생
을 제공하고, 250만의 새로운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고, 모든 사람에게
저렴한 의료 서비스와 전기 통신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재건․발전프로그램’의 주요 원칙은 1996년에 의회의 승인을 받은 남


아공 신헌법(new Constitution)에서 확고해졌다(Lyne and Darroch 2003,
p. 1). 이것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재산 조항에 포함되어 있다. 이 조항은
토지 반환 및 토지 재분배를 통해 공익을 위해 취득된 토지에 대한 공정
하고 시장 부합적인 보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Lyne and Darroch
2003, pp. 1-2). 자발적인 시장 거래를 통한 토지 재분배는 5년 동안 이전
에 혜택을 받지 못한 80여만 가구에 30%의 백인 소유 농장을 양도하는
토지 개혁의 선도적 우위를 점했다. 그래서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이 프로
그램이 경제성장을 창출할 수 있는 고효율적인 소규모 농장 부문을 만들
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Lyne and Darroch 2003, p. 2). 여기에
서 ‘이전에 혜택을 받지 못한’ 혹은 ‘역사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이라는
어구는 이전에 인종 분리의 토대 위에서 토지 시장으로부터 배제되었던
남아공 사람들을 가리킨다.
1996년 헌법은 토지 개혁에 관해 더욱 구체적이며, 재산 문제를 거론
함에 있어서 더욱 균형이 잡혀 있었다(Rugege 2004, p. 3). 토지 문제는
권리의 문제로 다루어지고, 권리장전(Bill of Rights)에 포함되었다. 헌법
제25절은 자의적 박탈에 대해 재산권을 보장하지만, 또한 공공의 목적이
나 공익을 위해 적정한 보상을 조건으로 사유 재산을 수용(收用)할 수 있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77


는 국가 권력을 제공한다. 공익은 “토지 개혁 및 남아공의 모든 천연자원
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가져올 개혁에 대한 국가의 공약”을 포함하기 위
해 구체적으로 정의되었다. 몰수의 경우에 보상으로 되찾을 수 있는 액수
는 시장가치에 대한 고려에 달려 있다. 헌법 제25절 제3항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보상금 지불 액수, 시기 및 방법은 공익과 영향을 받은 사람들


의 이익 간의 공정한 균형을 반영하면서 정당하고 공정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요소를 포함하여 모든 관련 요소도 고려되어야 한다.
ⅰ) 그 재산의 현재 이용 상태, ⅱ) 그 재산의 취득과 사용의 역사,
ⅲ) 그 재산의 시장가치, ⅳ) 그 재산의 취득과 유익한 자본 개선
에서 직접적인 국가 투자금과 보조금의 양, ⅴ) 몰수 목적. 동시에
재산 조항은 토지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들을 포함한다. 이들
조항은 국가에게 토지에 대한 보다 많은 접근을 유발할 수 있는
의무를 부과한다.

1996년의 공동재산협회(CPA: Communal Property Association)법은


혜택을 받지 못한 공동체가 재산을 집단적으로 취득하여 관리하고, 즉각
적으로 공동 권리를 기록하고 등록하는 것을 허용했다(Everingham and
Jannecke 2006, p. 549). 선출된 피신탁인은 그 공동체를 대신해서 토지
보유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획득했다. 1997년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재
건․발전프로그램’에 근거하여 토지 개혁 프로그램의 주요 목표를 다음
과 같이 재진술했다(DLA 1997, 재인용: Bradstock 2005, p. 6).
ⅰ) 아파르트헤이트의 부당한 처사를 수정할 것 ⅱ) 국민적 화해와 안

7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정을 촉진할 것 ⅲ)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것 ⅳ) 가구의 복지를 향상시키
고 빈곤을 경감할 것.

「남아공 토지개혁백서(White Paper on South African Land Reform)」


는 빈곤을 경감하고 과거의 부당한 처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수요 주도적
이고 참여적인 토지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백서에는 농촌의 토지
개혁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경제적 주장이 명시되었다(DLA
1997, pp. 35-36).

ⅰ) 더 많은 가구들은 일관된 토대 위에서 충분한 식량에 대한


접근권을 가질 것이다. ⅱ) 소규모 생산에 대한 기회: 국제적 연구
에 근거해 볼 때, 보다 작은 농업 단위는 종종 더욱 집약적으로 경
작되고 더욱 노동 흡수적이다. ⅲ) 토지 개혁은 실업을 경감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ⅳ) 토지 개혁은 비즈니스와 기업 문
화를 지원할 것이다. 재산권은 기업 활동에서 투자 자본에 대한 접
근을 제공한다. ⅴ) 토지 개혁은 환경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안정된 보유 조건은 토지 개량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전제 조건


으로 간주되며,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토지 이용 관행을 장려한다
(Oettle et al. 1998, p. 56). 이 백서의 주장에 의하면 이전 홈랜드에서의
토지 무소유와 과밀 인구 그리고 대규모 농장의 부적절한 농사 방법은 심
각한 토지 악화와 토양 침식을 초래해왔다. 토지 개혁 프로그램이 예방적
이고 향상된 자원 관리 수단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환경 악화
라는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것이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남아공에는 두 명의 토지문제부 장관이 있었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79


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다소 상이한 정책 정향을 지니고 있었다(Jacobs
2004, p. 5). 데렉 하네콤(Derek Hanekom)하의 첫 번째 시기 동안 토지
재분배 정책은 여전히 시장에 기반한 ‘자발적 판매자/자발적 구매자’ 구
조 내에 머물긴 했으나, 가난한 사람들―즉,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
들이나 토지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향했다. 이 단계에서 토지 재분배는
주로 다양한 주(州)에서 시험 프로그램의 형태를 띠었다. 가구들은 한 번
에 1만 6,000랜드(Rand)의 보조금이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보조금
은 저소득 가구들을 위한 것이었다. 공식 문서에서는 남편뿐만 아니라 부
인도 토지 개혁 수혜자로 기재되었고 기재되고 있다. 그러나 주로 토지
가격 때문에 보조금은 종종 가구들 간에 공동 출자되었다. 토코 디지자
(Thoko Didiza)가 장관으로 임명된 1999년에는 정책 방향에 변화가 발생
했다. 토지 재분배 정책은 199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세계은행의 제안들
을 포함하면서, ‘성장․고용․재분배’ 프로그램의 신자유주의 성향에 따
라 바뀌었다. 윌리엄스가 주목했듯이 세계은행의 제안은 토지를 생산적으
로 혹은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신흥 농민 계급의 발전을 선호했다
(Williams 1996).

3. 토지 개혁 상황

1994년 선거 이후에 전(前) 지역․토지문제부(DRLA: Department of


Regional and Land Affairs)는 토지문제부로 바뀌었다. 토지문제부는 앞
서 언급한 ‘재건․발전프로그램’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재구성되었
다. 이 부처는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고 새로운 정책 목적을 공식화했다.

80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토지문제부는 거대한 토지 개혁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채택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토지 개혁은 시장 선도적(market-led)이고 수요 주도적
(demand-driven) 과정 내에 자리를 잡았다. 아래에서는 1994년부터 1999년
까지 진행된 토지 재분배, 토지 반환 및 토지 보유 조건 개혁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 토지 재분배

토지 재분배는 토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나, 토지에 대해 불충분


한 접근권을 가진 사람에게 분배할 목적으로 국가가 토지를 취득하는 것
을 가리킨다(Rugege 2004, p. 7). 토지 재분배는 광범한 영역에 토대를
둔 프로그램이다. 토지 재분배는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
들에게 주거용 및 생산용 토지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Bob
1999, p. 79). 주요 목표 집단들은 도시와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 노동 임
차인들, 농장 노동자들, 농업에 새로 종사한 사람들이다(DLA 1997). 또
한 토지 재분배 프로그램은 소농의 요구에 관심을 가진다. 재분배 프로젝
트는 세 가지 토지 개혁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선진적이다.
재분배 프로그램의 중요성은 예산 할당에도 반영되었다. 토지 재분배
를 위한 1996~97년 예산은 토지문제부의 전체 예산 할당 중의 절반이 넘
는 50.9%였다(표 5-1 참고). 재분배 프로그램은 수요에 기반한 토지 개혁
구성 요소이다. 그래서 재분배 프로그램은 권리에 기반한 보유 조건개혁
및 반환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가구에 혜택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토지 재분배는 가난한 가구들이 토지를 구매
할 수 있도록 ‘정착․토지취득보조금(SLAG: Settlement/Land Acquisition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81


표 5-1. 토지문제부의 1996~97년 예산액
(단위: 천 랜드, %)
프로그램 경비 합계
관리 56,347 8.7
조사 및 토지 정보 65,778 10.2
토지 권리 반환 115,730 17.9
토지 재분배 328,671 50.9
보유 조건 개혁 8,395 1.3
토지 개혁 수행 27,347 4.2
토지 이용 계획 및 개발 34,028 5.3
보조 서비스 및 관련 8,957 1.4
합계 654,253 99.9
자료: Bob(1999), p. 95.

Grants)’을 만들어내는 형태를 띠었다(Hall 2004, p. 215). 왜냐하면 가구


당 1만 6,000랜드의 보조금은 토지 가격25)에 비해 적었고, 이것은 토지

25) [표 5-2]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2,000랜드를 상수(constant)로 정했을 경우에 남아


공 전체의 헥타르당 토지 평균가를 보여 준다(Aliber and Mokoena 2002, p. 5). 이 표
에 따르면 헥타르당 평균가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현저한 하향 추세―전체 기간에
대해서는 약 28%―를 보이다가, 이후에 부분적으로 회복되었다. 2000년의 평균 토지
가격은 1995년에 비해 약 14% 낮았다.

표 5-2. 남아공의 헥타르당 토지 평균가(1995~2000년)

구매 연도 헥타르당 평균가(랜드) 연간 백분율 변화 1995년 대비 백분율 변화


1995 1,204 ― ―
1996 1,048 -13.0% -13.0%
1997 992 -5.3% -17.6%
1998 866 -12.7% -28.1%
1999 936 8.1% -22.3%
2000 1,031 10.1% -14.4%
자료: Aliber and Mokoena(2002), p. 6.

또한 [표 5-3]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주별(州別) 헥타르당 실제 평균가를 보여 준다


(Aliber and Mokoena 2002, p 8). 이 표에 의하면 하우텡 주는 강한 하향 추세를 보인

82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구매에 충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그들의 보조금을 공동 출자할 수 있
는 대규모 집단들을 종종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26)
1996년 토지․농업정책센터(LAPC: Land and Agriculture Policy
Center)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토지를 요구한 가구들 중의 단지 0.2%
만이 토지를 교부받은 것으로 나타났다(표 5-4 참고). 토지 수요와 토지교
부는 주별(州別)로 적지 않은 편차를 보인다. 크와줄루-나탈 주는 가장 높
은 토지 수요(78.3%, 1,23만 7,000가구)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곳에 교부
된 토지는 0.5%에 불과했다.

반면, 음푸말랑가(Mpumalanga) 주에서는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 표는 토지 시


장의 가격 불안정은 지리적 차원을 지닌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표 5-3. 주별 헥타르당 실제 평균가(1995~2000년)

백분율 변화
주 이름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1995~2000)
이스턴케이프 735 690 707 483 539 584 -25.8%
자유 주 832 863 719 641 751 800 -4.1%
하우텡 12,245 12,645 8,574 7,300 8,127 4,735 -158.6%
크와줄루-나탈 2,856 2,761 2,497 2,610 2,509 2,457 -16.3%
림포포 1,123 1,048 946 865 946 1,163 3.5%
음푸말랑가 1,055 1,163 1,195 1,074 1,278 1,563 32.5%
노스웨스트 1,689 1,401 1,538 1,568 1,673 1,749 3.4%
노던케이프 222 198 189 167 207 215 -2.9%
웨스턴케이프 1,826 1,431 1,726 1,089 1,442 1,735 -5.2%
자료: Aliber and Mokoena(2002), p. 7.
26) 이 모델은 복잡한 집단 역학 때문에 광범한 비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모델은 인구 과
밀을 재생산하고, 지원 가능한 토지와 사람들이 생계를 창출할 수 있는 자원을 고려하
지 않았기 때문이다(DLA 1997, 재인용: Hall 2004, p. 215).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응
및 개발에서 국가의 역할에 관한 정부 생각의 광범한 변화에 따라, 1999년 농업․토지
문제부(Department of Agriculture and Land Affairs) 장관은 토지 재분배에 대한 지급
유예(moratorium)를 선언했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83


표 5-4. 토지 수요 및 교부 상황

평균 가구 토지 수요 토지 교부
연번 주 이름 가구 수(백만)
규모 가구(%) 가구(%)
1 노던케이프 0.213 3.5 40.0 0.7
2 이스턴케이프 1.106 5.3 70.3 0.4
3 웨스턴케이프 1.056 3.9 74.5 0.04
4 크와줄루-나탈 1.237 6.2 78.3 0.5
5 자유 주 0.618 4.0 50.0 0.2
6 노스웨스트 0.879 3.9 40.1 0.2
7 북부 주 0.764 5.4 72.4 0.1
8 음푸말랑가 0.563 4.7 68.0 0.7
9 하우텡 1.887 3.8 76.0 0.03
남아공 전체 7.887 4.8 67.7 0.2
자료: LAPC(1996), 재인용: Bob(1999), p. 79.

[표 5-5]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증서 사무소(Deeds Office)의 데이


터베이스에 등록된 전체 토지 거래의 한 부분으로서뿐만 아니라 전체 상
업 농지의 한 부분으로서, 토지 재분배 프로그램하에 재분배된 토지의 양
을 보여 준다(Aliber and Mokoena 2002, p. 8). 예컨대 1999년 토지 개혁
수혜자들에게 재분배된 토지는 그 해 동안 증서 사무소에 보고된 전체 토지
거래량의 3%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증서 사무소의 보고에 따르면, 1995
년부터 2000년까지 거래된 약 3,300만 헥타르의 토지 중에서 불과 2.3%
만이 토지 재분배 프로그램하에서 재분배되었다. 상업 농지의 경우에는 전체
거래량의 약 0.9%만이 토지 재분배 프로그램을 통해 재분배되었다.27)

27)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느린 토지 재분배 속도에도 불구하고, 토지문제부나 토지권리


반환위원회(CRLR: Commission on Restitution of Land Rights)가 토지를 수용(收用)하
기 위해서 헌법 조항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부가 토지 개혁의 첫 번째
단계에서 ‘자발적 판매자와 자발적 구매자’의 관점을 견지하면서, 사업 투자자와 국제
투자자의 부정적 반응을 두려워하여, 정치적 결과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8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표 5-5. 전체 토지 거래 및 전체 상업 농지 거래에서 재분배된 토지 비중(1995~2000년)

DLA가 재분배한 전체 농촌 토지 전체 농촌 토지 거래 중 전체 상업 농지 거래 중
연도
토지(헥타르) 거래(헥타르) 재분배된 토지(%) 재분배된 토지(%)
1995 11,171 4,721,085 0.2% 0.01%
1996 67,887 4,617,915 1.5% 0.08%
1997 140,524 5,719,425 2.5% 0.16%
1998 273,416 6,494,852 4.2% 0.32%
1999 174,287 5,704,042 3.1% 0.20%
2000 89,409 5,500,000* 1.6%* 0.10%*
합계 756,694 32,757,319 2.3% 0.88%
주: * 추정치임.
자료: DLA(1995, 2000) 및 Deeds Office data(1995, 2000), 재인용: Aliber and Mokoena(2002), p. 9.

[표 5-6]은 농촌 토지 거래의 한 부분으로서 토지문제부에 의해 재분배


된 토지의 양을 주별(州別)로 보여 준다(Aliber and Mokoena 2002, p.
8). 이 자료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의 기간에 걸쳐 집계되었다. 이 표
는 상당한 주별 편차를 드러낸다. 즉, 크와줄루-나탈 주에서는 농촌 토지
거래량의 12.3%가, 그리고 웨스턴케이프에서는 단지 0.4%가 토지문제부
에 의해 재분배된 토지였다. 우리는 재분배가 크와줄루-나탈 주의 토지

표 5-6. 전체 토지 거래에 분배된 주별 토지 비중(1995~99년)

주 이름 DLA가 재분배한 토지(헥타르) 농촌 토지 거래 점유율


이스턴케이프 45,507 2,649,807 1.7%
자유 주 65,117 3,869,432 1.7%
하우텡 4,913 404,231 1.2%
크와줄루-나탈 162,549 1,324,063 12.3%
림포포 26,484 3,029,095 0.9%
음푸말랑가 29,556 2,093,044 1.4%
노스웨스트 13,695 2,558,270 0.5%
노던케이프 371,120 7,922,420 4.7%
웨스턴케이프 15,110 3,406,957 0.4%
자료: DLA(1995, 2000) 및 Deeds Office data(1995, 2000), 재인용: Aliber and Mokoena(2002), p. 9.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85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예컨대 토지 가격에 대한 상승 압력 행사하기―
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웨스턴케이프 주나 노스웨스트 주의 경우에
는 확실히 그렇지 않다. 또한 이 표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 기간에
크와줄루-나탈 주의 토지 가격은 상당한 하락을 기록했다.
[표 5-7]은 농촌의 토지 시장이 남아공의 상이한 지역들에서 얼마나 활
발한지를 보여 준다(Aliber and Mokoena 2002, pp. 9-10). 1995년부터
1999년까지 5년 동안 전체 상업 농지 중의 6.3%가 평균적으로 거래되었
다. 이 표가 보여주듯 주별로 상당한 편차―이스턴케이프 주의 4.9%에서
하우텡 주의 9.8%까지―를 보인다. 이들 수치는 상속과 수용을 통해 소
유권이 변동된 토지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토지 재
분배는 농촌의 토지 시장을 적당히 활성화시켰다. 토지 거래량이라는 측
면에서 볼 때 토지 시장이 재분배 프로그램을 억제해왔다고 말할 수 없다.
1999년 말까지 남아공 전역에서는 408건의 토지 재분배 프로젝트가

표 5-7. 전체 상업 농지 대비 전체 토지 거래의 주별 비중(1995~99년)

주 이름 연평균 토지 거래(헥타르) 전체 상업 농지(헥타르) 점유율


이스턴케이프 529,961 10,815,867 4.9%
자유 주 773,886 11,572,000 6.7%
하우텡 80,846 828,623 9.8%
크와줄루-나탈 264,813 3,439,403 7.7%
림포포 605,819 7,153,772 8.5%
음푸말랑가 418,609 4,486,320 9.3%
노스웨스트 511,654 6,785,600 7.5%
노던케이프 1,584,484 29,543,832 5.4%
웨스턴케이프 681,391 11,560,609 5.9%
남아공 전체 5,451,463 86,186,026 6.3%
자료: Deeds Office data(1995, 1999) 및 Abstract of Agricultural Statistics(1999), 재인용: Aliber and Mokoena(2002),
pp. 9-10).

86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수행되었다(Aliber and Mokoena 2002, p. 10). 이것은 영업 중인 토지
시장을 가진 288개 자치구―즉, 이전 홈랜드 지역의 외부―는 각각 평균
1.4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재분배 프로젝트는 남
아공 전역에 골고루 분산되지 않았다.
[표 5-8]은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얼마나 많은 행정 장관 자치구가
재분배 프로젝트를 주최했는지를 보여준다(Aliber and Mokoena 2002, p.
10-11). 이 표에 의하면 영업 중인 토지 시장을 가진 행정 장관 자치구
중의 약 52%는 1994년과 1999년 사이에 단 한 건의 재분배 프로젝트도
수행하지 않았다. 나머지 약 23%는 단지 한 건의 재분배 프로젝트를 수
행했다. 이 기간 동안 소수의 자치구들―약 10% ―은 4건 이상의 프로젝
트를 주최했다. 또한 그 프로젝트의 약 46%는 영업 중인 토지 시장을 가
진 288개 자치구 중의 7% 이하에서 발생했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의
미한다. 첫째, 1999년 말까지 남아공에서는 재분배가 조금도 발생하지 않
았거나, 극히 미미한 정도로 발생한 곳이 많았다. 둘째, 그 효과에 상관없
이 토지 시장에 영향을 미쳤을 재분배 프로젝트는 아주 지역적이었다.

표 5-8. 행정 장관 자치구의 토지 재분배 프로젝트 보급률(1994~99년)

자치구당
행정 장관 자치구 수 전체에 대한 백분율
재분배 프로젝트 수
0 149 51.7%
1 66 22.9%
2 21 7.3%
3 22 7.6%
4 11 3.8%
5+ 19 6.6%
합 계 288 100.0%
자료: Aliber and Mokoena(2002), p. 11.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87


나. 토지 반환

집단지역법과 원주민토지법 등의 아파르트헤이트 법률을 지지하기 위


한 홈랜드 합병과 흑인촌(black spots) 청소 과정에서 생겨난 흑인의 강제
추방은 아파르트헤이트 탄압의 특징이 되었다(Hall 2004, p. 217). 또한
1990년대에는 이러한 강제 추방이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의 토지는 그들
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요구의 강력한 토대를 형성했다. 1913년의 원주
민토지법이 제정된 이래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토지 권리를 회복시
켜 주기 위해, 토지 반환 프로그램이 남아공 백인으로부터 남아공 흑인으
로 토지 권리를 재분배하는 별개의 과정으로 도입된 것은 1994년이었다.
토지문제부는 토지 반환 프로그램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DLA 1997, pp. 74-75).

반환 정책의 목적은 인종 차별적인 법률에 의해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토지를 되돌려주고 다른 반환 수단을 마련하여, 그러
한 방식으로 화해, 재건 및 발전이라는 매우 중대한 과정에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반환은 보다 광범한 토지 개혁 프로그램의 필수
적인 부분이며, 토지 재분배 및 보유 조건 개혁에 대한 요구와 밀접
하게 관련되어 있다. 1994년의 「토지권리반환법」 제122조(Rcsftutio
of Land Hgluts Act, 22 of 1994)와 「헌법」은 국가를 상대로 한
토지 청구의 해결을 위해서 법률적 뼈대를 제공한다. 국가는 협상
을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 토지청구법원(Land Claims Court)은 청구
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데 책임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잠재적인 토지 청구자들은 다섯

8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집단으로 분류될 수 있다(Levin 1997, 재인용: Bob 1998, p. 84): 강제
추방의 피해자들, 소작 노동자들,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 소유권
없이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 선조에 의한 토지 점유에 토대를 둔
역사적 청구권자들이 그것이다. 청구자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반환받거나
다른 구제책―예컨대 현금 보상 형태―을 선택할 수 있었다(Hall 2004,
p. 217). 청구자들을 지원하고 청구서를 심사하여 그들로 하여금 특별히
설치된 토지청구법원의 판결을 준비토록 하기 위해서 토지권리반환위원
회28)가 설립되었다. 청구는 청구자, 현재 소유자, 토지 소유자라고 주장
하는 사람 간의 협상과 중재를 통해 해결되었다(Bob 1998, p. 85).
토지청구위원회 위원장(Chief Land Claims Commissioner)은 토지청
구법원에 신청을 했다. 그는 법원의 명령을 통해 당사자들이 원만한 해결
에 도달하도록 요구했다. 분쟁 중인 토지 청구는 판결을 위해 토지청구법
원에 회부되었다. 토지를 청구하는 공동체들은 규모, 사회 조직 및 제도적
능력 면에서 다양했다(Marcus et al. 1996, 재인용: Bob 1998, p. 85). 또
한 그들은 공동체적 자유 보유권 및 차지권, 소작 노동, 전통적 보유 조건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보유 조건 협정을 반영했다. 반환 소송은 아주 다
양한 형태로 제기되었다. 이것은 보유 조건 협정이 다양하고, 강탈의 형태
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청구가 이루어진 후, 그것은 고려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
하는 토지청구위원회(Land Claims Commission)에 의해 평가되었다(Bob
1998, p. 85). 그 반응이 긍정적이라면 위원회는 그 청구가 반환 소송인지

28) 토지권리반환위원회는 설립 당시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었다(Walker 2002,


p. 42). 첫째, 이 위원회는 반환 관리에서의 역할 및 예산을 둘러싸고 토지문제부와 긴장
관계에 있었다. 둘째, 이 위원회는 직원 및 제도적 수용 능력의 심각한 부족에 시달렸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89


재분배 소송인지를 결정했다. 전자의 경우에는 적정한 보상금이라 간주되
는 금액이 지급된다. 후자의 경우에는 국가가 토지를 구매하여 그것을 비
율에 근거해서 할당한다. 반환은 다음과 같이 다양한 형태를 띠었다: 빼
앗긴 토지를 실제로 되돌려 주기, 대토(alternative land) 제공하기, 지불에
의한 보상, 청구자에게 정부의 주택 공급과 토지 개발에서 우선권 주기,
정착 지원, 정착 비용 지불 및 편의 서비스 제공.
[표 5-9]는 접수된 주별(州別) 토지 청구 건수의 비율을 보여 준다. 이
표에 의하면 농촌 지역에서보다 도시 지역에서 더 많은 청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숫자, 즉 개인적 청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농촌 지역에
서 더 많은 청구자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 지역에서는 청구자들이
청구서를 개별적으로 제출한 경향이 있었던 반면, 농촌 지역에서는 집단
적으로 청구서를 제출한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도시 지역보다는 농촌 지
역에서 단일 청구에 포함된 가구나 개인의 실제 숫자가 더 많은 경향이
있었다(Bob 1999, p. 86).

표 5-9. 주별 토지 청구 건수의 비율

연번 주 이름 도시(%) 농촌(%) 합계(%)


1 웨스턴케이프 34.1 1.7 29.3
2 노던케이프 1.2 2.9 1.5
3 자유 주 5.7 2.1 5.2
4 이스턴케이프 6.2 15.5 7.6
5 크와줄루-나탈 27.8 29.2 28.0
6 음푸말랑가 0.1 10.0 1.6
7 북부 주 0.7 10.6 2.2
8 하우텡 20.9 17.3 20.3
9 노스웨스트 3.3 10.6 4.4
합 계 100.0 99.9 100.1
자료: DLA(1998), 재인용: Bob(1999), p. 86.

9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청구서 제출 마감 기한인 1998년 12월까지 총 6만 3,455건29)이 제출
되었다(Hall 2004, p. 217). 이 중의 대부분은 도시의 개별 가구들이 제출
한 주거지 관련 청구들이었다. 농촌 지역에서는 대규모 토지에 대한 전체
공동체의 청구가 거의 2만 건에 달했다. 이 역사적 청구들을 지지하는 증
거를 축적하는 과정은 몹시 힘들고 시간 소모적인(time-consuming) 것으
로 판명되었다. 이것은 토지청구법원의 처리 과정이 느리고 번거로웠음을
의미한다(Walker 2002, p. 42). 게다가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과의 복잡한
협상 조건도 그 처리 과정을 더욱 지연시켰다. 이에 따라 많은 지역 당국
과 민간 개발자들은 토지 청구가 주요 개발 프로젝트―예컨대 도시 재개
발, 주택 건설, 환경 관광 사업 등―에 필요한 토지의 중요한 구역을 격리
시키고 있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결과로서 1996년경부터 반환
에 대한 헌법적 이상(ideal)은 많은 정부 관리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변색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반환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던 주 및 지역 수준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1997년까지 단 한 건
의 청구 사항만이 해결되었다. 1999년 이 프로그램은 곤경에 처했다. 이
러한 사실은 6만 3,455건의 청구 사항 중 단 41건만이 해결되었다는 것에
서 증명된다.

다. 토지 보유 조건 개혁

그간 남아공에서는 농장의 보유 관계를 개선하거나 농장 거주자와 소

29) 이 숫자는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워커(Walker 2002, p. 41)는 6만 3,500건, 밥


(Bob 1999, p. 88)은 6만 4,000건, 린과 다로츠(Lyn and Darroch 2004, p. 3)는 6만
8,878건이라 주장한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91


작 노동자에게 그들 자신의 토지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있었다(Hall 2004,
p. 218). 그러나 농촌에서 그 이상의 재분배 가능성은 없었다. 왜냐하면
소작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소유자의 재산권에 대한 정책적 강조를
약화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업 농장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들
―종종 ‘농촌 프롤레타리아’라고 간주된다―은 남아공 사람 중 가장 가난
하다. 그들 중의 일부는 현금 차용, 지분 보유, 소작 노동 등을 통한 독립
적인 생산을 위해, 토지에 대한 접근권을 유지하고 보장할 수 있는 투쟁
에 참여했다. 1990년대에 농장 거주자들을 위해 새로운 노동권과 보유권
을 도입한 법률은 시행하기가 어렵기로 악명이 높았다(Republic of South
Africa 2001, 재인용: Hall 2004, p. 218). 그 당시 이 법률들은 광범한
변화를 겪었다. 농장 거주자들의 직업 상실, 임시직화(casualization)와 추
방에 기여했던 경제적 압박 및 많은 농장주들의 적대적 반응과 더불어 토
지로부터 농촌 노동자들의 분리는 프롤레타리아화의 과정을 촉진하고 오
랜 궤적의 강탈을 완성했다.
1997년에 발간된 󰡔남아공 토지정책백서󰡕는 보유 조건 개혁 프로그램
이 이해관계를 수반하는 토지 개혁 중 가장 복잡한 구성 요소임을 확인했
다(DLA 1997, p. 7). 보유 조건 개혁의 주요 의도는 비공식적 권리를 공
식적인 법률적 권리로 개선하는 것이었다. 보유 조건 개혁 이면에 있는
논리적 근거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보유 조건에서 안정성을 가진다면 그
들은 효과적으로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토지를 가장 잘 이용할 것
이라는 점이었다.
보유 조건 개혁은 불안정한 보유 조건하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이 추방과 불안정에 의해 부단히 위협받는 사람들의

9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요구 때문에 발생한다(Bob 1999, p. 89). 보유 조건의 보증이란 토지의
안정된 이용을 허용하는 권리와 조건을 유지할 수 있는 남녀의 능력을 가
리킨다. 남아공의 많은 사람들은 보유 조건이 불안정하다. 몇 가지 만연한
실례는 다음과 같다: 고용 협정에 따라 농장에서 사는 농장 노동자들, 국
유지(state land)에 살고 있는 사람들, 공식적 계약 없이 지주의 동의하에
해당 토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 부족의 승인하에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 이 모든 사례에서 사람들은 종종 그 땅에서 쫓겨나거나 부단한
추방 위협 속에서 살았다.
보유 조건 개선 프로그램은 그들이 점유한 토지의 소유 여부에 관계없
이 모든 남아공 사람들에게 보유 조건의 안전을 보증하고자 한다(Bob
1999, p. 90). 그래서 그 초점은 점유자의 권리에 있다. 이 프로그램의 주
요 의도는 농장과 전통적 토지에서 높은 수준의 착취를 억제할 수 있는
기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의 의도는 임차인의 권리를 인
정하는 것이다. 지주는 법원의 사전 동의 없이 어떤 자원―특히 물―에
대한 접근을 즉결로 금지할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적용 가능한
토지 권리를 개선하는 것이다. 보유 조건 개선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재
분배 및 반환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보유 조건 프로그램은 두 가지 구성
요소를 지닌다. 정책 개발과 조언은 보유 조건 정책을 개발하고 보유 조
건에 대해 조언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프로그램은 토지 취득과 정
착을 위한 지원을 이용 가능케 하는 지역 계획 지원, 정착 계획 지원, 촉
진 서비스, 분쟁 해결, 보유권 조정과 전환을 포함한다.
1997년의 ‘안전․보유조건확대법(Extension of Security and Tenure
Act)’에 의하면, 소작인은 법원의 동의 없이 추방될 수 없다(Republic of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93


South Africa 1997). 이 법에서 가장 중요한 규정은 농장 노동자는 대안
적 숙소가 이용 가능할 때만 토지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농장주
는 지방 법원에 의해 인정된 합법적 이유를 들어 피고용자를 해고할 수
있다. 그러나 농장주는 과거에 종종 있었던 강요된 추방 및 건물 파괴와
같은 불법 행위를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법은 점유자들이 자신들의
토지 보유 조건을 강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공한다. 어떤 경우
에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토지의 주인이 되거나
대토를 제공받기도 한다. 토지 보유 조건 개혁은 토지 권리 문화를 개발
하고자 한다. 그래서 제 관계는 상이한 이해 당사자 간의 상호 존중과 명
확한 이해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1998년 당시 토지문제부는 토지 보유 조건에 시달리던 60만 가구의 요
구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토지문제부가 그 문제를 해결
한 가구는 1.6%에 불과했다(DLA 1998a). 보유 조건 보장에 대한 요구는
남아공 농촌에 만연해 있었다. 이전의 홈랜드에 살던 330만 명 중의 대다
수가 자신들의 재산 보유 조건에 대한 보장을 요구했다.
토지문제부의 발표에 의하면 1998년 당시 남아공에는 총 82건의 보유
조건 프로젝트가 있었다. [표 5-10]은 남아공의 주별(州別) 보유 조건 프
로젝트의 숫자를 나타낸다(Bob 1998, pp. 91-92). 이 표가 보여주듯이 9개
주 중에서 음푸말랑가 주는 보유 조건 프로젝트를 가장 많이 수행했다.
이에 비해 노던케이프 주, 자유 주, 노스웨스트 주는 이 프로젝트를 각각
1건씩 수행했다. 하우텡 주는 이 프로젝트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 보유
조건 개혁은 가장 광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상
기하고 불안정한 보유 조건에 시달려온 수많은 사람들을 고려한다면, 주

94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표 5-10. 남아공의 주별 보유 조건 프로젝트의 수

연번 주 이름 건수 연번 주 이름 건수
1 노던케이프 1 6 하우텡 0
2 이스턴케이프 27 7 크와줄루-나탈 3
3 웨스턴케이프 9 8 음푸말랑가 35
4 자유 1 9 북부 5
5 노스웨스트 1 합 계 82
자료: Bob(1998), p. 91.

별 및 국가 수준에서 아주 적은 숫자의 관련 프로젝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당혹스럽다. 이러한 현상은 토지 개혁 과정이 매우 복잡하며, 실행 시 아
주 큰 도전에 직면한다는 사실과 관련을 가진다.
1998년 말에는 기존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공동 소유권의 원리
를 인정하는 ‘공동 소유(commonhold)’라는 새로운 보유 개념을 제안하는
토지권리법안(Land Rights Bill) 초안이 마련되었다(Sibanda 2000, 재인
용: Walker 2002, p. 44). 이 법안은 토지 권리 소유자, 지역 구조, 지역
정부를 구별하고자 했다. 여기서 토지 권리 소유자는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지역 구조는 토지 권리를 소유하지 않으나 이것
을 관리하는 데 필요하다. 지역 정부는 지역 계획과 환경법을 마련하고
강화하는 데 책임이 있다. 이러한 구별은 법률적으로는 중요하나 정치적
으로는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1999년 초반 토지문제부는 재산권이 국가
에서 실제 소유자들에게 양도되고, 토지 권리에 대한 관리가 권리 소유자
들에게 이전됨으로써 400만~500만 가구가 이 법안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DLA 1999, p. 106). 또한 토지문제부는 이 법안이 누가 토지
개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가지며, 누구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지
를 분명히 함으로써, 경제 개발을 위한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95


1999년 토지청구법원에 의해 선고된 획기적 재판(landmark judgment)
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증했다: “농장에 살고 있는 여성은 ‘안전․보유
조건확대법’에 의해 독립적인 점유권을 가지며, 남편의 합법적 추방의 결
과로서 즉결로 추방될 수 없다”(Walker 2002, p. 43). 그래서 토지청구법
원은 법률적 기제를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의 이용 가능성을 감안하여 헌법
에 의해 창출되는 ‘수권의 여지(enabling space)’ 및 여성의 권리를 촉진
하기 위한 법률에 내재해 있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4. 토지 개혁 정책의 제 문제

가. 토지 재분배 정책의 문제

가구당 1만 5,000랜드이던 토지 보조금이 1998년 말에는 1만 6,000랜


드로 인상되었다. 그러나 이 금액은 토지를 구매하는 데 여전히 불충분했
다. 그래서 가구들은 토지를 구매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보조금을 공동 출
자했다. 보조금 공동 출자는 다양한, 그리고 때때로 갈등적 이해관계를 가
진 수혜자들이 토지를 함께 구매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Bob 1999,
p. 81). ‘인위적 공동체(artificial communities)’의 창출은 토지 개혁 프로
젝트의 안정성과 생존력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 크와줄루 나탈
주의 콘필즈(Cornfields)와 템바릴(Tembalihle) 등에서 진행된 토지 개혁
프로젝트는 공동체 내의 폭력을 경험했다.
또한 보조금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가구들이 개별적으로 토지를 살 경
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즉, 대개의 경우 개별 가구가 구매한 토지는 가

9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족 구성원 전부를 충분히 부양할 만큼 크지 않다. 개별 가구가 새로운 토
지에서 지속 가능한 생계를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 빈곤이 영속화될 수
있고 토지가 과도하게 이용될 수 있다(Oettle et al. 1998, p. 57).
다른 한편, 공동재산협회는 가구들이 신탁 형태로 소유되는 토지를 공
동으로 소유하는 기제 중의 하나이다(Bob 1999, pp. 81-82). 이 협회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양성 평등이 전제 조건이라는 사실을 보장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성원권과 관리 규칙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보호 수단에도 불구하고 이 협회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설립된 공동재산협회는 추장제 구조와 종종 갈등 상태에 있
다. 공동재산협회의 구성은 매우 다른 욕구와 열망을 가진 인위적 공동체
의 창출을 종종 의미해왔다. 게다가 이 협회 내의 권력 역학은 잠재적으
로 위험하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주장할 수 없는 여성
들에게 특히 그렇다. 이러한 상이성은 크와줄루-나탈 주의 콘필즈처럼 공
동재산협회가 가동되어온 몇몇 공동체에서 폭력적 갈등을 이미 초래한
바 있다. 공동재산협회는 자신의 민주적 기능을 확보하는 규정과 절차를
감시하고 강화할 수 있는 기제를 개발해야 한다.
토지문제부는 가구당 보조금이 1,000랜드 인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액수가 여전히 너무 작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DLA 1998b). 그러
나 토지문제부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토지 개혁의 이익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토지문계부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적 평등의 목
적은 다수의 작은 땅뙈기를 교부하는 데 있다. 마르쿠스 등은 적절한 농
촌 가구의 총수는 308만이라고 추정했다(Marcus et al. 1996, 재인용:
Bob 1999, p. 82). 크로스 등은 이 숫자를 추천할 만하다고 간주하면서,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97


토지 개혁은 남아공 농촌에서 농업 관계를 뒤흔들고, 가난한 사람들과 여
성들의 매우 중요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Cross et
al. 1996, 재인용: Bob 1999, p. 82). 그러나 동시에 크로스 등은 정부가
그 보조금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보조금의 상당
부분은 토지 구매를 위해 사용되어왔다. 시장에 토대를 둔 토지 개혁 프
로그램의 실현 가능성도 의문시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메이 등은 다
음과 같이 경고했다(May et al. 1995, p. 55, 재인용: Bob 1999: 82). “국
가에 의한 수요 주도적인 토지 개혁 착수는 공동체들에게 토지를 획득하
기 위해 모든 저축을 일소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그 결과 토지가 취득되
는 동안 많은 가구들의 자원은 극단으로 치달아왔다.”
1990년대 말까지 토지문제부는 국유지를 토지 재분배 프로그램에 포
함시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지 않았다(Bob 1999, p. 82). 실제로
토지문제부는 국유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개발 중에 있었다. 1998년
에 발행된 토지문제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국가는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
다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DLA 1998, 재인용: Bob 1999, p.
82). 국유지를 토지 재분배 과정에 포함시키면 보조금으로 더 많은 토지
를 살 수 있거나, 서비스로 투자될 수 있는 토지 보조금의 잔여분을 증가
시키게 된다. 그러나 국유지 재분배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토지
는 다양한 천연자원을 추출하기 위해 이미 사용 중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
다. 랑간이 언급했듯이 실제로 어떤 형태의 지역적인 제도적 통제가 이미
존재할 수 있다(Rangan 1997, 재인용: Bob 1999, p. 82). 토지 개혁 과정
이 국유지에 대한 통제와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작동 중인 비공식적
인 제도적 통제 기제를 고려하지 못하면, 이것은 반드시 천연자원에 대한

98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접근을 둘러싼 농촌 사람들의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정부, 비정부 기구(NGO) 및 민간 부문의 주체들은 사회․경제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함으로써 출자를 보완할 수 있도록 장려되어야 한다(Bob
1999, p. 82, Oettle et al. 1998, p. 73). 그러나 이것을 실현할 기제가
거의 없다. 비정부 기구를 제외하면 토지문제부 외부의 수혜자 공동체와
가구들을 위한 지원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또한 토지문제부는 농촌 지역
의 남성과 여성에게 금융 서비스―특히 신용―를 제공하기 위해서 1995
년에 스트라우스위원회(Strauss Commission)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토지 개혁 수혜자들―특히 신흥 농민들―에 대한 금융 서비
스 제공을 포함시키기 위해서 토지 은행(Land Bank)이 재구조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행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농촌의 가
난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어떤 금융 서비스에도 접근할 수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토지 보유 조건의 안정성이 약한 곳에서 특히 첨예하게 나타났다
(Bob 1999, pp. 82-83). 그들에게 있어서 이 제한적인 재정 환경은 관습적
실천과 전통―특히 관습적 결혼과 관련된 법률30)―에 의해 악화되었다.
󰡔남아공 토지정책백서󰡕는 재분배 프로그램이 빈곤한 여성을 비롯하여

30) 줄루족의 관습적 결혼에서는 신부대(bride-wealth, lobolo)가 필수적이다. 줄루 사회에서


어떤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의 부모를 만나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신부대가 지불되는 과정에서는 첫 아이의 출생이 아주 중요하다. 그녀가 첫 번째
아이를 낳으면 소 2마리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나면 그 여자가 그와 살 의사가 있다
는 표시로 그의 집으로 와서 함께 살면서 음식을 해준다. 그러면 그는 또 소 1마리를
지불해야 한다. 이제 지불해야 할 소는 8마리가 남는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마다 1마
리씩 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자 측에서는 총 11마리의 소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산술적으로 보면 총 9명의 자식을 두어야 신부대 지불이 끝나고, 결혼이 법적으로 성립
된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의 숫자가 이보다 적을 경우에도 총 11마리의 소를 지불해야
결혼이 법적으로 성립된다. 그들 사이에 아이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을지라도,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소 11마리를 지불해야 한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99


주변화된 사람들 및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우
선순위를 부여할 것이라고 진술했다(DLA 1997, p. 9). 그러나 기존의 연
구들이 보여주듯 역사적으로 힘없는 집단을 개발 과정에 효과적으로 포
함시키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Jacobs 2003; Levin 1993;
Walker 1998; Mayeza 2006).
토지문제부의 의제가 토지 개혁을 생산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토지 개혁이 빈곤을 감소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Cross
et al. 1996, 재인용: Bob 1999, p. 83). 이러한 염려는 서비스 준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존 추세대로라면 토지 재분배율이 가속화되기 시작
했으나, 그것은 목표치를 상당히 밑돌고 있다(DLA 1998, 재인용: Bob
1999, p. 83). 게다가 구매한 토지의 생산 잠재성은 많은 경우에 매우 낮
았다. 또한 󰡔삶의 질에 대한 보고서(Quality of Life Report)󰡕는 많은 토지
개혁 공동체에서 지역 서비스의 개발에는 거대한 미처리분이 있음을 보
여 준다(DLA 1998a). 대개의 프로젝트는 어떤 새로운 인프라를 개발하
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본 서비스도 제공하지 못한다. 특히 크와줄루-나
탈 주는 심한 서비스 부족을 경험해왔다.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땅에 정
착한 공동체의 경우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토지 재분배 프로그램
은 기본 서비스에 대한 고려 없이 가구들을 토지에 정착시켜왔다.
수혜자 명단이 두 개 이상의 핵가족(nuclear family)을 가진 확대가족
체계를 포함하기 위해 어떻게 작성될 것인지는 불명확하다(Bob 1999, p.
83). 농촌 지역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여전히 확대가족 형태로 생활한다.
토지 재분배 체계 내에서 어떤 가족 단위가 토지 취득 보조금(Land
Acquisition Grant)의 자격을 획득할 것이며, 이 과정이 가족 구조의 사

10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회․경제적 역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엄격하게 평가되지 않
았다. 농촌법률연구센터(Center for Rural Legal Studies)와 잉여 인구 프
로젝트(Surplus People Project 1997)를 위해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적격
가구에 대한 기존의 정의는 배당금을 극대화하려는 목적 때문에 가구의
분열을 조장할 것으로 보인다.
‘가구 보조금(household subsidy)’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가구에 대한
진부하고 적절치 못한 인식을 확고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Bob 1999, p.
83). 이러한 경향은 대개 남성이 가장인 핵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지
하고 조장한다. 남아공에서 가구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는 게
현실이다. 누가 가구란 무엇인지를 결정할 것인가? 가구 내의 누가 그 보
조금의 사용 방법을 결정할 것인가? 이것들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물
음들이다. 󰡔남아공 토지정책백서󰡕에서 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가
구 보조금 교부에서 젠더의 함의에 대한 무지를 반영한다. ‘적격 가구
(eligible household)’는 ‘적격자(eligible person)’와 ‘자격자(qualifying
person)’와 구별 없이 쓰인다. 이러한 현상은 그 보조금이 결국 개인―대
개는 가구 내의 남성―에게 배분될 것이라 간주하는 감정을 강화한다. 어
떤 개인들은 특정 가구에 소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이들은
가난한 농촌 공동체에 거주하는 여성과 아이들이다. 응카레니와 마쿠라가
지적했듯이 가구 내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에서 젠더 권력관계는 남성
가장이 그 보조금을 취하는 것으로 대개 귀결된다(Ngqaleni and Makhura
1996, 재인용: Bob 1999, p. 83). 예컨대 남성 가장은 그 보조금을 도시
지역에서 사용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은 농촌 여성들을 매우 취약하
게 만들고 손해를 입도록 한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01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가구의 생존 전략 선택권을 증대시키는 것이 토
지 개혁 프로그램 내에서 예상되고 달성 가능한 목표라면, 정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원 체계와 기제를 확보하는 문제가 우선 개선되어야 한
다(Bob 1999, pp. 83-84). 󰡔남아공 토지정책백서󰡕에 진술된 광범한 목적
에도 불구하고 토지문제부는 자신의 핵심 사업이 토지를 교부하는 것임
을 강조했다. 그래서 토지문제부는 토지 개혁 프로젝트의 서비스 준비와
유지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그 부처의 재정, 직원 및 인프라를 늘리는 것
은 실제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부처의 역할은 수혜자 가구에게 토
지를 교부하는 것으로 끝난다. 서비스 준비를 개선하기 위해서 사용되어
야 하는 정착․토지 취득 보조금의 잔여분은 토지문제부에 보관된다. 혹
자는 그 돈이 토지문제부에 있는 한, 그 부처는 토지 보상금을 관리할 책
임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토지문제부는 공동체들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농업부, 건강부, 교육부, 공공사업부, 무역․산
업부 등의 다른 유관 부처들과의 유대를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유형의
협동과 공동 작업은 수혜자 공동체의 생존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
하는 데 필수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불충분한 토지 보조금은 심각한 걱정거리이다. 보조
금 이용 정책에 따라 1만 6,000랜드 이하의 가치를 지닌 토지는 실제로
가족들에 의해 획득되었다. 왜냐하면 토지 취득 비용은 반드시 그 보조금
으로부터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 재분배가 부유층에서 빈곤층
으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등지와 달리, 남아공에서는 자금이 보조금 형태
의 공공 재원에서 조달되고 있다(Turner 1997, 재인용: Bob 1999, p. 84).

10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나. 토지 반환 정책의 문제

토지 반환 과정은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주된 우려는 국가가 판사


(judge)이자 원고(claimant)로 행동할 수 있는가이다(Bob 1999, p. 86).
모든 청구는 토지문제부의 하위기관인 토지청구위원회에서 비준된다. 다
른 한편, 주 및 지역적 수준에서 토지문제부는 청구서를 제출하고 이것을
증명하려는 개인과 공동체를 도와주고 있다. 토지문제부와 이 위원회의
미분리는 반환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게다가 이
러한 현상은 상당수의 청구가 국유지―보호, 공공사업, 군사 활동 및 미
활용 상태의 국유지를 제외한 토지―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에 의해 악화
된다. 또한 얼마나 많은 보상금이 책정되어야 하며, 정부 예산이 청구인의
보상금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토지청구위원회의 과업은 다수의(multiple) 청구 문제뿐만 아니라 증거
의 결여에 의해 복잡해진다(Sihlongonyane 1997, 재인용: Bob 1999, p.
86). 반환 과정이 처리되는 법정 절차는 공동체들이 증거를 제공할 것으
로 기대됨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글로 된 문서나 증거는 가장 널리
수용되는 증거 형태이다. 그러나 토지를 청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문맹이며,
구두 증언을 제외하곤 자신들의 청구를 지지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토지 자원 및 나무나 물웅덩이와 같은 지상(地上)의 특정 자원은 증서
없이 한 개인으로부터 다른 개인에게 양도되었다(Bob 1999, pp. 86-87).
사람들이 항상 자신들의 청구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반환 정책 및 구조는 수정될 필요가 있
다. 흑인의 토지 소유권은 상속을 통해 생겨나기도 하고, 용맹이나 다른
이유들에 대한 보상으로서 수여되기도 했다. 그러나 토지 소유권을 기록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03


하는 체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구 규범에서 수용 가능한
소유권의 확실성은 쉽게 확보되지 않는다. 청구인들은 그 체계의 피해자
가 되어왔다. 국가는 그들이 강제로 쫓겨났거나 불충분하게 보상을 받았
던 토지의 소유권에 대한 증거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계약서 부재 상태
에서 청구인들은 종종 가지고 갈 것이 거의 없다. 사람들의 반환 청구권
을 보증하기 위해 제공될 수 있는 문서상 증거 외에 청구를 증명하는 대
안적 방법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토지 청구는 어떤 사람이 빼앗긴 토지를 돌려받는다는 것을 반드시 의
미하진 않는다(Bob 1999, p. 87).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상이 반환 기제로
사용되어야 한다. 사회적․종교적 의미를 지니는 조상의 땅이 어떻게 보
상될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공동체에 기반한 청구도 토지청구법원에 의해
다루어진다. 레빈 등에 의하면 누가 공동체인지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Levein et al. 1997, 재인용: Bob 1999, p. 87). 또한 공동체는 대개 다양
하다. 왜냐하면 강제 추방 및 이주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공동체
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일 공동체에는 복수의 토지 청구가 존재
한다. 토지청구법원이 어떻게 이 청구를 다루고 가능케 할 것인지는 불명
확하다.
두 개의 기한―1913년 6월 19일과 1998년 12월 31일―은 반환 과정
의 주요 구성요소를 형성한다. 1998년 12월 31일은 청구서를 제출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이 두 날은 격렬한 논쟁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
다(Husy 1995, 재인용: Bob 1999, p. 87). 많은 흑인은 식민지의 확장과
이해관계의 결과로 1913년 이전에 자신들의 토지를 상실했다. 청구서 제
출 마감 기한은 농촌 지역에서 특히 중요하다. 농촌 지역에서는 많은 사

10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람들이 자신들의 토지 청구권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토지 청구 방법도 알
지 못한다. 청구인과 관련된 기존의 정보에 의하면, 대다수의 청구는 도시
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 부분은 집단지역법에 영향을 받았
던 인도인이나 컬러드로부터 나온 것이다. 반환이 이전의 현상을 회복하
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 소유자이던 남성이 주요 수혜자가 된다(Walker
1997, 재인용: Bob 1999, p. 87). 위의 사항들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고
그 프로그램에 가난한 농촌 사람들과 여성을 포함시키려는 중재가 없다
면, 반환은 이들에게 우선권을 두는 토지 개혁의 전체 목적 중의 하나에
기여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일반적으로 토지 소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농촌 여성에게 반환을 확실하게 하는 청구 과정은 주요 장애물이다.
정부가 전통적 당국을 원고와 피고 양자로 다루려고 하는 방식도 불명
확하다(Bob 1999, p. 87). 예컨대 크와줄루-나탈 주에서 잉고냐마 신탁업
체(Ingonyama Trust)하의 토지는 그 신탁업체와 즈웰리티니 왕(King
Zwelithini)의 동의 없이 토지 개혁 프로그램하에 둘 수 없다. 게다가 주
요 청구인은 추장인 경우가 많다. 추장은 농촌의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강력하며, 그래서 토지를 청구하는 데 있어서 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 또
한 많은 추장은 개인이나 집단을 대신해서 토지를 청구한다. 권리, 보상금
혹은 토지가 이 각본(scenario) 내에 있는 청구법원에 의해 개인에게 결국
제공될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하나의 주요 쟁점은 토지청구위원회가 아파르트헤이트 관행의 부당한
처사를 바로잡으면서 불공평한 가부장적 토지 관행을 폐지하기 위해 노
력할 것인지의 여부이다(Bob 1999, p. 87). 예컨대 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법률적․관습적 상속인이 아들이라면, 딸은 토지 청구에서 어떤 권리를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05


가질 것인가? 토지청구위원회는 가부장적인 차별적 관행의 결과로 침해
당했던 여성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이 상황에 개입할 것인가?(Bob
1999, pp. 87-88). 반환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관심은 토지
청구법원 명령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러한 실례는 토지 개혁 과정에서 여
성을 하나의 주요 목표 집단으로 포함하려는 모순적이며 정치적인 본질
을 예시한다. 토지 개혁이 다른 차별적 관행을 언급하지 않은 채 아파르
트헤이트와 식민지의 차별적 관행만을 다루려고 한다면, 여성은 단순히
기분 좋고 유행하는 정책적 입장으로 인해 토지 개혁 목표에 포함된 존재
로 간주될 수 있다. 농촌 지역의 아프리카 여성을 2등 시민으로 간주했고
간주하고 있는 많은 관행에 도전하지 않고 여성을 토지 개혁 과정에 진정
으로 포함시키기란 불가능하다.
반환 프로그램의 측면에서, 인종 차별적인 법률이 1913년 원주민토지
법 도입 이후의 강탈로 귀결되기 이전에 향유되던 토지 권리를 회복하려
는 위의 목표는 일관된 젠더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Bob 1999, p. 88). 아
파르트헤이트의 강탈 이전에 토지 권리는 공평하게 분배되었기 때문에
‘토지 권리를 회복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를 바로잡고, 평등을 회복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는 점은 하나의 가정(assumption)에 불과하다. 이 가정
은 토지 강탈과 불평등으로 귀결된 유일한 형태의 억압이 인종적으로 자
극을 받았던 것처럼 짜맞춰진다. 먼저 1913년 이전에 인종 차별적 관행은
전통 사회에 이미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아프리카인은 광범한 식
민화의 결과로 이미 재산을 빼앗겼다. 게다가 종족(lineage)과 종족성
(ethnicity)과 관련된 가부장적 관행 및 여타의 관행은 어떻게 토지가 분
배되고 어떻게 그것이 사용되는지를 결정하는 전통적 규범과 가치에 뿌

10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리 박혀 있었다. 음능시타마는 1990년대 중반까지 남아공에서 진행된 토
지 반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어느 편인가 하면, 반환 과정은 관료적인 혼란과 무질서를 창출


해왔으며, 너무 어려워 풀 수 없는 법률적 분규(entanglements)를
양산해왔다. 반환의 혼란 속에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공동체는
두 번째 피해자가 되었다. 인력이 부족한 위원회로부터 뭔가를 듣기
이전의 장기간 대기는 그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Mngxitama
1997, p. 24, 재인용: Bob 1999, p. 88).

1990년대 후반까지의 토지 반환 각본도 음능시타마의 분석과 별로 다


르지 않았다. 반환은 여전히 지나치게 복잡하고 아주 값비싼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8년 12월 말 토지청구위원회에 제출된 청구는 6만
4,000건에 달했다. 이들 청구가 언제 비준될지는 불명확했다. 그 사이에
도시와 농촌 지역의 가난한 청구자들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소멸된 지 5년
이 지났음에도 왜 자신들의 삶은 변화가 없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
가 여러 사람의 판단에 따르면, 대개의 청구자는 자신들의 청구가 최종적
으로 해결되기까지 또 다시 10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느린 반환 속도는 공동체를 좌절시킨다. 그래서 가난한 가족은 재분배
과정에 들어가기 위한 선택을 한다. 이것은 판매자가 기꺼이 팔고자 한다
면 재분배 과정이 더욱 빠르기 때문이다(Bob 1999, p. 88). 헌법에 뿌리
내린 역사적 권리에 기초하여 토지를 청구하는 대신, 적격한 청구자 중
대다수는 자발적 구매자/자발적 판매자 배열이 만연해 있는 재분배 과정
에 참여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토지 청구 과정을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07


통해 1만 6,000랜드의 보조금보다 더 많은 보상금과 토지를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가구의 최고 이익에 기여하지 못한다. 상당수의 가난한 가구는
단순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거나, 청구서를 제출하고 입증하는 지루한
과정을 경험하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기존의 반환 과정은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의 역사적 토지 권리를 손상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반환 청구를 이행해야 하는 국가의 무능은 다른 불쾌한 결과를 초래했
다(Bob 1999: 88). 많은 경우에 청구자들은 반환 과정에서 신뢰를 상실하
고, 토지 침범을 그 과정의 속도를 높이고 정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유일
한 선택으로 간주했다(Bob 1999, pp. 88-89). 그러나 남아공에는 고려될
필요가 있는 또 다른 이해 당사자 집단이 있다. 토지 청구라는 측면에서,
아주 논쟁적인 측면은 자연보호구역의 미래이다. 쉬로더의 주장에 의하면
남아공에서 천연자원 보호라는 명분을 위한 영토 주장은 오랜 역사를 지
니고 있다(Schroeder 1997, 재인용: Bob 1999, p. 89). 남아공에서 야생
동물 보호구역은 토지, 물, 삼림을 놓고 종종 농촌의 토착 공동체와 경쟁
했다(Beinart 1984). 많은 경우에는 공동체가 보호구역에 길을 내주기 위
해 그 지역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보여 주는 국가 중의 하나인 남
아공에서 누가 우선권을 가지는가?(Bob 1999, p. 89). 토지나 동식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가? 자연보호구역이나 동물보호구역에 대해서는 많
은 요구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토지 침범이 종종 발생해왔으며 이러한
침범은 종종 폭력을 동반했다. 또한 이러한 유형의 침범은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환경적․사회적 갈등은 느린 토지 반환 속도에 의
해 종종 악화되었다. 이것의 전형적 예는 크와줄루-나탈 주의 두쿠두쿠 삼

10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림(Dukuduku forests)의 사례와 케이터 매너(Cator Manor)의 사례이다.
음능시타마의 견해에 의하면 그러한 예들이 반환에 심각한 영향을 미
친다면, 정부에는 아주 적은 선택들만 남아 있다(Mngxitama 1997, 재인용:
Bob 1999, p. 89). 이 선택들은 토지문제부에 의한 법원 밖에서의 소송
해결, 이주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토지 수용, 반환 과정을 위해 충분한
자원 확보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사안들은 토지문제부의 예산을 늘리고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함으로써 실현된다.

다. 토지 보유 조건 개혁 정책의 문제

남아공에서 토지 보유 조건 개혁과 관련된 법률은 농장 노동자의 권리


를 지지하고 확대하기 위해서 존재해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법률은
실제 현장에서 현실을 제대로 변화시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토
지위원회(National Land Committee)는 이 법안이 아주 문제가 많다고 주
장했다.

현재의 법안은 여성과 아이들에게 어떤 형태의 보호를 제공하


지 않고 주택 공급과 고용을 연결하는 착취적 연쇄도 깨트리지 않
으며, 사람들을 농장에서 쫓아낼 수 있는 농장주의 권력을 명확하
게 거론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농장주가 집과 생계를 상실해온
사람들을 쫓아낼 때 이 법안은 그들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쫓아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지방 법원에 달려 있다.
대다수의 지방 법원은 사회․정치적 유대를 통해 지주들과 연결되어
있다(National Land Committee 1997, 재인용: Bob 1999, p. 91).

디틀헤이크의 주장에 의하면 ‘토지개혁(소작 노동자)법안(Land Reform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09


(Labour Tenants) Bill)’은 소작 노동자의 기대와 요구를 적절하게 이해하
는 데 실패했다(Ditlhake 1997, 재인용: Bob 1999, p. 91). 이 법안은 시
장 주도적인 토지 개혁 프로그램의 광범한 구조 내에 존재한다. 디틀헤이
크에 따르면 이 법안은 소작 노동자가 토지를 실질적으로 취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Ditlhake 1997, 재인용: Bob 1999, p. 91). 이 법안은 소
작 노동자들에게 토지 청구서를 제출할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성공한
다면 그들은 당연히 그 토지의 시장 가치(market value)에 맞추어 보상을
받을 것이다. 각각의 소작 노동자 가족에게는 1만 6,000랜드의 보조금이
있다. 농장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이 창출하
여 크게 이익을 얻은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줄
의무도 지지 않는다(Bob 1999, pp. 91-92). 소작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현
재 점유하고 있는 토지를 제공받아야 하며, 추가적 토지를 구매해야 한다
고 느낀다(Ditlhake 1997, 재인용: Bob 1999, p. 92).
또한 보유 조건 개혁은 여성의 토지 권리와 보유 조건의 안정성을 제
고하고 보호할 수 있는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로 간주된다. 그러나 어떻
게 보유 조건 프로그램이 국가 헌법과 여성을 차별하는 농촌 지역에 만연
해 있는 관습법 및 관행 간의 갈등을 다룰 것인지를 명확하게 표현하려는
시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Bob 1999, p. 92). 보유 조건 개혁이 이전
의 흑인 자치구에서 실행되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흑인 자치구에서
는 현 상황이 확고하고, 정보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유 조건 개혁
은 백인 농장주와 추장의 권위를 종종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이들은 농장
노동자와 피지배자들에게 행사해온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기를 주저한다.
미어의 주장에 의하면 보유 조건 개혁은 기존의 불평등을 공식화하는

11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것으로 끝날 수 있다(Meer ed. 1997).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토지를 점유
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유 조건 개혁 과정은 자신들을
소유자로 만드는 남성의 권리를 대체로 상승시킨다(Bob 1999, p. 92). 이
러한 유형의 권리 상승은 어떤 사람들―특히 보유 조건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소유권에 접근할 수 있는 남성들에게 의존적인 여성과 아이들―에
게 더욱 큰 불안정을 창출한다. 이것은 여성의 토지 권리와 다른 부양가
족의 토지 권리를 불안정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쫓겨날 수도 있다. 남
성이 자신의 토지를 팔겠다고 결정하면 이러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한
명 이상의 부인을 둔 이주 노동자와 결혼한 여성은 특히 취약하다. 따라
서 여성의 토지 권리는 보유 조건 개선 과정에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새로운 유형의 토지 보유 체계가
창출되고, 그것에 의해서 모든 가족 구성원의 권리가 권리 증서에 명시되
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보유 조건 개혁 과정에서는 농촌 사람들의 안일한 생각도 문젯거리로
등장한다. 마르쿠스 등에 따르면, “농촌 사람들 사이엔 그들의 토지 요구
는 자명해서, 그들은 단지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는 토지 재분배 대리인
을 기다릴 뿐이라는 광범한 믿음이 존재한다”(Marcus et al. 1996, p.
136, 재인용: Bob 1999, p. 92). 토지문제부가 토지 개혁은 수요 주도적이
라는 입장을 확실히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것은 매우 위험
한 상황이다. 몇몇 집단은 자신들의 요구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반면 다른 집단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서 벗어나 있다. 주변화된 공동체들을 동원하고 그들을 토지
개혁 과정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교육 및 정보 전략이 필요하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11


라. 토지 정책에 대한 거시 경제적 관점의 문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본래의 자유주의적 야심에서 더욱더 보수적인 입


장으로 경제 방향을 전환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Kostiv 2008, p. 28). 1994년 9월에 공개된 󰡔재건․발전프로그램백서
(White Paper on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Program)󰡕는 선거 이
전의 기초 문서(Base Document)의 대중주의적 내용의 축소를 반영했다.
마라이스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Marais 1998, p. 179, 재인
용: Kostiv 2008, p. 28). “이 백서는 개발적 접근의 혼합물이다. 이것은
가혹한 거시 경제적 압박에다 재분배에 대한 표면상 견고한 언질을 혼합
한 것이다.”
그래서 국내의 권력 균형과 외부 환경은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조종할
수 있었던 정치적 및 사회경제적 영역을 제한했다. 정부의 실용주의와 지
나친 요구, 강력한 경제적 행동 프로그램의 부재, 불충분한 공공 서비스에
따른 정책 작동의 어려움 등은 보수적 경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정치 세
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Walker 2002, p. 12). 동시에 아프리카민족회
의의 정부 통제 강화는 도시에서 흑인 중산층의 출현을 수반했다. 흑인
중산층은 정책 방향과 정부의 우선순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다수 흑인들
간의 계급 분화는 1994년 선거 이전부터 발생했다. 가장 부유한 20%의
가구 중 아프리카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1975년에는 10%였으나
1991년에는 26%로 증가했다(Marais 1998, p. 106, 재인용: Kostiv 2008,
p. 28).
반면 가장 부유한 아프리카인 가구들과 가장 가난한 아프리카인 가구
들 간의 소득 격차는 이 동일한 기간 동안 급격하게 벌어졌다(Whiteford

11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and McGrath 1994, 재인용: Kostiv 2008, pp. 28-29). 1994년 이래 이러
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왜냐하면 남아공 흑인이 정부와 민간 부문
에서 고위직을 획득하고, 흑인의 권력 신장과 적극적인 행동 방침(action
policies)이 새로운 흑인 엘리트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Kostiv 2008, p. 29). 1991년에는 흑인이 부자 중의 9퍼센트를 차지했으
나, 2000년에는 그 비중이 20퍼센트를 넘었다(The Sunday Independent
(March 12) 2000, 재인용: Kostiv 2008, p. 2).
1996년에 도입된 ‘성장․고용․재분배’ 프로그램의 거시 경제적 전략
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세입 이하로 정부 지출을 줄이려는 목적에 주로
한정된다(National Treasury 1996, 재인용: Hall 2004, p. 220). 이 프로그
램은 국가가 경제에서 제한된 역할을 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포함
한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사회적 지출에 적대적이며, 제한된 국가 프로
그램의 영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간 부문과의 협력(partnerships)
을 장려한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직업 창출 수단으로 공공사업에 초점을
맞춘다. 일자리 창출은 만병통치약이 아니긴 하나, 노동 강도와 자영업 기
회를 증대시킴으로써 농촌 생계를 부양할 수 있는 다면적 전략의 한 부분
으로서 토지 개혁의 중요한 상대물(counterpart)이다.
이 프로그램의 문서는 토지 개혁에 대해 단 두 번만을 언급했다. 첫 번
째 경우는 토지 개혁이 기본적 욕구에 대한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를 해결
하기 위해 필요한 기획 중의 하나로 제시되는 사회적 지출의 맥락 속에
있다(Department of Finance 1996, p. 10). 두 번째 경우는 토지 개혁을
“농업 개발과 더불어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이라며 긍정적으로 언급한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13


재산 재분배를 보유 조건의 강화와 결합시키는 토지 개혁 프로
그램은 농촌 경제에서 고용과 소득 세대(generation)의 장기 전망
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보는 신속한 토지 양도와
정착 보조금의 도입을 위한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이룩되어왔
다. 보완적 기획들은 신생 농민 지원 프로그램을 포함한다. … 시
간이 흐르면서 토지 개혁과 연관되어 있는 농업 개발은 소득 분배
와 경제 활동을 개선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Department
of Finance 1996, p. 16).

그러나 농업의 방향에 대한 이런 언급에도 불구하고 ‘성장․고용․재


분배’ 프로그램은 단연코 도시와 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도성장의 길은 부분적으로 외국인의 직접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의존하지만, 보다 높은 국내 저축 노력을 요구한다. 보다 우수
한 산업 경쟁력, 보다 견고한 재정 정책, 임금 인상 절제, 가속화된
공공 투자, 효율적인 서비스 제공 및 민간 투자 확대 등은 그 전략
의 필수적인 측면들이다(Department of Finance 1996, p. 21).

이와 같이 아프리카민족회의가 도시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펴는 것은


이 당이 도시의 당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농촌 문제가 아프리
카민족회의의 전략적 의제에서 중요한 적은 결코 없었다(Walker 2002, p.
13). 현재의 경제적․인구학적 추세는 이러한 생각을 강화하고 있다. 아
프리카민족회의의 주요 선거구는 남아공 인구의 50% 이상이 살고 있는
도시 지역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정치적로 볼 때 도시 자본, 도시 노동력,
도시 실업자는 농촌 부문을 완전히 압도한다.

11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이러한 과정에서 토지 개혁은 아프리카민족회의의 거시 경제 정책에서
하찮은 영역으로 남아 왔다(Hart 2002, 재인용: Kostiv 2008, p. 32). 남아
공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농촌 지역의 빈곤 규모 및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결과로서 토지 개혁은 어떤
유형의 경제 전략이 정부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에서
어떤 중요성도 인정받지 못해왔다(Fine and Padayachee 2000, 재인용:
Kostiv 2008, p. 32).
그래서 남아공에서 농업의 재구조화는 1990년대 후반 남아공의 자율
적인 구조 조정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 봐야 할 것이다(Hall 2004, p.
220). 농업의 재구조화는 장기 저리 대출, 감세, 국영 기업, 단일 통로의
마케팅, 그리고 관세 장벽의 폐지를 통한 국제 경쟁에 남아공 시장을 개
방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국가 지원의 제거를 포함했다. 이 모든 것이
흑인 상업농(commercial farmers)―남아공 어휘에서 신생 농민은 상업적
농업(commercial farming)을 새로 시작한 흑인을 가리킨다―이라는 소규
모 계급에겐 타이밍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
이 자신들로 하여금 백인을 위해 이전에 남겨 둔 공공자원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할 것이라 예상했다. 규제 철폐와 자유화 과정의 결과는 파산율의
증가 및 토지 소유의 합병 증가―토지 개혁과 반목하는 경향―와 더불어,
승자와 패자 간 영역에서 갈등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Republic of
South Africa 2001, 재인용: Hall 2004, p. 220). 흑인 상업농이라는 신흥
계급에 대한 국가 지원은 보조금과 다른 지원의 제거로 불안한 상태에 있다.
보조금과 다른 지원은 농업 부문으로 새로 들어간 사람들에게 유례없이
적대적인 환경을 만들어 냈다.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15


남아공의 시장 주도적인 토지 개혁은 정부의 거시 경제적 성향 및 국
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생각과 일치한다(Hall 2004, p. 220). 1999년
말에는 ‘정착․토지취득보조금’ 프로젝트가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
배(LRAD: Land Redistribution for Agricultural Development)’ 프로그램
으로 교체되었다. 이로 인해서 흑인 중산층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
업가 정신에 대한 ‘성장․고용․재분배’ 프로그램의 강조에 발맞추어 토
지 개혁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농지 소유권은 흑인 경제 강화(BEE: black
economic empowerment)를 위한 최우선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흑인 경
제 강화로서의 재분배는 고가치 경제 부문―예컨대 광산 부문―에서 매
우 활발하게 추구되어 왔다.
상업농 부문(commercial agricultural sector) 그 자체는 남아공 국내 총
생산(GDP)의 4%가량만을 창출한다. 그러나 이 부문은 수출 소득의 약
14%를 차지하기 때문에 외화벌이 수단으로 더욱 중요하다(Hall 2004, p.
221). 또한 상업농 부문은 상당한 숫자의 남아공 극빈자에게 생계의 원천
이다. 즉, 상업농 부문은 약 100만 명의 농장 노동자와 500만~600만 명으
로 추산되는 그들의 부양가족 및 상당한 숫자의 공동체 지역 거주자들에
게 대단히 중요하다. 농업은 매우 큰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다. 즉, 남아공
인구의 상당수는 생존을 위해 농업에 의존한다. 농업은 농촌 소득의 39%
를 제공하며, 제조업과 중요한 전후 연결 고리를 가진다(Republic of
South Africa 2001, 재인용: Hall 2004, p. 221). 1990년대 중반 이래 이
부문이 거시 경제적 변화에 반응하면서, 농업은 포기되는 일자리가 되었
다. 따라서 토지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농촌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가 구조적으로 침식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11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남아공 정부는 농업 변화의 궤적에 대해 진보적 자본주의의 관점을 취
해왔다(Hall 2004, p. 221). 여기서 진보적 자본주의는 두 가지를 함의한
다. 하나는 농업 부문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의 심화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
성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외국인 투자와 더불어 농업 부문의 탈인종화
이다. 역으로 ‘성장․고용․재분배’ 프로그램의 거시 경제적 언명
(imperatives)은 가난한 사람들의 토지 이용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상업적 농업에 대한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집착을 위한 맥락을 형성했다.

마. 상업적 농업의 특권 문제

토지 개혁의 한계는 그것의 규모뿐만 아니라 자원이 어떤 목적을 위해


누구에게 배분되는가 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초반의 토지 개
혁 논쟁에서 핵심적 주장은 대규모 단위와 소규모 단위의 상대적 효율성
에 관한 반복적인 ‘농장 규모 논쟁(farm size debate)’이었다. 케냐 소자작
농의 성공에 고무된 세계은행 고문들은 이것의 경제적 효율성을 주장했
다(Hall and Williams 2003, 재인용: Hall 2004, p. 221). 그러나 국립농
업부(NDA: National Department of Agriculture)와 그 주별(州別) 담당
부서들은 새로운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에 재적응하고
이것을 보다 가난한 토지 개혁 수혜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DLA 1997b, 재인용: Hall 2004, p. 221).
상업적 농업의 경제적 효율성 및 가난한 사람들에 의한 저투입 농업의
비효율성에 대한 강력한 담론은 국가 관료 체제 내에서 지속된 것으로 보
인다. 상업적 농업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으로 주입된 선호는 토지 개혁을
실행하는 과업을 맡은 사람들 간에서조차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토지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17


개혁에서 상업적 농업의 기준은 토지 보조금 신청서를 평가하는 데 사용
되어왔다. 예컨대 크와줄루-나탈 주의 농업부는 농사를 시작한 첫 해 안
에 일인당 2만 5,000랜드의 이윤 산출(projections)을 요구하면서 ‘농업개
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신청서를 평가하기 위해 소득 기준을 채택했다.
위의 최소 보조금 수준에 도달할 수 없는 가난한 신청자들에게 이것은 2
만 5,000랜드의 최초 투자금이 그 첫 해에 100퍼센트의 수익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저투입 농업이나 생계 농업에서 이러한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Jacobs et al. 2003, p. 13). 또한 농업 담당
부서들은 농경지에서 거주지 확대 금지와 상속 조건 강요 등을 포함하는
사업 계획을 통해 토지 사용을 통제하려 해왔다. 그 대신 공무원들은 선
택 사항으로 합작 투자(joint ventures)와 역임대 시장(inverse rental mar-
ket)을 장려해왔다. 따라서 흑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도 있으나, 그 자신이
그곳에서 농사를 짓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인종적 변신(racial trans-
formation)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기존의 자본 집약적 생
산 양식을 지속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Jacobs et al. 2003).
또한 자원과 기반 시설에 대한 접근에서의 광범한 변화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토지를 양도하는 것은 수혜자들에게 강요된 선택(constrained
choices)을 남겨놓았다(Hall 2004, p. 222). 즉, 그들은 무리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저투입 농업에 종사하든지, 아니면 공공 혹은 민간 부문
파트너와의 합작 투자에 참여해야 했다. 토지 양도가 이루어진 지역의 어
떤 수혜자들은 집단을 이루어 스스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수혜자들이
상업적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본이 부족할 경우, 그들은 해당 토지를 이
전의 백인 소유자들에게 빌려준다. 몇몇 사례에서는 이것이 다른 용도들

11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보다 수익성이 좋은 것으로 판명될지라도, 임대 소득은 큰 공동체들 간에
분배되어야 한다. 그래서 종종 개별 구성원들은 아주 제한된 이익만 얻을
수 있다. 합작 투자는 토지 개혁 수혜자와 상업적 파트너 간에 이루어져
왔다. 때로는 이전의 소유자가 상업적 파트너가 되기도 하는데, 그는 사업
의 지분(shareholdings)과 일자리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제공한다.
대규모의 자본 집약적 농경지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성장․고용․
재분배’ 프로그램의 맥락과 뜻을 같이한다(Hall 2004, p. 222). 상업적 농
업의 특별한 지위는 규모와 자본 집약에 관한 것이며, 사전 대책을 강구
하는 방식에서 농경지 소유의 재분할 문제에 직면하는 것을 꺼리는 정부
의 지속적 의지를 설명한다. 토지 개혁에서 상업적 강조는 재산 관계의
재구조화 없이 점진적인 탈인종화(deracialization)에 찬성하여 기울어진
사회적 힘의 균형의 산물이다. 토지 요구에 대한 비교적 약한 표현은 이
방정식의 한 부분이다.

바. 토지 개혁과 젠더 문제

몇몇 연구자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남아공에서 진행된 토지 개혁


프로그램이 여성에게 미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Hall 1998;
Hargreaves and Meer 1999; Walker 1998). 그들의 공통된 견해에 따르
면 토지 개혁 프로그램은 여성의 삶을 그다지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들의
주된 비판은 토지문제부가 자신의 젠더 정책 공약을 토지 개혁 실천과 결
부시키지 못했다는 데 있다. 또한 토지문제부는 여성에 대해 획일적인 개
념을 가지고 그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경향이 있다. 이러한 개념은 상이한
경제 상황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남아공의 상이한 지역들 및 토지 보유나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19


토지 요구의 상이한 범주에 있는 여성 간의 실제 차이를 불명확하게 만든다.
1996년 농장여성회의(Conference on Women on Farms)에서 발표된
한 토론 논문에 의하면, 정책 입안자들은 여성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
하려는 경향 때문에 상이한 여성 집단과 관련된 문제들을 정확히 확인하
고 분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 결
과 신생 정책들은 여성 일반, 농촌 지역 여성 혹은 농장 여성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확인할 수 없고, 이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전략
을 실행할 수도 없다”(Cole and Friedman 1996, p. 5, 재인용: Walker
2002, p. 52).
하그리브스와 미어(Hargreaves and Meer 1999, p. 267)는 개념적 명확
성에 대한 일반적 결여에 주목해 왔다. 이러한 명확성은 주변적 추진력을
중심적 추진력으로 만들고자 하는 양성 평등의 목적 및 토지 정책에 대한
강조로 귀결된다. 하그리브스와 미어도 토지문제부가 양성 평등 공약이
실제로 이행되는 것을 보증할 수 있는 정확한 기제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비판한다. 그들의 지적에 의하면 문제는 양성 평등이 여성의 독립
적 권리에 의해서보다는 남성 파트너와의 관계에 의해서 개념화되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비판은 토지문제부의 정책 개발 초기 단계에서 제기되었
다. 순데(Sunde 1996, p. 8, 재인용: Walker 2002, p. 52)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가구에 대한 현재의 정의 및 적격한 개인(eligible individual)에


대한 제안적 개념 모두는 토지 개혁 보조금에 대한 개인의 독립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정의가 고수됨에 따라 혹자는 단지 부
양가족이나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조금에 접근할 수 있다.

12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이것은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에 기초를 두는 권리장전의 토대와
모순된다. 비록 실제로 이것이 개별적 여성이 보조금을 받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을지라도, 만약 특정 지역 관청이 이것을 용이하게
한다면 가구에 대한 수혜자의 인식은 가구에 대한 가부장적 개념에
토대를 둘 것이고, 그 위험성은 이들 개념이 강화될 것이라는 데
있다.

이처럼 토지 재분배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가구에 대한 기존


의 정의는 문제가 있다(Bob 1999, p. 83, 104). 남아공의 농촌 지역에서
는 일부다처제 관습이 여전히 흔하게 발견된다. 한 명 이상의 부인을 포
함하는 관습법하에서 결혼한 가족들은 단지 한 개의 보조금에 대해서만
자격을 가진다. 이것은 그들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를 확보할 필요가 있는
여성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러한 유형의 정책은 남성 가장
의 지속적인 지배를 확실하게 하며, 토지와 다른 자원들에 대한 접근권과
통제권을 가지지 못하는 종속적인 여성의 창출로 귀결된다.
많은 젠더 연구들에 의하면 여성에게 있어서 가구는 여전히 억압과 투
쟁의 장이다(Levin et al. 1997a). 가구가 토지와 다른 자원들에 대한 접
근권을 획득할 때, 남성이 이들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는 것이 통
상의 관행이다. 그래서 남성 배우자가 여성에게 몇 가지 실제 필요품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가구 내에서 복종적 지위에 있다. 여
성은 토지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며, 누가 토지를 상속해야 하는지를 결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대개 아들이 토지를 상속 받으며, 여성은 자신
의 남자 형제나 배우자가 그것을 마음대로 처분하도록 내버려둔다.
젠더 이슈는 가구 수준에서 누가 무엇을 통제하며, 누가 무엇을 할지를

제5장 만델라 정부(1994~99년)의 토지 정책 ❙121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Bob 1999, p. 104). 이러한 맥락에서 여
성은 종종 불리하고 과중한 부담을 진다. 가구 수준을 넘어, 농촌 지역에
서의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재생산 위기는 여성 가장 가구에게 특히 무
거운 부담을 지운다(Levin et al. 1997b). 레빈 등의 주장에 의하면 아프
리카민족회의 정부가 적어도 문서상으로 양성 평등을 강조한 것은 젠더
억압과 착취의 문제를 거론하기 위한 토대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토지 개혁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젠더 관계에서의 사회 변동 과정은 정부 부처의 예산 및 프
로젝트 주기와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Walker 2002, p. 52). 또한
그 이슈를 지지하는 강력한 지역 리더십의 부재 상태에서 정부가 젠더를
둘러싼 권력관계 속에서 무엇을 획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Walker
1998). 정책적 개입은 기존의 토대에 대한 신중한 평가를 필요로 한다.
여성의 개인적 권리에 대한 주장은 그러한 권리를 지지하는 사회 제도의
부재 속에서는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12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 토지 개혁 개관
2. 토지 재분배 정책
3. 토지 반환 및 보상 정책
4. 토지 보유 조건 개혁
남아공에서는 만델라의 뒤를 이어 음베키(Thabo Mbeki), 모틀란테
(Kgalema Motlanthe), 주마(Jacob Zuma)가 차례로 정권을 장악했다. 만
델라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경제 민주화의 일환으로 다양한 형태의 토지
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토지 정책은 그다지 성공을 거두
지 못했다. 이것은 2010년 남아공 정부가 토지 개혁의 실패를 자인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2012년 현재까지도 남아공의 토지 개혁은 지지부
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고 있는 듯하다. 첫째, 남아공에서는 식민지 지배
를 통해 형성된 사회질서가 여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정부의
토지 개혁 의지가 확고하지 못하다. 이것은 첫 번째 원인과도 일정 부분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셋째, 1990년대 중반 이후 토지 개혁 과정에서 정
부가 표방해온 신자유주의적 접근은 여전히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시장 지향적(market-oriented)’, ‘수요 주도적(demand-led)’, ‘자발적 구
매자, 자발적 판매자’ 접근 등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적 토지 개혁은
남아공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데 상당한 한
계를 지니고 있다. 아래에서는 2000년 이후 남아공에서 진행된 토지 정책
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1. 토지 개혁 개관

남아공에서 토지 개혁의 방향 전환이 처음으로 공표된 것은 2000년 2


월 11일이었다. 이날 농업․토지문제부 장관인 토코 디디자는 토지문제
부의 고위 관리자에게 자신의 두 가지 포트폴리오(portfolio)에 대한 광범

12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한 비전을 제출했다(Walker 2002, p. 3). 토지 개혁과 농업은 특히 토지문
제부의 토지 재분배 및 토지 보유조건 보증 프로그램에 대해 중대한 새로
운 방향을 요구하는 통합 전략에 더욱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었다.
‘토지재분배․개발’ 정책의 발표와 더불어 새로운 토지 정책 방향이
통합 정리된 것은 2001년이었다(Jacobs 2004, p. 5). ‘토지재분배․개발’
정책의 전략적 목적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을 포함했다(HSRC 2003, p. 4).

ⅰ) 15년에 걸쳐 남아공 농지의 30%를 재분배하는 데 기여


ⅱ) 어떤 규모라도 농사짓기를 원하는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영
양과 수입을 개선
ⅲ) 이전의 홈랜드 지역의 인구 과밀 완화 ⅳ) 농촌에 사는 여
성과 젊은이를 위한 기회 확대

‘토지재분배․개발’ 정책하에서 보조 체계는 아프리카인과 컬러드 상


업농의 성장을 촉진하고, 주택보다는 농지의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 쇄
신되었다(Jacobs 2004, p. 5). 수입은 하나의 자격 기준으로 전락했다. 이
는 그 기준이 계급에서 인종으로 전환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보조금은 가구가 아니라 개인에게 제공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여성도 그
것을 신청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발전은 2003년 10월에 발표된 공동체토지권리법안(CLRB:
Communal Land Rights Bill)이다(DLA 2003). 이 법안은 이전의 홈랜드
와 반투스탄 지역의 토지 보유 조건과 관련된 상황을 개선하고자 했다.
이들 지역은 명목상 공동체적 보유 조건하에서 추장에 의해 관리된다. 그
러나 많은 지역에서는 이 체계가 붕괴되었고, 그 상황은 혼란스러워졌다.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25


왜냐하면 아무도 토지 권리를 배분할 수 없고, 아무도 공동 재산을 강탈
할 수 없기 때문이다(Cousins 2003, p. 2, 재인용: Jacobs 2004, p. 6). 결
과적으로 그 법안은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2005년 7월 토지문제부는 요하네스버그에서 토지 관련 최고 회의를
조직했다. 이 회의에는 시민 사회 조직과 정부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이
최고 회의는 ‘빠른 토지 개혁 협력(partnership): 2014년을 향한 새로운
궤적’이라는 주제하에 개최되었다(Ntsebeza 2007, pp. 7-8). 2014년은 토
지 개혁 목표의 30%를 달성할 수 있는 해였다. 광범위한 결의안들이 만
들어지고 최고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전략적 방향에서는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다.

ⅰ) 국가는 토지 재분배에 대해 사전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토


지 재분배의 추진 동력이 되어야 한다.
ⅱ)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 원리는 거부되어야 한다.
ⅲ) 국가는 모든 토지 판매에 대해 제일 먼저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
ⅳ) 토지 개혁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여성, 농장 노동자 및 젊
은이에게 이익을 주어야 한다. 토지는 수용(收用)되어야
한다.(Ntsebeza 2007, p. 8)

그러나 그 회의가 있은 지 거의 2년 후(남아공에서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13년이 조금 지난 후) 토지 재분배의 성과는 여전히 형편없었다. 즉,
2007년 3월까지 모든 형태의 토지 개혁 프로그램은 단지 약 400만 헥타
르―백인이 소유한 토지의 약 5% ―를 역사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남
아공 사람들에게 양도했다(Lahiff 2008, p. 1). 이들 중 약 45%는 반환을
통해, 그리고 55%는 다양한 재분배 방법을 통해 마련되었다. 후자는 정

12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착 및 토지취득 보조금, 농업 개발을 위한 토지 개혁, 농장 노동자 평등
계획, 국가 토지 처분 및 보유 조건 개혁 등을 포함한다.
2010년 남아공 정부는 토지 개혁의 실패를 인정했다. 왜냐하면 2009년
말까지 농지 중의 불과 6.9% ―약 567만 헥타르―만이 178만 명의 수혜
자에게 양도되었기 때문이다(Parliamentary Liaison Office 2010, p. 1).
게다가 정부는 양도된 토지의 90% 이상이 매우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제
대로 활용되지 못하였음을 인정했다. 이러한 실패는 ‘자발적 구매자, 자발
적 판매자’ 정책에 토대를 둔 시장 주도적 프로그램의 결과로 평가 받는
다.31) 실제로 이러한 토지 개혁의 실패는 정부가 수혜자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데다 이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결여된 결과이다.
남아공 토지 개혁 프로그램의 실패는 2011년의 󰡔토지개혁청서(Green
Paper on Land Reform)󰡕에 발표된 새로운 정책의 도입을 촉구하게 만들
었다. 이 정책은 4가지 형태의 토지 보유 체계―국유지와 공유지, 사유지,
외국인 소유지, 공동체 토지―를 준비하도록 했다(DRDLR 2011, pp.
7-8). 이 체계는 사유재산을 위해 제한적 자유 토지 보유를 허용하고 국유
지 임대를 허용하며 외국인의 토지 소유권에 대해 엄격한 조건을 두는 것
을 허용했다. 이 새로운 제안은 2007년 12월 폴로콰네(Polokwane)에서

31) 홀은 왜 남아공의 토지 개혁이 대체로 실패해왔는지에 대해 두 가지 설명을


제공한다(Hall 2007, 재인용: Kostiv 2008, p. 44, Aliber and Mokoena 2002;
(Greenberg 2004; Kahn 2007; Lahiff 2003, 2005, 2007b, 2011; Van Rooyen
2008; Wegerif 2004; Williams and van Zyl 2008 등도 참고): “첫 번째 주장은
자발적 구매자와 자발적 판매자라는 수요 주도적 접근은 본질적 한계를 지
닌다는 점이다. … 두 번째 주장은 정착 이후의 지원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지니며, 재분배된 토지를 연속적으로 충분히 이용하지 않는 것은 토지 개혁
의 영역을 넘어서 보다 광범한 정책 도전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
발적 구매자와 자발적 판매자 접근은 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
도 있다(Agri 2011 참고).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27


열린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제52차 전당대회(National Conference)에서 나
온 요청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 대회는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의
원리를 재검토하여, 시장 주도적 토지 개혁을 폐기하고, 헌법에 따른 수용
(收用)과 관련된 모든 법률을 조정하기 위해서 개최되었다.
2011년 농촌개발․토지개혁부(DRDLR: Department of Rural
Development and Land Reform)는 국가토지배분통제위원회(NLACC:
National Land Allocation Control Committee)와 토지취득이사회
(Directorate: Land Acquisition)를 도입했다. 이 부처의 자체 평가에 따르
면, “이러한 기획을 통해 우리 부처는 구매된 재산에서 돈을 치른 만큼의
충분한 가치를 실현해왔다. 토지 가격은 감정을 통해 잘 통제되고 있다.
농민 지원과 토지 취득 간의 조정도 개선되고 있다”(DRDLR 2012, p. 26).

2. 토지 재분배 정책

가. 2001년‘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LRAD)’

1998년부터 1999년 초반 동안 남아공 정부는 그때까지의 토지 정책이


실패함에 따라 토지 정책 및 프로그램을 재검토했다(Hall 2011, p. 241).
이 시점에서 정부는 생산 목적을 위한 ‘정착․토지취득보조금’ 정책을 시
행하고 토지개혁 신용기관(land reform credit facility)을 설립했으며 생산
및 다수의 가구를 지원하는 추가 보조금을 제안했다. 이는 남아공 정부가
토지 개혁의 초점을 공동체 프로젝트에서 개별 농가 지원으로 전환했음
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실행되기 전인 1999년 6월 타보 음베키는 대

12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표 6-1. SLAG와 LRAD 정책 비교

SLAG 프로젝트 LRAD 프로젝트


가구당 1만 6,000랜드 지급 성인 1인당 2만 랜드에서 10만 랜드 지급
자기 부담금 요구 조건 없음 자기 부담금 요구 조건 있음
주택보조금 등록에 연계됨 주택보조금 등록과 연계되지 않음
가족 단위별 지원금 지급 개인별 지원금 지급
모든 토지 개혁 프로젝트를 포함 농업 프로젝트와 관련된 생산성 있는 토지 사용에 제한함
토지문제부만이 실행 기관임 토지은행(Land Bank)이 실행 기관에 추가
자료: Hall(2004); Lahiff(2008); Cousins(2012).

통령으로 선출된 후 농업․토지문제부의 신임 장관으로 토코 디디자를


임명하면서 기존의 ‘정착․토지취득보조금’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토지
개혁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내부 검토를 실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아공 정부는 기존의 토지 재분배 정책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토지 재분배 정책의 효과를 고려한 정책
개혁을 시도했다. 토지 재분배 정책은 소위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동원
된 군중 모으기 현상(rent-a-crowd) 증후군’에 기초한 매우 비효율적인 토
지 개혁 정책이라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또한 이 토지 재분배 정책은
현재 가장 큰 관심과 주요 수혜 대상이자 목표가 된 신흥 흑인 상업농
(emerging black commercial farmers)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지원하지 못
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Cousins 2012, p. 14)
이러한 맥락에서 2001년 남아공 정부는 토지 개혁과 농업을 통합할 목
적으로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32) 이 프로그

32) 토코 디디자 농업․토지문제부 장관은 과거에 분리되었던 두 독립 부처를 하나로 통합


한 부처를 총괄하게 되었다. 또한 세계은행과 프리토리아대학교 소속 농업 경제 전문가
들은 농업․토지문제부와 긴밀한 협력을 하도록 초청되었다.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29


램은 1990년대 초반부터 세계은행이 제안한 ‘토지 취득을 위한 보조금의
차등제(sliding scale of grants for land acquisition)’ 및 자체 기여금(own
contribution)에 따른 차등제를 반영했다. 즉,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
배’ 프로그램은 최소 5,000랜드에서 최대 40만 랜드에 이르는 자체 기여
금 등급에 따라 수혜자당 최소 2만 랜드에서 최대 10만 랜드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정착․토지취득보조금’은 수혜자를 가족 공동체로 지정한 반
면,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은 농업 생산 및 관리 능력을
갖춘 개인이 수혜자가 되도록 하는 방안이다. 즉, 새로운 토지 개혁 프로
그램인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은 이전 프로그램인 ‘정
착․토지취득보조금’과는 달리 주요 수혜 대상으로 개인에게 초점을 두
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기존 프로그램이 간과하여 거세게 비판을 받았
던 신흥 흑인 상업농 지원에 주된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새로운 토지 개
혁 정책에 따라 각 주(州)에 소속된 농업 부서는 신흥 흑인농을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금과 예산을 확충하여 이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
록 중앙 정부로부터 지도를 받았다(Jacobs 2003).

표 6-2. LRAD의 핵심 목표

1. 흑인(아프리카인, 컬러드, 인도인)의 농업용 토지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15년 내에 상업용


토지(과거 백인이 경영해 온 농장)의 약 30%를 재분배하도록 한다.
2. 인구 밀도가 높은 과거 흑인 홈랜드 지역의 인구 과밀 현상을 해소한다.
3. 농장을 경영하기를 원하는 빈농들의 영양 상태와 소득 수준을 향상시킨다.
4. 농장 소유권에 있어 인종 및 성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 극복한다.
5. 중간 및 소규모 농장을 희망하는 흑인 농민을 지원하여 장기적으로 구조적 변화를 도모한다.
6. 농업을 통해 국가 경제성장을 유도한다.
7. 소득 창출 활동에 있어서 농장과 비농장 간의 연결점을 창출하고 강화한다.
8.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전도유망한 청년들에게 일자리 창출 기회를 확대한다.
9. 수혜자들의 경제․사회적 복지 혜택을 강화한다.
10. 공동체 마을 지역에서 생산적인 토지 사용을 위해 농업용 토지의 접근성을 강화한다.
11. 토지와 다른 자연자원의 지속 가능한 환경을 지원한다.

자료: DLA(2001), p. 1.

13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아공 농업․토지문제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농
가 정착 지원 부서를 설립하도록 지시하고, 인프라 조성과 새로운 농가
보조금을 제공하기 위한 자금 체계 및 예산을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
배’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농업 정책과 관련하여 남아공 정부는 ‘효율
성’을 강조하면서, 시장 주도적 접근 방식을 고수하고 신흥 농민들 간의
협력을 강조했다.
2001년 음베키 대통령은 농업 관련 대통령 직속 실무진(Presidential
Working Group)을 출범시키고, 남아공 농업무역협회(AgriSA: South
African Agriculture), 남아공 전국아프리카농민연합(NAFU: National African
Farmers Union of South Africa), 농업상공회의소(Agricultural Business
Chamber/Agribusiness Chamber), 프리토리아대학교 농과대학 관계자들
을 한자리에 모아서 논의를 한 후에, 남아공농업전략계획(Strategic Plan
for South African Agriculture)을 발표했다. 이것은 ‘공평한 접근 및 세계
경쟁력, 수익성 및 지속 가능한 농업 부문의 참여’를 목표로 삼았다. 이
계획은 ‘협력(partnership)’을 통해 상업농 부문의 인종 차별을 철폐하는
데 주된 초점을 두고 농업을 통한 흑인 경제 강화(Agri-BEE: Agri-Black
Economic Empowerment) 정책 개발을 시작했다.
농업 부문 내에서 ‘개혁’이란 흑인의 상업적 이익과 신흥농을 위한 기
회를 열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2004년 흑인 경제를 강화하는 정책 체계
가 발표되고, 그 후 2008년 흑인경제강화헌장이 공표되었다. 이 헌장의
주요 목표는 흑인의 소유권을 강화하고 농업 관련 산업을 관리하는 데 있
다. 이러한 목표하에 점수표를 통해 소유권 평등, 선임 관리자 고용, 고용
평등, 정부 물품 조달에 용이한 기업에 대한 주요 인센티브 등의 변수들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31


이 기록되었다.
2010년 농업상공회의소가 30개의 대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그들 중 30%가 흑인 경제 강화의 요구 점수를 달성했고, 50%가
현재 진행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대기업의 절반이 14~30%의 흑인 소유
권을 확보하고 있었고, 기업 개발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획득
했다.
한편, 물품 조달 우선 사항에서는 평균 수준의 점수를 보였으나, 경영
관리, 고용 평등, 기술 개발 부문에서는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일부 기업
은 신흥농과 농민 단체를 지원하고 벤처 사업에 투자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기존의 ‘홈랜드’에 있는 몇몇 개별 농가와 소규모
공동체에게만 제한되었다. 이는 대부분의 개혁 계획이 지속 가능하지 않
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설탕과 임업 관련 기업에서 개별 상업농
(commercial farmers)에 대한 민간 부문 참여자들은 토지 개혁 수혜자를
포함하여 소규모 농가 지원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개발․기업센터(Center
for Development and Enterprise)와 같은 민간 부문 옹호 단체는 이러한
정부 전략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 “민간 부문이 농촌 토지 개혁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실행 가능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CDE
2005, 2008).33) 이러한 흑인 경제 강화(Agri-BEE) 정책과 관련하여 피
터 제이콥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33) 한편 비평가들은 이러한 계획의 대부분은 자본 집약적, 상업적 농업 모델에 초점이 맞


춰져 있어서 자원이 부족한 소농들이 참여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Kleinbooi
2010, p. 42). 민간 부문 프로젝트로 인해 토지 개혁 수혜자들이 얼마나 수혜를 받았는
지에 대한 수치가 명확하지 않고, 통계 조사 또한 제한된 숫자만 포함하고 있다.

13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이 정책은 흑인 상업농의 개발을 강화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즉, 이 정책은 농업 부문에서 흑인의 소유권을 증대시킴으로써
흑인 신흥 자본가 계층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2012년
7월 23일 면담 내용 중에서)

그러나 남아공의 흑인 경제 강화 정책의 모호성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래의 인용문은 벤 카즌스 교수와의 면담 내용 중 흑인
경제 강화에 관한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정책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할 뿐만 아니라, 특


히 농업과 연계성이 명확하지 않고 이 정책에 참여하는 해당 기업
의 최소 규모에 대한 자격 또한 명확하지 않다. 더욱이 이 정책에
따라 설립된 농업 기업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정책은
남아공의 모든 농업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정책은 아니
며, 또한 토지 개혁과 흑인 경제 강화 정책 간의 연관성과 그 효과
가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사실 남아공
상업농 부문에 속하는 기업 규모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기업의 연
간 수익이 30만 랜드 이하이며, 상위 25%의 대규모 농업 기업들이
총생산의 75~80%를 차지한다. 또한 흑인 경제 강화 정책은 상위
기업에만 적용된다. 실제로 이 정책의 실행은 상업농의 50%를 대
체하여 재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농업 총생산에 그다지 큰 영향
을 미치지 않는다.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이 시행됨에 따라, 토지 재분배


프로그램의 수혜자와 토지 권리 이전이 증가했다. 그러나 이전된 토지의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33


총면적은 1년에 25만 헥타르를 넘지 못했고, 이는 2014년 목표 달성 예정
인 농지의 30%의 권리 이전 중 10%에 지나지 않는 수치였다(Lahiff
2008, p. 23).
또한 흑인 상업농의 육성을 위한 계획은 개별 신청자에게 상대적으로
적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차등제 상위 등급의 액수에 따른 보조금이 너무
적게 책정되어 시행됨으로써 그 결과는 기대했던 만큼 큰 성과를 내지 못
하고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결과적으로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
배’ 프로그램이 시행된 후 2년 동안 보조금의 41%는 가장 낮은 액수인
2만 랜드를 지급했고, 40%는 3만 랜드 수준으로 지급했다(Lahiff 2008,
p. 3). 또한 보조금에 인플레이션이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2000년대 초
반에 전국 토지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실제 보조금의 가치는 더욱 감소했다.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후속정착지원(post-settlement support)이 적절하게 활용되지 못한 데
있다. 이는 ‘농업지원 종합프로그램(CASP: Comprehensive Agricultural
Support Program)’을 통한 농촌 인프라 투자가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
분배’ 프로그램과 동시에 진행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Lahiff 2008, p. 37).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원인
중 또 다른 하나는 토지를 공동체 단위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설립된 법적 단체가 공동재산협회와 신탁업체(trusts)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자원 할당, 정확한 사용 권한의 정의, 정책
결정 부서와 위원들의 책임과 권한, 그 과정들이 전반적으로 비(非)기능
적이었음을 의미한다(CSIR 2005, 재인용: Lahiff 2008, p. 39).
이렇듯 앞에서 언급했듯이 후속정착지원의 문제가 계속해서 남아 있던

134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이유는 농업지원 종합프로그램을 통한 농촌 인프라 투자가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을 실행하기에 적절할 만큼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농업지원 종합프로그램은 프로그램 절차상 신청 및 승인
과정이 관료적이고 소모적이며, 법적 단체를 설립하고, 판매를 위한 농지
를 정해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가격을 협상하며 판매 계약에 도달하는
것 등 토지 취득 절차가 소위 ‘자발적 구매자’인 수혜자들의 사기를 꺾고,
‘자발적 판매자’인 지주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Lahiff 2007b, pp.
1585-1589).

나. 2006년‘사전토지취득전략(PLAS)’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이 실패함에 따라 수혜자, 비정


부 기구, 상업농, 관련 전문가 등 여러 분야 이익단체들의 항의가 거세졌
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2005년 남아공 정부는 전국토지최고회의조직
(Organization of a National Land Summit)을 구성하여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는 1,000명 이상이 참석하여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 접
근을 검토하고, 토지 수용과 토지 재분배에 대한 남아공 정부의 ‘선제적’
역할 등을 포함하여 여러 ‘급진적인(radical)’ 결의안을 채택한 후 강력한
논쟁을 벌였다.
그 이듬해에는 이 회의에서 다뤄진 제안들을 토대로 새로운 정책이 시
행되었다. 이러한 정책에는 ‘지역기반 프로그램’에 중점을 둔 ‘사전토지
취득전략(PLAS: Pro-active Land Acquisition Strategies)’, ‘자발적 구매
자, 자발적 판매자’ 접근 방법에 대한 검토, 반환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설계된 수용법안(Expropriation Bill) 초안, 외국인 토지 소유권(foreign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35


land ownership) 보고서, 토지 사용 한도(land ceilings), 토지세(land tax-
es) 등이 있다(Lahiff 2008, pp. 7-9). 2007년 12월 폴로콰네에서 개최된
아프리카민족회의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은 급진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당시 이 전당대회 결의안은 농촌 개발, 토지 개혁 그리고
농업 변화를 통합하는 프로그램의 필요성과 소작농, 농장에 거주하는 흑
인 노동자, 여성에 대한 지원의 중요성, 그리고 시장에 기반한 토지 재분
배에 대한 검토를 강조했다. 이 시기에 남아공에서는 ‘농업 개혁(agrarian
reform)’이라는 용어가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개혁은 기
존의 농업 구조를 급진적으로 재편성하기 위한 정책적 목표에 초점이 맞
추어져 있기보다는 알맹이가 빠진 명목상의 개혁으로 남았다(Cousins
2012, p. 17).
사실 남아공 정부는 지주, 농민, 야당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자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을 철회했다. 뿐만 아니라 남아공 정부는 상기에서 언급한 토지 개혁
에 대한 반대파 세력들의 비판에 무릎을 꿇고, 결국 토지수용법안 초안,
토지 사용 한도 및 토지세에 대한 제안 또한 토지 개혁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철회했다. 한편 2006년에는 사전토지취득전략이 토지
개혁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표 6-3. PLAS의 주요 기대 목표

1. 토지 재분배 과정을 가속화한다.


2. 토지문제부(DLA)가 백인 거주 지역과 흑인 거주 지역 간의 경계 지역(nodal areas)과 농업 생산성이
잠재적으로 높은 지역에서 토지를 구매하여, 남아공의 가속 공유 성장 이니셔티브(ASGISA: Accelerated
and Shared Growth initiative for South Africa)의 주요 목표를 달성한다.
3. 사람들이 정착 및 거주할 토지 계획과 수혜자 선별을 향상시킨다.
4. 정부가 구매한 생산성 높은 토지의 활용도를 극대화한다.
자료: Lahiff(2008), p. 21.

13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이후 남아공 정부는 2007년부터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안한 지역개발
계획과 토지 개혁의 통합을 시도한 지역기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아래
의 인용문은 벤 카즌스 교수와의 면담 내용 중 상기에서 언급한 지역기반
프로그램과 관련된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지역기반 프로그램이라는 접근은 수요와 공급의 기회가 있는


특별한 지역에 집중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고, 후속 지원 인프라 개발 및 서비스를 구
상하고 계획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몇 토지 전문가는 지역기반 프로그램 속의 주요 지역으로 흑인
거주지와 백인 거주지의 경계에 위치한 토지를 추천했다. 이는 이
경계 지역에 거주하는 백인들이 사육하는 가축을 종종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하여, 그들이 이 토지를 팔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이 경계 지역의 토지는 가격이 저렴하고 양질이라는 점이 주요
지역으로 추천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이 경계 지역은 흑인
거주지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기
반 프로그램은 사전토지취득전략을 동시에 실행하는 것으로 초점
이 맞추어져 있다. 즉, 백인 토지 소유주들이 시장에 토지를 내놓
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그 지역에 직접 가서 그 토지를 구매할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2012년 7월 24일 면담 내용 중에서)

사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램은 남아공 정부가 수혜자들에게 보조금을


제공하지 않고 지주들로부터 직접 토지를 구매한다. 재분배 신청자들은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37


3년에서 5년의 임차 계약에 기초하여 남아공 정부가 구매한 농장을 할당
받게 되고, 그 후 임차인이 그 토지를 구입할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Lahiff 2008, p. 8). 2007년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에서
의 보조금 지급 범위는 43만 1,000랜드까지 증가했다(Aliber and Hall
2010, p. 20). 이는 흑인 신흥농의 요구가 다시 강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벤 카즌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이는 토지 개혁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증대된 데 기인한다. 정부는 2014년까지 30%의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사전토지취득전략(PLAS)을 이용하여 토지 취득을 가속화할
수 있었다. 토지가 시장에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토지 가격을 협상
하고, 정부가 그 토지를 구매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책이 실행
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사전토지취득전략과 지역기반 프로그램은
상호 조응하는 연계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토지 개혁의 집
단 프로젝트들이 실패함에 따라 사전토지취득전략은 개인에 초점
을 맞추게 되었다. 즉, 사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램에 속한 토지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개별 사업가들에게 임대해 주게 되었다. 이 사
람들은 가난하지도 않고 하루 종일 농장에서 일하는 하층민도 아
닌, 나름대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에 속하는 부류이다. 남아
공 정부는 토지 개혁의 목표가 더디게 진행된다는 비난을 무마하
기 위해 방법으로, 토지를 구매하여 수혜자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관리조차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임차 비용 또한 받지 않
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이로써 남아공 정부는 토지 개혁에 많은
지출을 하는 반면, 흑인농 수혜자들에게는 정부가 지출한 만큼의

138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더욱이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LRAD) 프로그램과 마찬
가지로, 사전토지취득전략(PLAS)도 개인이나 소가족 단위에 초점
이 맞추어져 있다. 사실상 PLAS는 LRAD의 연속선상에서 생겨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LRAD 정책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 전문
가들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적을 것을 우려하여 LRAD 지원금
을 개인뿐만 아니라 빈곤 집단에게까지 제공했다. 시행 초기에 대
부분의 LRAD 지원금은 빈곤층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LRAD 정책은 집단보다는 개별 농가에 집중되었다. LRAD는 대
규모 토지를 분배하지 않고 소규모 농지를 조성하지 않았으며, 오
히려 대규모 농지를 조성하는 것에 더 초점을 둔 데 대해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는 대규모 농장이 소규모 농장보다 상업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었다. 남아공 토지 개혁 모델은 빈곤한 흑인 소작농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상업농을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토지 개혁을 계획했을 당시, 정책 입안자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친숙한 경영 기술과 사업 계획을 접목시켜 컨설턴트들
의 조언에 따라 대규모 농지의 생산성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들었
다. 이것이 바로 토지 개혁에 있어 주요 논쟁의 핵심이 되었던 부
분이다. (2012년 7월 24일 면담 내용 중에서)

정부는 사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램을 통해 토지 구매 범위를 확장시켰


다. 그러나 지역의 수요와 토지의 공급이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으며,
임차인에 대한 지원 부족이 주된 취약점으로 나타났다(Greenberg 2010,
pp. 5-6). 30%의 재분배 목표와 관련해서 2009년 9월까지 농지의 6.9%인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39


567만 헥타르가 총 187만 8,000명의 수혜자에게 양도되었다(Greenberg
2010, p. 4). 하지만 재분배된 토지의 4분의 1 이상이 반건조 지역인 노던
케이프 주에 국한되었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벤 카즌스 교수는 다음
과 같이 주장했다.

사실 사전토지취득전략 및 지역기반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첫째, 사전토지취득전
략 및 지역기반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 컨
설턴트에게 넘겨주었다는 점이다. 즉, 정부의 책임 부처가 이를 담
당하지 않고 컨설턴트가 맡게 되었지만, 컨설턴트의 보고서는 양
질의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둘째, 토지 개혁
프로그램은 낮은 생산성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책으로 일
부 남아공 정부 관계자들이 토지를 바로 넘겨주지 말고 3년에서
5년의 단기 임차 계약을 맺고, 그 후에 토지를 팔 수 있을지에 대
한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즉, 사전토지취득전략은 흑인농에게
토지 구입시 ‘단기 임차 계약’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한하였다. 이
는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2012년 7월 24일 면담 내용 중에서)

다. 2008년‘토지ㆍ농지개혁 프로그램(LARP)’

2006년에 농업․토지문제부 룰루 싱와나(Lulu Xingwana) 장관은 2008


년 실행을 목표로 ‘토지․농지개혁프로그램(Land and Agrarian Reform

14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Programme)’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토지 문제 담당 부처와 지방의
농업 부서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
램과 ‘농업인프라지원(Agricultural Infrastructure Support)’ 프로그램, ‘농
업지원 종합프로그램’의 검토 사항을 접목시켰다. ‘토지․농지개혁프로
그램’은 또한 공동체와 집단보다는 개별 농민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지방자치단체로 서비스를 분권화시키면서 토지 취득 및 농업 지원 차원
에서 단일 보조금 지원을 향상시켰다. 사실 ‘토지․농지개혁프로그램’은
토지문제부와 주 정부의 농업부 간 긴밀한 협력을 모색함과 동시에, ‘농
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과 농업지원 종합프로그램을 통합하
는 데 주목적을 두었다. ‘토지․농지개혁프로그램’은 500만 헥타르의 농
지를 1만 명의 수혜자에게 분배하고, ‘농업 기업가(agricultural en-
trepreneurs)’의 수를 10~15%로 증가시키며, 공동체 토지의 농업 생산량
또한 10~15%로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Greenberg 2010 p. 11).34)
그러나 ‘토지․농지개혁프로그램’은 기존의 토지 개혁 정책과 크게 다
를 바 없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남아공 정부의 토지 개혁 예산은 증가
했지만, 토지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정부는 토지 재분배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주도하에 운영되는 ‘토
지․농지개혁프로그램’은 정부 지원과 잘 융합 및 통합되지도 못했다. 결
과적으로 2009년 후반까지 지역에 기반을 둔 ‘토지․농지개혁프로그램’
의 진행 절차는 여전히 계획 단계에 머물렀다(Umhlaba Rural Service
2009, p. 111). 실제로 사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램은 남아공 정부로 하여

34) 이러한 토지 개혁 예산은 2003~04년 동안 여러 토지 개혁 실패 보고서로 인한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상당히 증가했고, 토지 특히 농지의 30% 재분배라는 목표치는 2025년으
로 연장 및 변경되었다.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41


금 계속해서 토지를 구매하도록 했으나, 토지의 공급량과 수요량은 균형
점을 찾지 못해 결국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예컨대 2009년 9월경까지
30%의 토지 재분배 목표에 비해, 농업용 토지 중 6.9%인 5,670,000 헥타
르가 1,878,000명의 수혜자에게 재분배되었다. 더욱이 이들 재분배된 토
지들 중 4분의 1 이상은 활용도가 떨어지는 건조한 노던 케이프 주에 있
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9년에 룰루 싱와나 농업․토지문제부 장관은
후속정착지원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농업개발을 위한 토
지재분배’ 프로그램의 29%가 완전히 실패했고, 22%는 실패의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Greenberg 2010, p. 11).
지방자치단체 부서를 통한 농업발전기금은 2005년 이후 현저히 증가
했지만, 국가 예산의 3% 미만에 머무는 수준이었다(Aliber and Hall
2010, p. 5). 늘어난 기금은 서비스 확장, 농업지원 종합프로그램을 통한
인프라 개발, ‘남아공의 소규모 농업금융기관’(MAFISA: Micro-Agricultural
Finance Institutions of South Africa)을 통한 대출 및 연구 등에 할당되었
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농업지원 종합프로그램을 통해 혜택을 입은
수혜자는 연평균 약 6만 1,000명에 이르며, 남아공의 소규모 농업금융기
관을 통해 대출을 받은 농민들은 연평균 약 2,500명에 이른다(Aliber and
Hall 2010, p. 8).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상당히 왜곡된 토지 재분배를 감
추고 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2009년 국가 차원에서 시행한
농업지원 종합프로그램의 322개 프로젝트 중에서 기금의 50.7%가 수혜
자의 2.6%에게만 돌아갔으며, 모든 소작농을 고려하면 국가 기금의 가장
큰 몫은 단지 0.02%의 소작농에게만 혜택이 돌아갔다(Aliber and Hall
2010, p. 12).

14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자금의 대부분은 공동체 토지 개혁 프로젝트를 제외한 나머지 프로젝
트에 지출되었다. 농업지원 종합프로그램은 ‘상업적 생존력(commercial
viability)’을 자금 지출 기준으로 삼았다. 또한 대규모 예산 지출이 발생
했던 이유는 프로그램에 투입된 공무원 수를 줄이는 대신, 모든 프로젝트
의 크기를 늘렸기 때문이다(Aliber and Hall 2010, p. 16). 2008년 남아공
정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농민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품질 저하와
현장 직원 수의 감소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DoA 2008; Aliber
et al. 2011, p. 20). 이로 인해 남아공 정부는 5억 랜드의 예산이 투입된
‘확장복구계획(extension recovery plan)’에 착수하여, 더 많은 직원을 고
용하고 기존 직원의 재교육을 실시했다.

라. 2009~12년 토지 재분배 개혁

2009년 주마 정부가 출범하면서 농업․토지문제부가 농촌개발․토지


개혁부로 바뀌었다. 주마 대통령은 농촌개발․토지개혁부와 농림수산부
장관으로 각각 구길레 은퀸티(Gugile Nkw ​
inti)와 티나 조메트-패터슨
(Tina Joemat-Petterson)을 임명했다. 그는 토지와 농업 정책이 어떻게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기존의 ‘토지․
농지개혁프로그램’을 보류시켰다. 주마 정부가 강조하는 핵심 쟁점은 농
촌 개발, 식량 안보 및 토지 개혁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조화롭게 연계될
수 있는가에 맞추어졌다. 남아공 정부가 2009년 7월에 발표한 ‘농촌개발
종합프로그램(CRDP: Comprehensive Rural Development Programme)’은
세 갈래 전략 체계를 수립했다. 이 프로그램은 농업 변혁(가축 및 작물
재배에 초점을 두고, 농촌 생계 및 식량 안보 개선에 주안점을 둠), 농촌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43


개발(농업 계획, 농산업, 공동 운영, 사회적 동원과 능력 향상, 사회 및 경
제 인프라에 집중), 그리고 토지 개혁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농촌 개발과 토지 개발을 기반으로 농촌 개발, 식량 안보, 토지 개혁을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농촌개발 종합계획의 핵심에는 개발 전문
가들이 농촌 개발 프로젝트에서 채용하는 지역 사회 구성원을 양성함으
로써 고용을 창출하는 모델이 포함되어 있다. 전반적인 목표는 ‘역동적
(vibrant)이고 지속 가능한(sustainable) 농촌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농
촌개발․토지개혁부는 다른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에서 중
요한 공동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다. 현재 각 주(州)에서 선택된 한 곳의
특정 지역에서는 여러 농촌개발 종합계획 프로젝트가 시범 운영되고 있
다. 2010년에는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을 통해 추진되어
온 프로젝트들이 전면 중단되었고, 현재는 단지 사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
램만이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아공의 토지 재분배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명확
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토지 개혁의 전망을 어둡게 했다. 2007~08년도
에 발표된 사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램은 토지 재분배를 위해 취득한 토
지 중 가장 큰 토지 분배량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
을 통해 혜택을 입은 수혜자들은 소작농이 아닌, 보다 큰 규모의 농장을
경영하는 상업농이었다. 2012년 5월에 발표된 중간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토지 재분배 정책을 통해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총 888만 2,238헥
타르가 1만 447명의 수혜자에게 양도되었지만, 프로그램의 유형에 따라
토지 재분배 수혜자들의 성분을 상세히 분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전
토지취득전략에 따른 수혜자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로 농업 이외

144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의 다른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류로 볼 수 있다. 비록 이들 수혜
자가 종종 임차료를 제때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이로 인해 이들
이 토지 임차 갱신에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
다(Cousins 2012, p. 20).
한편 농촌개발 종합프로그램에 대한 중간평가 보고서에서는 여러 한계
점도 발견되었다(Umhlaba Rural Service 2009, pp. 7-8). 전반적인 비전
과 전략 계획에 대한 합의 부족, 농촌개발 종합프로그램의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 헌법 위임과 법체계에 대한 명확성 부족, 예산의 배치와 통합
부족, 권한과 책임의 명확성 부족, 시험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책임자에 대
한 불확실성과 혼란, 사회 참여의 부족 등이 한계점으로 드러났다. 반면
농촌개발 종합프로그램의 긍정적인 특징은 높은 수준의 책임감과 열정이
었다. 중간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프로젝트가 23개 지역에서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1만 5,336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임
시직이나 영구직 혹은 자영업 등 ‘직업’에 대한 개념 정의가 명확하게 나
타나 있지 않다.
더욱이 농촌개발 종합프로그램에서 명시된 ‘농촌 개발’이라는 개념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 홈랜드 지역에서
선택된 특정 구역 내에서 수많은 소규모 프로젝트(micro-projects)를 상당
한 액수로 재정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수의 소규모
프로젝트 지원 사업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즉, 이러한 소규모 프로젝트가 농촌 지역에서 중소기업과 농촌 마을 시장
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산업 및 재정적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는 불
확실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외부인이 이러한 프로젝트에 계속해서 재정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45


지원을 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러한 소규모 프로젝트가 농업 변혁과 토지 개혁에 어떻게
연계될 것인지 또는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도 모호하다. 왜냐하면 농촌
공동체에서 농업 생산성 증대를 주목표로 삼고 있는 농촌개발 종합프로
그램은 적어도 실질적으로는 중․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는 신흥 상업농에
게 우선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촌개발 종합프로그램과 󰡔토지개혁청서󰡕 모두 남아공의 인종적 역사성
에 기인한 불평등한 농업 구조를 재구성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
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위에서 언급했듯이 ‘농업개발을 위한 토지재분배’ 프로그램은
2010년에 중지되었으며, 현재는 사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램만이 시행되
고 있다. 현 주마 정부하에서 토지 재분배 실적은 계속해서 감소했다. 전
문가들에 따르면 2007년 8월 사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램하에서 토지 재
분배를 위해 정부가 취득한 토지는 토지 개혁을 실시한 이래 가장 큰 부
분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실질적으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대규
모 농가 수혜자들’이었다.
다른 한편, 남아공 정부는 오랫동안 약속해 온 󰡔토지개혁청서󰡕를 2011
년 8월에 마침내 발표했다. 그러나 󰡔토지개혁청서󰡕는 매우 짧은 지면에
간단한 토지 개혁에 관한 원리 및 원칙을 바탕으로 한 성명서로 제한되었
다. 󰡔토지개혁청서󰡕에서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은 차지권에 해당하는 국유
지와 공유지, 한정된 범위의 자유 보유권에 해당하는 개인 소유의 토지,
자유 보유권에 해당하는 외국인의 토지 소유, 공동 거주권에 해당하는 공
동 소유 토지를 포함한 ‘네 가지 형태의 토지 보유 체계(4-tier tenure sys-

14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tem)’를 포함한다(DRDLR 2012).35)
또한 󰡔토지개혁청서󰡕는 토지관리위원회(Land Management Commission),
토지권리관리이사회(Land Rights Management Board), 토지감정평가국
(Valuer-General)과 같은 새로운 기관들을 신설할 것이라는 제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토지개혁청서󰡕는 현재까지 시행되어온 토지 개혁 정책의
문제점을 전혀 분석하지 않았다는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토지
개혁청서󰡕는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 접근 방식에 대한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농장 거주 노동자들과 농촌 공동체를 위한 토
지 보유 개혁 프로그램의 실패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언급
하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2011년 󰡔토지개혁청서󰡕에서는 단지 몇 문장으로 토지 개혁과 농업을
연결시킨다는 내용만을 언급하면서, 토지 개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제
안이나 방향을 보여주지 못했다. 예컨대 2011년 󰡔토지개혁청서󰡕에서 다
음과 같은 문장을 확인할 수 있다: “농촌 개발과 토지 개혁은 정책, 프로
그램 및 제도적 수준에서 함께 갈 수 있다. 농업 변혁을 위해 토지 문제와
농업 간의 연결 고리는 경제적 논리 추구의 토대로 인식될 수 있다.” 이와
함께 󰡔토지개혁청서󰡕에서 밝히고 있는 또 다른 모호한 주장은 다음과 같
다: “토지 수요는 생산적이지만 비농업적인 다른 용도에도 있을 수 있

35) 남아공 정부는 2011년 8월 󰡔토지개혁청서󰡕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논평은


단 11페이지의 간결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원칙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토지개혁청서󰡕에는 단지 몇 문장으로 토지 개혁과 농업에 대한 해결책이 언급되
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모호하고 현재 토지 개혁 정책의 단점에 대한 분석은 포함하지
않았으며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 모델의 비판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전혀 언급
하지 않았다. 󰡔토지개혁청서󰡕의 주요 초점은 가능한 대안(possible alternative)인 ‘네 가
지 형태의 토지 보유 체계’를 마련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47


다”(DRDLR 2012). 아래의 인용문은 벤 카즌스 교수와의 면담 내용 중,
2011년에 발표된 󰡔토지개혁청서󰡕와 관련된 부문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더욱이 󰡔토지개혁청서󰡕에는 농업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하


지만 현재 주마 대통령은 농촌개발부와 농림수산부를 분리하였는
데, 이는 정치적 책임에 따라 두 개의 부처로 분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농촌개발부는 ‘기아 퇴치(zero-hunger)’ 운동에 주력
했다. 이에 대한 실천 방법으로 남아공 정부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
학교, 병원, 교도소 등 정부기관에 소작농이 갓 생산한 물품을 납
품하게 하여 대농과 경쟁하지 않는 독과점 시장을 마련했다. 이는
잠재적으로 토지 개혁 수혜자들에게도 유용한 정책으로 평가 받는
다. 하지만 농업 부문의 소작농 지원 프로그램은 토지 개혁 프로그
램에 통합되는 것이 아님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즉, 농촌개발 종
합프로그램은 토지 개혁 프로그램과 관련되어 있지 않고, 토지 개
혁 프로그램에 맞추어 계획되지도 않았으며, 사실상 이익을 거의
창출하지 못하였다. 실제로 농촌개발 종합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은 흑인 거주자가 많은 지역을 경작할 수 있도록 돕고
관개 시설을 제공하며, 양돈 사업 및 양계장 사업과 하수 처리를
개선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농촌개발 종합프로그램은 필수적으
로 농촌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초
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시 말하자면 농촌개발 종합프로그램은 토
지 개혁의 일환으로 볼 수 없고, 이러한 프로그램은 아파르트헤이
트를 재생산하여 이전 백인 정부의 방식을 지속시킬 뿐이다. (2012

148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년 7월 24일 면담 내용 중에서)

마. 2000년 이후 토지 재분배와 농업 정책의 세 가지 모순

[그림 6-1]은 지난 1994년 이후 남아공 정부가 채택한 주요 토지 개혁


정책을 나타낸 것이다. 가로축은 ‘정부 대(對) 시장 기제(state vs. market
mechanisms)’ 축을 나타낸 것이고, 세로축은 ‘대규모 농장 대(對) 소규모
농장(large farms vs. small farms)’의 대립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정부와
시장 사이에 서로 다른 이익 단체가 포진해 있다. 정부 대(對) 시장 기제
축(가로축)을 살펴보면, 1994년 이후 정부의 정책은 중심의 아래쪽에 머
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 접근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
고, 토지 개혁은 시장 친화적이며, 전반에 걸쳐 지나친 효율성을 강조한

그림 6-1. 1994년 이후 남아공의 주요 토지 개혁 정책

자료: Cousins(2012), p. 28.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49


토지 개혁 정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규모 농장과 소규모 농장의 대립축
(세로축)을 살펴보면, ‘정부의 토지 정책’이 1990년대에는 소규모 농장을
지지했으나, 2000년대 초반에는 대규모 신흥 농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리고 2009년 대선 이후 다시 소작농에게 초점을 돌렸지만, 실질적으로 사
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램은 신흥 흑인 자본가들을 지지했다.
2000년 이후 토지 재분배와 농업 정책은 농촌 개혁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 도전 과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불평등하게 나눠진 농업 구조와 관
련하여 토지 및 농업 정책은 일관성 있게 결합되지 않았다. 전반적인 토
지 정책들이 토지 재분배와 생산 및 마케팅 체계 구조를 변경시키려는 목
적을 가졌지만 실패했다. 실제로 남아공 토지 개혁 정책을 통해 소작농의
경제 활동은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다. 이는 대규모 농장의 세분화가 이뤄
지지 않았던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사업 계획과 생산 체계
가 대규모 농장 단위로 지속되면서 ‘농장의 생산 능력’에 대한 내부 모델
과 외부 조건이 대규모 상업 농장에 맞춰졌다. 토지 개혁을 통한 다수의
소작농 수혜자들이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정책이나 프로그램은 개발되지
않았다.
둘째, 토지 재분배의 수혜자를 결정하는 일과 관련하여, 초창기 토지
개혁 정책들은 주요 수혜자를 대다수 빈농으로 국한하였으나 이러한 특
징은 점차 사라졌고, 여성, 농장 노동자, 임차인 등을 포함한 ‘농촌 빈곤
층’에 대한 세부적 범주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1999년 이후부터
신흥 상업농은 주요 목표 계층이 되어왔다. 대규모 농장 모델의 헤게모니
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들은 현재까지 농업 부문에서 실행되고 있는 제한
된 개혁 정책의 주된 대상이 되어왔다. 최근 수정된 사전토지취득전략 프

15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로그램의 조건들은 토지 재분배 정책을 통해 흑인 엘리트 계층을 육성하
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셋째, 토지 재분배의 방법적인 부분과 관련하여,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새 헌법 체계에 백인의 농장 보유를 위한 사유 재산권을 보장하도록 정치
적․이데올로기적․실용적인 사안들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토
지 재분배 정책에서는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 접근 방식이 주요
한 작동 기제로 작용했다. 2007년까지 실시된 토지 정책의 원리는 토지
구매와 토지 개발을 위해 수혜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초점을 두
었다. 하지만 불충분한 자금과 부적절한 정착 지원으로 인해 수혜자들이
실질적으로 상업적 농업을 경영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지역기반 프로그램은 정부
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부조화로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토지 재분배에
대한 정부 주도 및 시장 주도 접근 방식의 가장 비효율적인 측면은 농업
구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규모 농업 자본을 개혁하기보다는 기
존의 농업 구조와 토지 정책들을 단순히 결합하려고만 했다는 점이다. 최
근 발표된 사전토지취득전략 프로그램도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
하기보다는, 수혜자들에게 완전한 소유권을 주는 대신 이들에게 단기 토
지 임차를 허용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3. 토지 반환 및 보상 정책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는 1994년의 토지권리반환법 제22조에 기초한


다. 2000년대 후반까지 7만 9,000건의 반환 및 보상 청구건 중에서 6만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51


표 6-4. 주별 토지 반환 청구 건수

연번 주 이름 청구 건수 연번 주 이름 청구 건수
1 크와줄루-나탈 1,740 6 노던케이프 218
2 음푸말랑가 851 7 노스웨스트 215
3 림포포 674 8 자유 주 97
4 웨스턴케이프 599 9 하우텡 0
5 이스턴케이프 555 합계 4,949
자료: CRLR(2008), p. 12.

2,000건이 해결되었다. 토지 반환 및 보상에 대해 청구할 수 있는 마감


기한은 계속 재조정되어 1998년 12월 31일까지에서 2012년 3월 31일까
지로 연장되었다(DLA 2009, p. 6).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 접근
방식’에 따라 백인 농민들은 1헥타르당 매우 높은 가격을 요구했다. 일반
적으로 1헥타르당 평균 토지 매매가는 1,000~4,000랜드이나, 어떤 백인
농민들은 1헥타르당 2만 3,000랜드가량의 지나치게 높은 토지 매매가를
요구했다. 대표적으로 트란스발농업연맹(Transvaal Agricultural Union)
은 백인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수호하기 위한 단체로서, 남아공 정부
의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 정책에 맞서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자들에게 현금 보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특히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청
구자들 현금 보상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토지청구
위원회는 이러한 현금 보상을 토지 문제의 근원적 문제를 미봉책으로 매
듭지으려는 방식으로 인식하여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토지 재분배의 경
우와 마찬가지로,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에 대한 ‘시장 지향적 접근
(market-oriented approach)’ 또는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 접근
방식에 따라 흑인들에게 제공되는 농지는 활용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평

15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가되었다(Mbeki 2001).
즉, 대부분의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에 대한 문제 해결은 현금 보상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실질적으로 토지 반환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
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토지는 소수의 흑인들에게만 반환되었는데, 이들
토지의 상당 부분은 반건조 지역에 해당하는 북서부 지방과 크루거국립
공원(Kruger National Park) 등에 위치해 있다. 이들 지역의 대부분은 농
지의 투자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개발이 제한된 곳이다.

가. 후속정착지원(Post-Settlement Support)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자들이 혜택을 받은 후, 그에 대한 후속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토지청구위원회가 우려하고 있는
쟁점이다. 사실 남아공 정부는 시장주의적 접근 방식 및 ‘자발적 구매자,
자발적 판매자’ 접근 방식을 토지 반환 및 보상 정책을 포함한 토지 개혁
을 더디게 하는 주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벤 카즌스 교수에 따
르면, 사실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자들에게 토지
반환 및 보상을 제공한 이후의 지속적인 정착 지원이다(Kahn 2007, p. 12).
더욱이 2008년 말이 되면 토지청구위원회의 위임 권한이 종료되는 상
황에서, 2012년 이후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자들의 후속정착지원에 관한
이슈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DLA
2009). 예컨대 1913년 원주민토지법 제정 후, 음둘리(Mdluli) 흑인 가족
에게 속했던 토지가 할(Hall) 백인 가족에게 강제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음둘리 가족은 자신들의 소유였던 토지에서 토지 소유주로서가 아니라
고용된 노동자로서 농장에 거주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2004년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53


정부는 할 가족과 선스(Sons) 가족으로부터 6,000헥타르의 땅을 7,100랜
드에 구입했다. 이로써 대략 2,000명의 음둘리 가족 공동체는 반환된 토
지를 재소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가족 구성원에게 제공된 것은 후속
지원정책의 시행 없이, 정부가 단지 7,100랜드에 구입하여 반환한 토지가
전부였다. 이러한 사례는 음둘리 가족 공동체를 비롯하여 수많은 공동체
에서 발견된다(Tau 2004).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속정착지원에 대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노던케
이프 주의 리엠파스막크(Riemvasmaak) 공동체가 종종 회자된다. 남아공
정부는 이 공동체가 토지를 반환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1995년
남아공 정부는 이 공동체 주민들 중 2,340명에게 이전에 ‘남아공 방위군
(South African Defence Force)’이 사용하던 7만 4,000헥타르의 토지를
반환하도록 했다. 반환 조치가 이루어진 후, 리엠파스막크 시정부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용이하도록 이 공동체 마을에게 시급한 개발 문제들을 하
나씩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예컨대 식수 문제와 전력 문제를 비롯하여 이 공동체 주민들의 소득
증대와 고용 창출을 위해―특히 포도 농장과 관광업을 활성화시키기 위
해― 정부의 주요 부처인 환경․관광부(Department of Environmental
Affairs and Tourism)에 지원을 요청했고 350만 랜드의 지원을 받아 관광
산업에 투자했다(Samaai 2005, pp. 3-18). 이러한 후속정착지원이 이루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이 지역의 빈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의 시도는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해 볼 수 있
는 아이디어와 교훈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154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나. 전략적 협력(Strategic Partnerships) 모색

남아공 토지문제부와 토지권리보상위원회는 이러한 후속정착지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자들이 농업 생산에 필요한 기
술과 자원을 획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
다. 예컨대 2001년 남아공 정부는 림포포(Limpopo) 주에서 전략적 협력
을 고안했다. 이것은 상업 회사와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자들이 속한 마
을 공동체가 공동으로 합작 회사(joint venture)를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
하는 방안이다. 이러한 시도가 꾸준히 지속되면서 2005년 이후 전략적 협
력은 토지 반환 및 보상 정책의 핵심적인 규범으로 자리를 잡아갔으며,
특히 림포포 주와 음푸말랑가 주에서 공동 합작 회사의 설립을 통해 토지
반환 및 보상 정책의 후속정착지원이 이루어졌다(Lahiff et al. 2012).
이 전략적 협력하에서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자들로 구성된 법적 단
체인 공동재산협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구매하여
소유권을 이전하게 된다. 토지 소유권을 이전한 후, 해당 마을 공동체를
대표하는 공동재산협회는 단일 또는 복수의 전략적 파트너를 선별하여
공동 합작 회사를 설립한다. 이 합작 회사의 실질적 경영 방식은 공동재
산협회와 전략적 파트너인 상업 회사가 각각 50%의 소유권 지분을 가지
고 운영되며, 이러한 소유권 지분에 따라 합작 회사에서 창출한 이익이
배당된다. 이러한 회사 경영 기제를 통해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자들로
구성된 공동재산협회가 갖게 되는 긍정적인 잠재력은 자신들이 속한 마을
공동체에 고용을 창출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상업적 영농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게 해 주는 주요한 통로가 된다는 점이다(Lahiff et al. 2012, pp. 9-10).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 협력은 실제로는 이제까지 큰 실효를 거두지 못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55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예컨대 림포포 주의 레부부(Levubu) 마을과
음푸말랑가 지역의 몰레텔레(Moletele) 마을이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될
수 있다. 남아공 정부는 7개 종족 집단으로 구성된 레부부 마을의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자들에게 대규모의 토지를 반환 및 보상해주고, 후속정
착지원을 위해 전략적 협력을 모색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 합작 회사 설립을 통한 전략적 협력은 상업적 농
장의 생산 능력이 소모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기대했던 일자리는 창출되
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은 정부 보조금이 방만하게 지출된
만큼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적합한 전략적
파트너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데 기
인한다. 또한 정부 보조금이 시간에 맞춰 제때 지급되지 못하고 상당히
시간이 지연된 후 지급되어 공동 합자회사의 채무액이 누적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이러한 회사 운영을 관리․감독하지 못한 정부 기관이 무
엇보다도 가장 주요한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Lahiff et al. 2012,
pp. 15-19, 32-33).
한편 음푸말랑가 주의 몰레텔레 마을은 2012년 현재까지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권 중 단지 10분의 1만이 실질적으로 이행된 지역이다. 이 마을
은 정부 보조금이 방만하게 지급되었던 레부부 마을 공동체와는 달리, 단
한 번도 정부 보조금이 제공되지 않았다. 이로써 공동재산협회와 상업 회
사가 정부 지원하에 실행하는 전략적 협력은 실질적으로 효과를 보지 못
했다. 그 주된 원인은 정부가 이 마을 공동체에 속한 공동재산협회 구성
원들보다 상업 회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치우쳐 있고, 이를 재조정하
는 데 있어서 이 지역의 마을 공동체의 추장과 같은 지도자가 효과적으로

15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사실 음푸말랑가 주의 경우
몰레텔레를 포함한 상당수의 지역은 전통적으로 백인 지주들이 경영해온
비옥한 토지를 수호하고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형성된
트란스발농업연맹의 저항으로 인해 남아공 정부가 대체로 미온적인 조치
만을 취한 곳이다((Lahiff et al. 2012, pp. 34-49).

다. 후속지원정책과 원주민법의 법적 지위 부여

위에서 언급했듯이 토지 반환 및 보상 정책은 토지의 직접적인 반환


또는 금전적인 보상과 함께 후속지원정책을 통해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이외에도 수량적으로 계산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 이는 재정적 지원과 함께 수반되어야 할 ‘감정적’ 또는 ‘정서
적’ 비용 지출에 대한 사안이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단순히 상당한 비용
을 들여 청구자들에게 토지 반환 및 보상을 시행하는데, 이때 청구자들의
감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노던케이프 주의 리흐테르스벨트(Richtersveld) 공동체는 과거
부터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어 광산업이 번성했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의 흑인 거주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했던 8만 5,000헥타르의 토지를
강탈당했다. 토지 강탈로 인한 흑인 거주자들의 애환은 헌법재판소
(Constitutional Court)를 통해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에
서는 이들 원주민이 자신들의 종족어로 고통과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기
회를 제공하였고, 이를 통역자가 통․번역하여 기록하도록 하였다. 사실
토지 강탈 이후, 이 흑인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소유했던 토지에서
쫓겨나 남성은 다이아몬드 광산의 노동자로, 여성은 백인의 가정부로 전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57


락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토지 반
환 및 보상 청구자들의 감성적 치유는 단순히 일회성 재정적 지원으로 충
분히 해소될 가능성이 매우 낮아, 지속적인 사후 관리가 절실히 요구되는
사안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토지 없는 사람들의 운동(Landless
People’s Movement)’이라는 흑인 단체는 토지 반환 및 보상 정책이 역사적․
감성적 비용을 고려한 후속지원정책과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veringham and Jannecke 2006, pp. 557-559; Kahn 2007, pp. 13-14).
한편 위에서 언급했듯이 7년이 지난 후, 2003년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리흐테르스벨트 흑인 공동체에게 흑인 원주민 토지 소유권을 회복시켜
줌으로써, 서구의 보통법 체계(common law system)와 대등하게 원주민
법 체계(indigenous law system)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동안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를 통해 원주민법 체계는 서구의 보통법 체계보다 열등한
것으로 무시되어왔으나 리흐테르스벨트의 토지 반환 및 보상 청구 심의
와 재판 결과를 통해, 남아공 흑인 원주민법 체계의 지위가 회복되는 계
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남아공 최상위 법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원주민법 체계를 기존의 보통법 체계와 동등한 법적 지위로 인정했더라
도 현재 남아공의 법률적 담론은 여전히 서구의 법 관념에 묶여 있고 원
주민법 체계의 사용에 상당한 개념적 장애가 존재하여 기존의 서구 법체
계는 여전히 지속 및 강화되고 있다(Kahn 2007, pp. 14-15). 따라서 보다
심도 있고 내실 있는 토지 반환 및 보상 정책의 시행을 위해서는 장기적
으로 남아공 법 문화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야할 것으로 평가된다.

158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라. 토지수용법(Expropriation Act)과 토지 수용에 대한
보상

토지수용법은 1975년 6월 20일 제정되어 1977년 1월 1일부터 시행되


었다. 이 법률을 개정하기 위해 개정 법률안이 2008년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2012년 현재까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이다. 토지 수용에 관한 주무 부처는 공공사업부(Department of
Public Works)이다. 공공사업부 장관은 공공의 목적으로 토지를 수용할
권한을 갖고 있다.36) 지방자치단체 또한 토지를 수용하거나 임시로 토지
사용 권한을 가질 수 있는데, 이러한 권한을 행사할 때는 반드시 토지수
용법이 제시한 규정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토지수용법 제2조 및 제5조).
토지 수용이 결정되면 해당 주무 장관은 해당 토지의 영구 수용(收用)
또는 일시 사용의 여부에 대해 토지 수용 통지서를 해당 토지 소유자에게
발송해야 한다. 수용할 토지의 소유권은 토지 수용일자로 소유권이 국가

36) 토지 수용 문제와 관련하여 벤 카즌스 교수 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정부는 공공


의 목적을 위해 토지를 획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공항이나 학교, 병원 등의 설
립을 위해 사유지를 수용할 수 있다. 남아공 헌법에 명시된 재산권 관련 조항에도 공공
의 이익을 위한 토지 수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조항 안에는 토지 개혁에 관한 내용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공공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토지 개혁을 위해서는 정부가
개별 수혜자에게 토지를 분배하기 위해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재산권 조항에
따르면 수용된 토지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토지 관
련 정보와 토지가 어떻게 획득되는지, 정부 보조금과 현재 임차에 대한 사항을 고려하
여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헌법에 따르면 정부는 토지 개혁을 위하여 토지를 수용하고,
앞서 언급된 사항들을 고려하여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토지를 살 수 있다. 아프
리카민족회의는 토지 개혁을 위해 토지를 수용하고, 보상이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
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토지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참여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우
려했기 때문이다. 공공의 목적에 기초한 토지수용은 교육과 같은 좀 더 포괄적인 분야
에 대한 접근이다. 반면 공공의 이익은 반드시 공공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것
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토지 개혁을 위해서 행하는 토지 수용은 공공의 이익인 것이다.”
(2012년 7월 24일 면담 내용 중에서)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59


에 귀속되며, 토지에 부속된 저당권 등 모든 물권은 취소된다(토지수용법
제7조). 토지 수용에 대해 토지 소유자는 60일 이내에 주무 장관에게 서
면으로 토지 보상 금액을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와, 보상 금액을 수
락하지 않을 경우 토지 소유자가 요청하는 보상 금액과 보상 금액 산정
근거를 상세히 기술하여 제출해야 한다. 주무 장관은 토지 소유권자에게
60일 이내에 소유권 권리증서의 양도를 명할 수 있으며, 소유권 권리증서
가 제3자에게 있는 경우 해당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토지수용법 제9조).
토지 수용 대상이 된 토지 소유자가 공공사업부에 요구하는 보상 금액
에 대해 통보하지 않았거나, 토지 소유자가 법이 요청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주무 장관은 임의로 토지 보상액을 산정하여 통보할 수 있다.
또한 토지 소유자가 요구하는 금액에 대해 주무 장관은 조정된 금액과 그
근거를 다시 토지 소유자에게 통보할 수 있으며, 토지 소유자가 해당 금
액에 대해 법원에 제소하지 않는 경우, 이를 수용한 것으로 인정한다. 통
상적으로 토지 보상에 대해 국가와 토지 소유자가 합의할 수 없을 경우,
고등 법원이나 중재를 통해 보상 금액이 결정된다(토지수용법 제10조).
실질적으로 토지를 점유하지 않았을지라도, 토지 보상금은 토지 수용
일자에 최소 80%가 지불되어야 있다. 보상 금액의 산정은 원칙적으로 남
아공 현지 부동산에서 책정하는 토지 수용 당시 토지의 시장 가격과 토지
수용으로 인해 입게 되는 실제적 경제 손실액에 대한 총액으로 산정하게
된다(토지수용법 제11조).
위에서 언급했듯이 토지수용법에 대한 개정 법률안은 2008년 이후부
터 2012년 현재까지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현
행 토지수용법은 토지 수용의 요건으로 반드시 공공의 목적인 경우에만

16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토지 수용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공익의 경우는 허용하고 있지 않
다. 그러나 개정 법률안은 공익의 경우에도 토지 수용 범위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또한 현행 토지수용법은 국가 소유의 광물 자원이나 수
자원 수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부분에 대한 개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
리고 토지 수용 절차를 보다 명료하게 하며, 특히 보상액에 대한 분쟁이
있을 경우 주무 장관의 결정을 법원의 재심의를 통해 확정하는 방안으로
법률 개정안이 제출되었다(서광옥 2012, p. 29).
비록 토지수용법이 남아공 현지인에게는 매우 민감한 사항일지라도,
일반적으로 남아공에 투자하려는 국내외 투자자들에게는 그다지 민감한
사항이 되지 못한다. 이는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토지 수용으로 인
해 그들이 져야 할 리스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아공 정부와
주무 부처 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의 목적에 해당하는 관련 프로
젝트를 시행할 파트너인 투자자 입찰 선정이 결정되면 투자자가 이들 시
공사의 투자 금액에 대해 정부 보증(government guarantee)을 요구할 수
있고, 리스크가 발생할 시 투자 금액에 대한 환수 조치 등 제도적 안전장
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서광옥 2012, p. 30).

4. 토지 보유 조건 개혁

일반적으로 많은 분석가들에 따르면 개인의 사유 재산권을 보장하는


근대 서구 체계와 달리, 아프리카를 포함한 비서구권 국가(소위 前자본주
의 사회)의 사유 재산권은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으며, 공동체 사회
에서 규제를 받는다(Hann 1998, 재인용: Cousins 2010). 그러므로 재산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61


권의 개념은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근대 서구법에서 유래
된 재산권의 개념 역시 아프리카 토지 권리의 맥락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토지 보유 체제의 주요 특색은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Cousins 2010, p. 61).

ⅰ) 아프리카인의 토지 권리는 가족과 친족 연망을 포함하는 다


양한 사화관계나 사회 단위에 뿌리박혀 있다.
ⅱ) 토지 권리는 한 개인이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짐으로
써 주어지며, 그는 토지에 대해 보위권만 갖게 된다.
ⅲ) 토지에 대한 사회․정치적 및 자원의 사용 경계는 대체로
명확하지만, 종종 유동적이고 협상이 가능하다. 그리고 때
로는 이런 경계가 긴장과 갈등의 원천이 된다. 토지 권리와
권위 체계는 정치적으로 뿌리박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
력관계와 정치 과정은 종종 권리와 이익의 분배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2004년 공동체토지권리법이 발표되면서 공동체 지역과 관련하여 그곳


에 거주하는 약 2,000만 명의 남아공 흑인들은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이 법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ⅰ) 토지 권한을 국가로부터 홈랜드 및 공동 거주지에 살고 있


는 전통적 공동체로 이전.
ⅱ) ‘공동 소유’ 지역 안에서 개인의 토지 권리를 각각 등록. 특히
남성뿐만 아니라 배우자인 여성의 이름도 공동으로 등록.
ⅲ) 전통적 협의회를 토지의 관리자 또는 주인으로서 ‘공동체’
를 대표하게 함.

16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표 6-5. 토지 보유 조건 개혁(2008년 3월~2009년 3월)

주 이름 헥타르 프로젝트 수 수혜자 수


LRAD/ 농장
LRAD/ SLAG PLAS 합계 PLAS 합계 개인 여성 청년 장애인
SLAG 노동자
이스턴
14,919.4292 32,603.5142 47,522.9434 26 33 59 772 195 59 153 2
케이프
자유 주 8,727.3543 55,514.9262 64,242.2805 25 73 98 144 53 42 40 0
하우텡 0.0000 2,554.5806 2,554.5806 0 16 16 44 28 0 9 0
크와줄루
59,528.4999 6,010.7311 65,539.2310 95 20 115 9,449 2,279 258 1,755 91
-나탈
림포포 12,208.1997 2,392.3794 14,600.5791 70 3 73 550 293 164 215 6
음푸말랑가 15,246.8130 37,025.8538 52,272.6668 17 48 65 1,177 402 0 446 0
노던케이프 81,114.9034 44,247.6487 125,362.5521 17 8 25 364 48 232 46 1
노스웨스트 6,231.7997 46,636.5600 52,868.3597 14 16 30 238 35 1 27 0
웨스턴
18,637.2954 0.0000 18,637.2954 19 0 19 1,719 578 993 0 563
케이프
합 계 216,614.2946 226,986.1940 443,600.4886 283 217 501 14,457 3,911 1,749 2,691 663
자료: DLA(2009), p. 34.

공동체토지권리법이 가져온 가장 큰 효과는 토지 소유권 등록에 있어


서 남성과 동등하게 배우자인 여성의 이름을 공동으로 등록시킨 점이다.
이것은 여성에게도 토지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여성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 법률의 의회 진행 과정에서는 토지와 관련된 전통적
당국들의 힘과 역할이 중시되었다.
2004년의 ‘공동체토지권리법’과 2003년의 ‘전통적 리더십․거버넌스
체제법(TLGFA: Traditional Leadership and Governance Framework
Act)’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상호 연계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다(Murray
2004, 재인용: Cousins 2010, p.60). Cousins(2010)의 분석에 따르면, 이
들 두 가지 토지 관련 법령은 특히 공동 토지 보유 조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63


가. 점유권과 토지 사용권리

공동체토지권리법은 토지 소유권의 명의를 국가에서 ‘공동체’로 변경


하였다. 이것은 ‘구 명령권(old order rights)’을 고수하고 있는 백인 농장
소유주들에게 공동체토지권리증서(Deeds of Communal Land Rights)에
서 제시된 ‘신 명령권(new order rights)’을 발표하여, 토지에 대한 공동체
와 개인의 권리와 의무의 ‘상대적 균형’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그
러나 공동체토지권리법은 신 명령권의 합법적인 지위나 내용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공동체토지권리법’과 ‘전통적 리더십․거버넌스체제법’은 공동체 지
역에서 힘의 균형을 개인이나 특정 가족들로부터 집단 혹은 추장 그리고
여러 공직자들의 자문을 받는 토지문제부 장관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아
프리카인의 토지 윤리(African land ethic)’와 규범, 공동 보유 체계의 근
간이 되는 기본 원칙 및 가치들과 대립한다(Cross 1992; Okoth-Ogendo
1989). 또한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 기존의 토지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이 권리는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나. 토지에 대한 여성의 권리

여성의 토지 권리는 초기 식민지 시대에 ‘관습법’ 조항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기록되었을 때 재정립되었다. 그리고 대다수 여성의 토지 권리
에 대한 조항은 결혼한 남성에게 종속되어왔다. 남아공의 토지 보유법과
정책들도 양성 불평등의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의 토지 점유권과 사용권
은 ‘제2의’ 지위로 전략했다. 공동체 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여성은 토지

16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보유 조건의 불안정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
특히 이혼녀와 과부들은 전 남편이나 남자 친척들에 의해 강제 퇴거
당했다. 공동체토지권리법의 법령 18(4)는 남성에게만 있던 부동산에 대
한 권리를 여성에게도 부여했다. 법령 4(2)는 여성이 결혼을 하게 되면
모든 배우자와 그들의 이름을 같이 등록하도록 명시했다. 법령 4(3)은 여
성도 남성과 같은 보유권을 갖게 되며, 어떠한 법과 규정의 시행에서도
차별을 받지 않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4개의 도시 공동체 대표자들은 법정에서 2006년에 시행된 남
아공헌법권리장전(The Bill of Rights in South Africa’s Constitution)
25(6)의 일부인 공동체토지권리법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그들은 이 법이
많은 도시 사람들의 토지 권리를 확보해주기보다는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동체토지권리법에 명시된 토지 등록 절차에 의하면, 배
우자가 없는 여성, 즉 과부나 미혼모는 가족을 통해서만 토지 등록이 가
능하며 이를 통해 보유권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 대표자들은 이 법안
이 과부나 미혼모의 토지 보유권의 보장을 더 어렵게 만들며, 이전보다
더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시킨다고 주장했다. 2009년 10월 하우텡북부고
등법원(North Gauteng High Court)은 공동체토지권리법의 핵심 조항들
중에서 헌법에 위배되고 효력 없는 항목들의 정정을 요구했다.
이후에 여성과 공동체 지역에 관련해서는 2008년 전통법정법안
(Traditional Courts Bill)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이 법안의 목적은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전통적 리더십․거버넌스체제법’의 제정으로 예견된
족장들의 역할과 기능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Kleninbooi 2010).
아래의 인용문은 벤 카즌스 교수와의 면담 내용 중 토지 보유 조건 개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65


혁에 관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공동체토지권리법과 ‘전통적 리더
십․거버넌스체제법’ 제정 이후의 주된 변화 및 지난 몇 년간 자신이 여
러 지역을 비교 연구하여 얻은 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2003년 ‘전통적 리더십․거버넌스체제법’의 통과는 부족장들에


게 많은 권력을 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지금 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몇몇 지역에서 정당성을 갖고 일하
고 있다. 그들 모두가 부패하지는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통적
지도자가 착취하고 지배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지역에 따라
다르며, 보편화시키기는 어렵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종종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크와줄루-나탈
지역을 살펴보면, 그 지역은 5만~6만 명의 큰 부족 공동체로 형성
되었다. 전통적 의회의 족장은 토지와 관련하여 큰 역할을 하고 있
지 않았다. 전통적 지도자들은 체제의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체제는 분권화가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통적
지도자들은 지역민의 요구에 매우 잘 대응했다. 그들은 지역민 위
에 군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연구 지역에서 두 가지의
사례를 보았다. 하나는 전통적 지도자가 부정부패를 야기하는 지
역이었고, 반면 다른 지역은 이 법의 통과 후에 변화하는 마을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 지역에서는 소수의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전통 사회로 회귀하려 하고, 여성들에게 토지의 동등한 권리를 주
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여성들이 동등한 토지 권리를
갖게 되었으며, 민주적 체계의 필수적인 요소를 적용하여 변화했
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매우 흥미로웠다. (2012년 7월 25일 면담

16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내용 중에서) 2011년 남아공 정부가 발표한 󰡔토지개혁청서󰡕에 따
르면, 토지 보유 조건의 틀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 형태의 토지
보유 체계’―즉, 국유지와 공유지, 사유지, 외국인 소유지, 공동체
토지―로 구분된다(DRDLR 2011).

ⅰ) 국유지와 공유지: 차지권


ⅱ) 개인 소유의 토지: 한정된 범위의 자유 보유권
ⅲ) 외국인의 토지 소유: 자유 보유권. 그러나 불안정한 보유 기
간과 의무와 조건을 따라야 하는 규칙을 가짐
ⅳ) 공동 소유 토지: 제도화된 사용 권리를 가진 공동 보유권

그러나 네 가지 형태의 토지 보유 체계 중 공동체 토지 보유 조건은


논의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법령의 이행에 따르는 요구 사항이 복잡하며,
최근에는 공동체토지권리법의 무효화 등의 논란이 일고 있다. 자유 보유
권 및 차지권과 관련하여 최근 남아공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토지 보유 조건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효과적인 토지 사용을 가능
케 하고, 동시에 불평등과 불균등한 기회를 근절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토지 소유권과 토지 사용권의 개념은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
모두가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반면 이 정책의 목적은
토지에 대한 자유 보유권을 시민권자로부터 약탈하는 데 있지 않다
(DRDLR 2012).

제6장 2000년 이후의 토지 정책 ❙167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제7장
요약 및 결론
“우리,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토지에 굶주린 채 남아공에서
소외되어온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요구를 선언하는
바이다. 우리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쓰디쓴 맛을 견뎌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우리 고향을 빼앗긴 채 강제 추방당
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농촌의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농장에서 탄압을 받고 반투스탄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
이다. … 도시 외곽과 작은 타운, 농촌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굶주
리고 고통 받고 있는 우리는 도시에서 부(富)가 축적되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 1994년 지역토지회의에서 채택된 ‘토지헌장(Land Charter)’ 중에서 -

“내 토지는 토지일 뿐만 아니라 나의 삶 그 자체이다.”


- 2005년 󰡔농민 주간지(Farmer’s Weekly)󰡕의 유럽인 이주 농민의 글 중에서 -

2004년 남아공 총선 이후 아프리카민족회의 정부는 향후 5년 안에 “토


지 재분배 프로그램을 완성하고 … 2014년까지 급진적인 토지 개혁을 통
해 농경지의 40%가량을 재분배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아
프리카민족회의 정부의 공언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아프리카
민족회의 정부가 남아공의 토지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분배와
재분배의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에 의존하고 있는 아프리
카너와 반투인은 토지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지 않고 생존
의 근거로 여기고 있다. 남아공 정부도 짐바브웨의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
기 위해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토지 수용을 자제하고 있는
탓에 남아공의 토지 문제는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토지는 인간의 사고와 인간사(human affairs)에 지대한 영

17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향을 미친다. 특정 민족 집단의 구성원들은 오랜 기간 동안 동일 거주지
에서 함께 살아온 까닭에, 그들 나름의 독특한 영토 의식(territorial con-
sciousness)을 가지게 된다(Andrey 1977[1966], p. 252). 그리고 이 영토
의식은 그 구성원들의 삶 속에서 생성되는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래서 토지에 대한 그 민족 집단의 애착은 구성원들에게 종종 설명할 수
없는 힘(unfathomable force)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대개의 다민족 사회
는 토지, 토지 권리, 불공평한 토지 분배 등을 둘러싼 갈등―때론 시민전
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남아공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본 연구의 목적은 17세기 중반 남아공에서 아프리카인과 백인 정착민
이 접촉한 이래 뜨거운 쟁점이 되어온 토지 문제의 복잡성과 함의를 역사
적․사회경제적 맥락에서 고찰하는 데 있었다. 기본적으로 본 연구는 남
아공 토지 관련 역사를 통사론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에 앞서 먼저,
남아공 사람들의 토지에 대한 인식 및 이용 관행을 살펴보았다. 둘째, 식
민지 시대 이전의 토지 보유 체계 및 17세기 중반 이후 유럽인 정착민의
토지 수탈 과정을 고찰하였다. 셋째,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여러 부정적
측면을 토지 관련 정책의 맥락에서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아파르트헤
이트 정책이 폐지된 뒤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주도하는 흑인 정권이 들어
선 199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남아공 토지 정책에 대해 살펴보았다.
토지에 대한 남아공 반투인의 태도는 오랜 역사와 사회관계를 통해 몸
속에 각인되어 온 DNA와 같은 것이다. 달리 말해 반투인의 토지 관계는
가족, 친족, 마을 공동체 등 다양한 층위의 사회 집단과 그 구성원들이
맺고 있는 사회관계를 통해 굳어져왔다. 남아공의 토지 문제는 보유권의
행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남아공의 토지는 관습적으로 ‘다중의 보

제7장 요약 및 결론 ❙171
유권’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37) 이것은 특정 토지의 ‘법적’ 보유권자
가 없는 상태에서 두 명 이상이 보유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러한 토지 보유 체계에서는 추장이나 전통적 지도자와 실제 토지 점유자
가 공동으로 보유권을 가지게 된다. 또한 남아공 반투 사회의 토지 관계
는 마을 공동체와 집안 내부의 권력관계를 담고 있다. 관습적으로 남아공
의 토지 관계는 젠더와 세대를 비롯한 다른 사회적 위계질서를 반영한다.
식민지 시기 이전의 남아공에서 반투인은 대체로 수렵-채집, 목축, 농
경-목축 혼합 경제를 통해 삶을 영위했다. 그 당시 토지 보유 체계는 공동
체 구성원들에게 토지를 비롯한 모든 천연자원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권
을 허용했다. 상이한 생계 방식을 가진 집단들 간에는 인적․물적 교류도
빈번했다. 그러나 유럽인이 남아공에 도래한 이후 토착적 토지 보유 체계
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반투인에 대한 백인의 정복 과
정에서 비롯되었다.
17세기 이후 남아공은 소수의 백인 정착민과 영국 제국주의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으며, 이들이 기획하고 추진한 토지 정책에 대부분의 아프
리카인이 끌려다니게 되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인은 소수의 백인 정착민

37) 남아공의 토지 관행은 17세기 유럽인 정착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성문화된 ‘사적 보유
권’과 함께 반투인이 대대로 유지해온 관습법에 근거한 ‘다중적 보유권’으로 구분된다.
17세기 이후 남아공에서 시작된 유럽인 정착민과 반투인과의 토지 쟁탈전이 대부분 유
럽인 정착민의 승리로 끝나면서 이들이 점유한 토지에 대해서는 성문화된 ‘사적 보유
권’이 도입되었다. 그 반면에 여전히 반투인이 토지를 보유하고 있던 지역은 오랜 관습
에 따라 왕과 추장을 대표로 하는 권력 계층이 토지를 포괄적으로 보유하는 상황이 지
속되었다. 지역 주민들은 이들로부터 토지를 분양 받아 사용하면서 실질적인 ‘토지 보
유자’가 된다. 즉, 반투 사회의 토지 보유는 권력 계층의 ‘포괄적 보유권’과 지역민의
‘실질적 보유권’이 공존하는 ‘다중적 보유권’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관습법에 근거
한 토지 보유 체계이다. 이런 관행은 현대 남아공 사회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므로,
남아공의 토지 문제에 접근할 때 반드시 인식해야 할 문제이다.

17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에 의한 토지 강탈의 역사를 경험했으며, 자신들이 대대로 경작해 왔던
농지의 대부분을 빼앗기게 되었다(Rugege 2004, p. 1). 흑인은 토지 강탈
에 저항했으나 우월한 무력을 갖춘 영국 제국과 백인 정착민에 대항할 만
큼의 힘이 없었다. 이렇듯 토지와 관련된 남아공의 역사는 백인 정착민에
의한 지배와 착취로 얼룩져 있다. 이것은 남아공에서 토지 문제의 중심에
는 식민지 정복과 토지 강탈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Ntsebeza 2007, p. 13).
네덜란드계 백인 정착민인 아프리카너 집단이 남아공의 패권을 장악한
1950년대 이후 남아공은 제도적으로 토지의 사적 보유권을 도입했다. 이
는 관습에 기초한 반투 사회의 토지에 대한 인식과 충돌하면서 반투인과
토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Coles 1993, p. 757). 그러한 변화
는 대개의 남아공 농민들에게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아파르트헤이
트 정책은 남아공 반투인의 토지를 강탈하기 위해서 독소 조항을 담은 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남아공 반투인은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쫓겨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지정한 보호구역(Bantustan)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남아공 전체 면적의 70% 이상을 전체 인
구의 15% 안팎이었던 백인 정착민이 차지하는 기형적 토지 점유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남아공 토지 문제의 출발점이고, 현재까지도 풀지 못
한 숙제로 남아 있다.
1990년대 초반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후 남아공은 시장 주도적인
토지 개혁 프로그램을 가동시켜왔다. 이 프로그램들은 기존의 속박
(constraints)에 대해 조치를 취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야심적이며, 대중적
수요와 요구에 대해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적절한 것으로 판단

제7장 요약 및 결론 ❙173
된다(Walker 1998, p. 2). 그래서 일견 이 프로그램들의 목적은 확실히
인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은 총체적으로 왜곡된 토지 분배
체계의 부당함을 바로잡고 빈곤을 감소시키며 지속 가능한 토지 이용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 토지 보유 형태를 확립하고자 했
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에 등장한 여러 정부들은 남아공의
전통적 토지 체계의 유산을 장려하거나 보호하려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왔다. 그 결과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의 토지 개혁 정책들은 실패, 양면성, 모호함, 딜레마, 모순 등의
단어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남아공이 식민지 지배를 통해 형성
된 사회질서를 청산하지 못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러면 오늘날 남아공에서 토지 개혁은 얼마나 중요하고 왜 중요한가?
혹은 21세기를 사는 남아공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
는가? 상당한 비율(약 45%)의 남아공 사람들은 여전히 농촌 지역이나 도
시 주변 지역에 살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 관습적, 부족적 혹은 공동체적
보유 등으로 알려진 토지 보유 체계하에서 살고 있다(Cousins and Hornby
2009, p. 3). 탈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공은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하
고 있다. 그러나 타운이나 도시로 이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
에 있는 가족들과 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도시와 농촌 간 교류가 단절된 경제활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토지에 기반한 생계는 농촌과 도시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
요하다. 높은 실업률과 불안정한 도시 수입을 보완하기 위해 그들은 천연
자원을 통해 식량, 주거지 및 수입의 원천을 확보하고 소규모 농업이나

174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물론 이러한 기여의 중요성은 개인, 가구 및 공동
체에게 아주 다양하다. 이러한 원천이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생계의 구성
요소에 긴요하다는 사실은 그것이 빈곤 감소를 목적으로 하는 각종 정책
과 프로그램에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지 및 천연자원과 관련된 토
지 보유 문제는 탈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공이 직면한 핵심적 문제
중의 하나이다.
다른 한편, 때때로 잠재적이기도 하던 토지 개혁이 현재는 더욱 두드러
지고 있다. 과거와 미래에 관한 국가적 논쟁에서 토지 개혁은 항상 정서
적이고 상징적인 측면을 지닌다(Walker 2004, p. 1). 즉, 지역 수준에서
토지 개혁은 주변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강하게 공명(共鳴)한다. 지역
수준의 수정 보완에 대한 논의가 특정 토지에 대한 경쟁적 요구의 형태로
복잡성을 포함할지라도 이는 부정할 수 없다.
유사한 맥락에서 토착적 토지 체계를 보존하려는 프로그램과 정책의
주창자들은 이 체계가 순수하게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생
태학적․문화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해 왔다(Coles 1993, p. 758). 따라
서 정부는 토지 정책을 숙고하는 과정에서 토착적 토지 체계와 관련된 경
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적 가
치가 그러한 공동체 체계와 관련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몇몇 공동체적 토
지 소유 체계는 남아공―주로 흑인 홈랜드 내―에서 존속하고 있기 때문
이다. 또한 공동체적 토지 소유가 남아공 비백인의 문화적 선호와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미래의 법과 정부 정책하에 보호될 수 있다면 정부는 그
체계가 생계 목적을 위해 농민들에게 충분한 토지 접근권을 실제로 제공
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게다가 미래의 정부 정책은 해당 공동체와 개인

제7장 요약 및 결론 ❙175
에게 선택의 융통성과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남아공에서 토지 개혁의 주된 목적
은 토지 권리의 공정하고 정당한 변화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이 목적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차원을 지닌다(Thwala 2006, p. 72; Bob 1999;
Jacobs 2001, 2004; Mayeza 2006; Meer ed. 1997; UNECA 2003, p. 18;
Walker 2004; Zimmerman 2000). 첫째, 토지 개혁은 토지 소유에서의 총
체적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둘째, 토지 개혁은 역동적 농촌 경
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생계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과거와 현재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주변 집단,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
게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넷째, 농촌 사람들은 토지 개혁 정책
의 입안과 실행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문제는 남아공 사람들, 특히 여전히 대부분의 거대 농장을 보유하고 있
는 아프리카너와 관행에 따른 소규모 농업에 의존해야 하는 반투인은 토
지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자발적 구매자와 자발적 판매자’
라는 원리하에 시행된 정부 정책은 자유 시장의 원칙에 입각해, 토지 문
제를 토지 판매자와 토지 구매자의 자유 의지에 떠넘기려는 의도를 내포
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너와 반투인 모두 농경지를 떠나서 살 수 없
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토지 개혁 문제는 남아공의 잠재적인 분쟁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남
아공 정부는 토지를 강제로 몰수하지 않고 백인 농장주와 가격 협상을 벌
여 원소유주임을 주장하는 흑인 주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아 겨우 4%만이 이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

17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다. 지금 같은 속도로 업무가 처리되면 토지 분쟁이 해결되는 데는 60년
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으로 인해, 남아공 흑인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면
정치 불만으로 표출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1994년 정권 교체 이후 아프리카민족회의
정부는 토지 개혁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토지 재분배를 통해 경제적 평
등을, 토지 반환을 통해 정치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남아공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농경지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인 정착민
의 토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토지를 자신의 삶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의 유럽인 정착민은 토지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섣
불리 토지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38)

38) 현재 남아공에서 상업적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의 수는 5만~6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절대다수는 유럽인 정착민이다. 반면 과거 반투스탄에서 토지를 보유하지 못한 인구는
67만 명에 달한다. 따라서 백인이 소유하고 있는 대농장을 반투 소작농에게 반환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유럽인 정착민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
하고 있다(Walker 2004, p. 6).

제7장 요약 및 결론 ❙177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제8장
남아공 토지 문제 관련 정책적 제언

1. 남아공 토지 관련 아카이브 구축
2. 남아공 토지 관련 전문가 육성 및 네트
워크 구축
3. 남아공 민관과의 ‘지속 가능한 토지 개
발’ 협력 모색
1. 남아공 토지 관련 아카이브 구축

가.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

‘신식민지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 각국이 아프리카의 토지에 관심


을 보이고 있는 지금, 아프리카 토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보
축적은 매우 중요하다. 아프리카인에게 토지는 그들의 역사이자 삶의 한
부분이다. 아프리카의 토지를 연구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인의 역사와 생활
방식 등을 함께 연구해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2,000여 개의 독립된
민족이 다양한 토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토지 관련 연구는 그
만큼 복잡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아프리카 토지 및 천
연자원과 관련된 아카이브(archives)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는 아프리카 토지 관련 아카이브는 물론, 아프리카의 토지
와 관련된 정책보고서나 논문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국외에서 출판되는 각종 보고서와 논문 등을 수집․분류하는 작업을 수
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시각에서 아프리카 토지 문제를 분석하
기 위해서 논문과 보고서 등의 출판을 활성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
프리카 토지 관련 아카이브 구축은 정책 결정자, 기업인, 학자 등 아프리
카에 관심 있는 국내 인력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나. 아카이브 구축 방법

남아공의 토지 관련 아카이브 구축은 2단계로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먼저 1단계는 기초 자료의 축적이다. 남아공 토지 관련 기초 자료는 가공
되지 않은 원천 자료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토지 관련 각종 법규와 토지

18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보유자들의 구술 증언, 토지 전문가 면담 내용, 각종 사진과 동영상 자료
등을 포함한다. 기초 자료는 학술적, 실용적 가치가 무척 높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남아공 정부에서 제정하는 각종 법규는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
이 아프리카에서 토지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
할 것이다.
토지 관련 법규와 함께 중요한 원천 자료는 남아공 토지 관련 전문가
와 토지를 실제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아프리카 토지 관련
문제의 실상을 가장 현장감 있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들의 목소리를 통
해서이다. 특히 남아공 토지 문제의 뜨거운 감자인 아프리카너계 토지 보
유자와 반투계 소작농의 구술 증언은 남아공 토지 문제의 실상을 이해하
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토지를 실제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부 정책의 장단점을 체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원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현장조
사가 필수이다.

글상자 8-1. 1차 자료의 내용

■ 문서 자료: 국가별 토지 관련 각종 법규
■ 사진 자료: 지형, 지물, 유적, 건물, 기타 물증 등
■ 음향 자료: 라디오 방송, 구술 녹취록, 연행 녹취록, 언어 음성 자료, 면담 자료 등
■ 동영상 자료: TV방송, 지역 제작 영상, 연구자 제작 영상 등

아카이브 구축 2단계는 원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각종 보고서와


학술 논문, 단행본 등을 수집하는 것이다. 사실 2단계는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이미 남아공을 포함한 해외의 유력 연구기관 등에서는 남

제8장 남아공 토지 문제 관련 정책적 제언 ❙181


아공 토지와 관련된 각종 보고서와 논문 등이 대량으로 출판․유통되고
있다. 이를 수집․분류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아카이브가 구축될 것으
로 기대한다. 예를 들어 남아공 토지 문제를 분석하는 남아공 내 주요 연
구기관과 유럽 등 서구 연구기관의 분석 내용을 분류함으로써, 토지 문제
와 관련된 이해의 차이점을 살펴볼 수도 있다.

다. 아카이브 활용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목적은 체계적으로 수집된 지식과 정보를 학문


적․실용적으로 소통․확산시키는 데 있다. 아카이브를 통한 토지 정보
의 학문적․사회적 소통과 확산은 남아공 토지 연구의 전문화를 도모하
는 한편,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는 데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아카이브는 ‘개방형’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남아공의 토지 관련
아카이브는 남아공 토지 관련 협력 사업을 기획 중인 기업인 또는 사업
가, 학술적 목적을 가진 학자가 일차 소비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아공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과 학생들도 접근할 것으로 예상되므
로, 아카이브 내용을 공개하는 개방형 체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 남아공 토지 관련 전문가 육성 및 네트워크 구축

국내에 남아공 토지 관련 자료와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유는 토


지 문제에 대한 낮은 관심도와 함께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 부
족에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남아공 토지 관련 전문가를
육성하는 한편,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18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가. 남아공 토지 전문가 양성 사업

전문가 육성을 위해서는 단기적 방법과 장기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단기적 육성 방법은 기존의 정부 산하 기관(예컨대 토지공사나 농촌진흥
청)이나 학계(대학 연구소)에 종사하는 연구자 및 학자를 남아공 토지 관
련 전문가로 육성하는 것이다. 토지와 관련해 방대한 지식과 연구방법론
을 갖고 있는 이들이 남아공 토지의 특성을 파악한다면, 단기간에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연구 인력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 인력 양성 방법은 정부 산하 기관이나 국책 연구소 등에서 이
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시행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즉각적으로 연구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들이
그간 연구해 온 지역을 포기할 만한 강력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는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단기적 방법보다 바람직한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 후속세대를 육
성하는 제도이다. 장기적 인력 육성을 위해서 현재 국내 대학원 수준의
학술기관에서 남아공의 토지 문제를 전공하는 연구 후속세대가 늘어나도
록 제도적 지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아프리카에 대한 사회적 관
심이 늘면서 국내 주요 대학원에서는 아프리카를 연구하고 싶어 하는 대
학원생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이들에게 토지 관련 연구의 중요성과 의
미를 부여하고 물적․제도적 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나. 토지 관련 지역별 전문가 육성

남아공은 아프리카 54개 국가 중의 하나일 뿐이다. 아프리카는 2,000

제8장 남아공 토지 문제 관련 정책적 제언 ❙183


여 민족이 살고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아공 토지 연
구를 심화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전역으로 토지 연구를 확대해 토지 관
련 정보와 지식을 확대하고 심화할 필요가 있다.
일단 남부 아프리카만 해도 다양한 역사적 경험(독일 식민지였던 나미
비아,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앙골라와 모잠비크)과 민족별 토지 운영 관습
이 서로 다르므로 토지 관련 지식과 정보의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남
아공의 토지는 다양한 토지 사용과 토지 보유 방식을 보여 주는 남부 아
프리카의 한 유형일 뿐이다. 이런 지역별 차이점을 인식해 토지와 관련된
지역별 전문가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프리카 토지 연구의 권역 구분은 매우 복잡
하다. 현재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의 토지 보유 체계는 서구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앵글로폰
(Anglophone) 국가들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크폰(Francophone)
국가들,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루소폰(Lusophone) 국가들의 토지 보
유 체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울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도입했던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가 토지 보유 관련 법규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예를 들
어 사회주의 국가였던 에티오피아의 경우, 토지 매매가 불가능하며 중앙
정부에서 99년 임차를 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독립 이후 줄곧 자
본주의 체제를 유지해 온 케냐는 강력한 시장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토지
의 사적 보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아프리카 2,000여 민족은 관습에 기초한 토지 보유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들이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인식하

184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면, 한 국가 안에서 실제로 토지를 보유하고 운영하는 방식이 매우 복잡
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아공의 경우 공식적으로
구분된 민족만 해도 11개가 있다. 이들의 토지 운영은 큰 틀에서는 대동
소이할지 몰라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남
아공 토지 관련 전문가 육성은 이런 다층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 해외 자문단 운영과 아프리카 토지문제연구소(팀) 설립

아프리카 주요 연구기관 및 아프리카 연구에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의 주요 연구기관과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해외 자문단을 운
영하는 것도 전문가 풀(pool)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해외(아프리카 포함)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연구를 진
행하는 방안이 있다. 아프리카 연구의 국제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주요
연구소의 연구 인력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세미나 및 연구 활동은 아프리
카 토지 연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의 연구 환경을 개선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해외 주요 연구소의 유능한 연구인력을 국내
에 초빙하는 방법과 국내 연구 인력을 해외 주요 연구기관에 파견하는 방
법을 모색할 수 있다.
안정적으로 아프리카 토지 관련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
에서 ‘아프리카 토지문제연구소’(가칭) 또는 유관 기관에 ‘아프리카 토지
문제연구팀’을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 연구소 또는 팀이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해외 주요 연구소 및 국내 연구진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아프리카 토지 연구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제8장 남아공 토지 문제 관련 정책적 제언 ❙185


3. 남아공 민관과의 ‘지속 가능한 토지 개발’ 협력 모색

최근 아프리카에서의 자원 외교가 국가적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


반적으로 자원 외교라 하면 지하자원 등 광물을 둘러싼 외교적 노력을 의
미한다. 반면 토지를 자원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려는 인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2010년 7월에 독립한 남수단의 경우처럼 토지 임차가
중요한 자원 외교의 축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아프리카에서
의 자원 외교가 일방적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호혜적 관계
속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가. 지역 사회와의 상호 협력 체계 구축

농촌 지역민의 생존을 위한 기본 자원이라는 점에서 토지는 매우 독특


하고 가치 있는 자원이다. 아프리카에서 토지에 접근해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은 경제적 부의 축적과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경
제적 가치를 갖는다.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는 불과 6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토지 수탈을 경험했던 역사적 기억을 갖고 있다. 무분별하고
공격적인 토지 접근은 지역민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농촌의 토지 개발은 위로부터 또는 외부로부터의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지원이 아니라 지역민과의 상호 협력 체계 구축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민과의 소통을 통해 토지 문제에 접근하려는 장기적
이고 점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남아공 농촌 지역의 토지는 대부분 전통
적 협의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전통적 협의회는 추장 등 ‘전통적 지도자’

18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를 중심으로 신탁 회사를 결성해 지역 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따라서 토
지와 관련된 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전통적 협의회’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나. 지속 가능한 발전 차원에서의 접근

남아공에서 토지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매우 중요한 자원이며, 이


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차원에서 접근
할 필요가 있다. 토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ⅰ) 장기적 관점에서 토지와
관련된 지속 가능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기술적 관리와 운영을 하는 것
ⅱ) 지역 사회와 협력 기관이 공동으로 토지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각종
규제와 관리를 하는 것 ⅲ) 이 모든 과정이 젠더와 계층을 포함한 모든
지역민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할 것을 기반으로 한다. 남아공이 안고 있
는 심각한 토지 산성화와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한 지역민과의 공동 노력
이 지속 가능한 개발에 있어 하나의 예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다. 단기적 관점이 아닌 장기적 협력 정책 수립

남아공의 토지 문제는 오랜 역사적 경험과 관습 등에 기초해 매우 복


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런 복합적 환경은 남아공과의 토지 관련 정
책과 사업을 펴나가는 데 있어 단기적인 관점이 아니라 장기적인 협력 정
책을 수립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남아공 정부가 토지 분배에 있어서 공평
하고 효율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토지 정책을 수립하는 데 정책적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경제성장과 경제 통합의 차원에서 남아공

제8장 남아공 토지 문제 관련 정책적 제언 ❙187


국민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남
아공 정부가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토지 관련 정부(또는 비정부) 기구
를 운영하는 데 협력한다. 남아공의 빈곤 문제는 올바른 토지 관련 정책
을 수립함으로써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관련 기관의 운영이 필요하며, 우리나라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관
련 기구를 운영하는 데 협력한다.

188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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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부 록
남아공의 경제 현황
1. 남아공 개관

부표 1. 남아공의 일반적 상황

항 목 내 용
국 가 명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
1,219,0090㎢(이스턴케이프: 169,580, 자유 주: 129,480, 하우텡: 17,010, 크와줄루-나탈:
면 적 92,100, 림포포: 123,910, 음푸말랑가: 79,490, 노던케이프: 361,830, 노스웨스터: 116,320,
웨스턴케이프: 129,370)
인 구 약 48,700,000명(2008년, 남아공 통계청 추산)
요하네스버그: 3,226,000명, 이스트랜드/에쿠르훌레니Ekurhuleni: 2,480,000명,
주요도시
더반/에테크위니: 3,090,000명, 프리토리아/츠와네(수도): 1,986,000명,
인 구
케이프타운: 2,893,000명, 포트엘리자베스/넬슨 만델라 베이: 1,006,000명 (2001년 추산)
수 도 행정 수도: 프리토리아, 입법 수도: 케이프타운, 사법 수도: 블룸폰타인
영어, 아프리칸스어, 줄루어, 코사어, 나마어, 남아프리카 영어, 벤다어, 소토어, 스와티어,
언 어
츠와나어 등 11개 공식 언어
통 화 랜드(Rand)
평균환율 R8.16:USD1(2011년 기준)
종 교 기독교(80%),힌두교, 이슬람교
독 립 일 1910년 5월 31일
정부형태 공화제
대 통 령 제이콥 주마(2009년 4월 취임, 임기 5년)
의회제도 상하 양원제
국 회 5년 임기, 의석 400석, 비례대표제로 일반 투표
법률체계 로마-네덜란드법 및 영국의 관습법에 기반, 1996년 신헌법 공인, 1997년 2월 4일 효력 발생

2. 남아공의 경제 환경

가. 주요 특징

남아공은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한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의 최대 경제국이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 국내 총생산(GDP)의
약 25%, 수출입의 22%, 제조업 생산의 40%, 전력 생산의 50% 이상을

20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부표 2. 남아공의 주요 경제 지표

구 분 2007 2008 2009 2010 2011


명목 GDP(억USD) 2,861 2,754 2,844 3,638 4,083
1인당 GDP(USD) 9,933 10,431 10,322 10,730 11,326
GDP 성장률(%) 5.5 3.6 -1.5 2.9 2.5
실업률(%) 23.3 22.9 24.0 24.9 24.9
환율(R:USD, 연말) 6.89 9.30 7.36 6.59 8.16
소비자 물가 상승률(%) 4.7 8.2 8.6 3.5 6.3.
평균 금리(Repo, %) 13.1 11.1 10.5 11.8 13.9
자료: Economist Intelligence Unit(2011).

차지한다. 또한 남아공은 남부아프리카 경제개발공동체(SADC)와 남부아


프리카 관세동맹(SACU)의 주요 회원국이다.

나. 국내 총생산 성장률

2000년대 중반 남아공은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 대외 경제 여건


의 호전, 소비 및 설비 투자의 증대 등에 힘입어 5% 정도의 국내 총생산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의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하여
2009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 후 2010년 월드컵 인프라 투
자 확대로 2.9%의 국내 총생산 성장률을 기록했다.

부록 그림 1. 국내 총생산 성장률(%)

자료: Statistics South Africa.

부 록❙ 203
다. 산업 구조

2008년 지표에 따르면 남아공의 산업 구조는 상당히 다양화되었고, 국


내 총생산에서 서비스업이 65%를 차지하고 제조업은 15.9%를 차지한다.
실제로 국내 총생산의 2.6%밖에 차지하지 않는 농업 부문이 중요한 이유
는 많은 비숙련 노동자들이 여기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의 경
우에는 금융, 유통 등 3차 산업인 서비스업 위주로 산업이 발달하였고,
2차 산업은 광업,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산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특
히 남아공은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인해 광업이 발달했다. 남아공의 철광
석 매장량은 10억 톤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세계 14위에 해당한다. 또한
자동차 산업은 남아공 정부의 자동차 산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지속적으
로 발전하고 있으며, 세계 유명 자동차 업체들이 진출하여 남아공 국내
총생산의 7.1%를 점유하고 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 자동차
생산량의 84%를 차지하고 있다.

부록 그림 2. 남아공의 농업

자료 : http://images.nationmaster.com/images/motw/africa/south_africa_ag_1979.jpg

20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부록 그림 3. 남아공의 광물 및 산업

자료: http://www.planetware.com/i/map/SAF/south-africa-minerals-and-industries-map.jpg

부표 3. 남아공 국내 총생산의 산업 비중
(단위: %)
구 분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농업, 산림업, 임업 2.7 2.6 2.7 2.3 2.3 2.6
광업 및 에너지 8.9 8.6 8.3 8.0 7.6 7.0
채석업 6.6 6.3 6.2 5.8 5.6 5.0
제조업 16.4 16.4 16.3 16.3 16.2 15.9
서비스업 63.1 63.5 63.8 64.5 65.0 65.6
숙박, 식음료 13.4 13.6 13.9 14.1 14.1 13.8
통신, 운송 9.8 9.7 9.8 9.9 9.9 10.0
금융, 보험 18.5 19.0 19.0 19.4 19.7 20.1
사회, 개인 서비스 19.0 18.5 18.3 18.0 17.8 18.0
자료: WTO(2009), Trade Policy Review Report by the Secretariat Southern African Customs Union.

부 록❙ 205
1) 광업

지하자원이 풍부한 남아공에서는 일찍부터 광업이 발전하였다. 광업은


2010년 기준 남아공 국내 총생산의 8.8%를 점유하고 있다. 남아공 노동
력의 약 6%가 종사하고 있는 광업은 국가 수출 소득의 약 3분의 1을 차
지한다. 주요 수출 품목은 백금족 금속, 철광석, 석면, 망간광, 페로크롬,
크롬광, 바나듐 등이다.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아프리카 100대 기업 중 1위는 남아공의 광산
회사인 앵글로 아메리칸(Anglo American Plc)이 차지했다. 앵글로 아메
리칸의 시장가치는 약 719억 달러로 평가되었다. 1917년 이 기업은 남아
공 이스트랜드의 금광 개발을 위해 영국인 기업가 오펜하이머(Ernest
Oppenheimer)와 미국인 기업가 모건(J. P. Morgan)에 의해 설립되었다.
1999년 5월 이 기업은 ASCSA(Anglo American Corporation of South

부표 4. 남아공의 주요 광물 생산량 및 매장량

매장량 생산량(2009)
광종 단위
남아공 세계 순위 남아공 세계 순위
안티몬 톤 21,000 5 2,800 4
크 롬 천 톤 130,000 2 6,870 1
금 톤 6,000 2 198 4
철광석 백만 톤 1,000 14 55 7
망 간 천 톤 120,000 2 1,900 3
석 탄 백만 톤 30,410 8 146.8 4
니 켈 천 톤 3,700 8 34.6 11
백금족 톤 63,000 1 216 1
티타늄 천 톤 71,300 4 1,050 1
바나듐 천 톤 3,000 3 17 2
지르코늄 백만 톤 14,000 2 3,920 2
자료: USGS, Mineral Commodity Summaries 2011.

20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Africa)와 미놀코(Minorco)의 합작 법인 형태로 확장되었다. 현재 이 기
업은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유럽, 호주, 아메리카 등의 대륙에서 백금, 금,
다이아몬드, 철광석, 니켈 등 주요 자원을 생산하고 있다.

2) 자동차 산업

남아공은 자동차 산업을 수출 산업의 기둥으로 인식하고, 국내 생산 및


신규 투자 우대조치 등을 시행했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다국적
기업들이 현지화 전략을 추진함에 따라 남아공에서는 현지 조립 생산이
시작되었다. 다국적 기업들은 현지에서 잘 팔릴 수 있는 구 모델의 생산
설비를 남아공으로 이전하고,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자동차를 직접 대
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Ford(1924년)와 GM(1926년)은 남아공에 각각 자
회사를 설립해 현지 조립을 시작하는 등 외국 기업의 자본과 기술, 부품
공급에 의한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유도했다.

부록 그림 4. 남아공의 연도별 자동차 생산량 추이


(단위: 천 대)

자료: Naamsa.

부 록❙ 207
1970~80년대에 들어와서 환율 문제, 정세 불안, 경제 부진 장기화로
인하여 자동차 회사들은 남아공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자동차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고―41만 대(1981년)에서 26만
대(1986년)로 감소―1980년대에는 랜드화 하락 및 정세 불안과 경제 부
진이 장기화됨에 따라 Renault, Volvo, AMC, Chrysler, BL(현 Rover),
Fiat 등의 자동차 기업들이 남아공에서 철수했다. 또한 1980년대에는
GM과 Ford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대한 비판 때문에 철수를 시작했다.
1995년 이후부터는 남아공 정부의 지원 정책 강화로 자동차 회사에 대
한 투자가 크게 증가했다. 1995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 체제 결성 등 무역 자유화 강화로 인해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남아공 정부는 자동차 수출에 대한 인센티브
를 과감하게 제공하면서, 다국적 자동차 생산업체들의 현지 생산을 유도
하였다. 특히 남아공 정부는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관세 인하를
골자로 하는 ‘자동차산업 개발프로그램(MIDP: Motor Industry Development
Programme)’을 도입하여 완성차 및 부품의 수입 관세를 점진적으로 인하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조치는 2012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래서 2002년에
40%이던 완성차 수입 관세율이 2012년에는 25%로 인하되었다. 또한 자
동차 수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해 수출액에 따라 완성차 및 부품의 수
입 관세를 상쇄할 수 있도록 크레딧을 발급했다. 크레딧이 발생하면 수입
관세와 무관세의 차이만큼 마진이 생긴다. 이것은 ‘주문자 상표 제품의
제조(OEM)’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즉, 자동차 제조사는 소품종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하여 수출을 늘림과 동시에, 수출로 얻은 크레딧을
이용해 국내 미생산 차종을 관세 없이 수입할 수 있게 된다.

20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2008년 9월 시행된 ‘국내생산 우대제도’는 ‘자동차산업 개발프로그램’을
대체할 목적으로 ‘자동차 생산․개발프로그램(APDP: Automotive Production
and Development Programme)’을 도입하는 정책이었다. 이것은 수출 보
조에서 국내 생산 보조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이다. 남아공은 연간 자동차
생산 능력을 2020년까지 120만 대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10년 6월 무역산업부는 자동차 제조사(부품 제조사도 포함)에 대한
신규투자 우대조치로서 ‘자동차 투자계획(AIS: Automatic Investment
Scheme)’을 발표했다. 이것은 자동차 및 부품 제조사의 국내 투자에 대해
투자액의 20%에 상당하는 크레딧을 발급해 완성차 수입세를 상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2009년 12월 현재, 자동차 제조사들은 총 3만 161
명을 고용하고, 그 외의 부품 회사들은 추가로 7만 5,000명을 고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3) 금융 및 서비스업

국제 금융 위기로 인해 2009년 당시 신흥 시장 투자에 대한 재평가가

부록 그림 5. 자본 흐름 내역

자료: OECD calculations based on SARB Database.

부 록❙ 209
이루어졌으며, 국제 자본 시장의 흐름도 원활하지 못했다. 따라서 남아공
금융 시장에서 자금 조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증권 투자 유입이 급격하
게 감소했다. 외국 자본 유입의 축소로 인해 남아공의 은행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개인 자본의 유입에 힘입어, 남아공의 은행들은 성장세
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라. 물가 상승률 및 환율

2002년 이전 남아공에서는 소득 수준과 유가 상승으로 인해 물가와 환


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2002년 이후에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
승, 달러화 유입 증가, 수입 물가 하락에 따른 물가 안정 등으로 인해 물
가와 환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2009년 5월 이후에는 랜드화 가치가 최
저치로 하락했다. 이러한 현상은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 지역인 유럽 연합
(EU)의 경기 침체 및 남아공 최대 수출품인 광산물의 채굴을 가로막는
노조들의 파업 때문에 발생했다. 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의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경상 수지 적자, 2014년 대선의 불확
실성 등으로 인해 남아공의 랜드는 더욱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즉, 2012
년에는 8.75랜드가 미화 1달러와, 그리고 2015년에는 9.6랜드가 미화 1달
러와 교환될 전망이다.

부표 5. 인플레이션과 환율

구 분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5


인플레이션(%) 7.1 11.0 7.1 5.3 5.2 - -
환율(R:USD) 6.86 9.30 7.36 6.59 8.16 8.751 9.61
주: Economist Intelligence Unit 예상치.
자료: Statistics South Africa, Economist Intelligence Unit(2011).

21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마. 실업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는 15세부터 64세까지의 고용률


이 평균 60~75%에 달하나, 남아공의 경우에는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남아공의 낮은 고용률은 노동 인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
미도 내포하고 있다.

부록 그림 6. 고용률(2000~09년) (15~64세 생산 가능 인구 중 고용 비율)

주: BIIC는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을 가리킴.


자료: Statistics South Africa, Labour Force Survey(revised), Quarterly Labour Force Survey; ILO, KLIM Database;
OECD Labour Force Statistics Database and OECD Economic Outlook 86 Database.

부록 그림 7. 국가별 노동 참여 비율(2008년) (15~64세 인구)

주: 브라질은 2007년 데이터.


자료: OECD Labour Force Statistics Database, ILO Laborsta Database; Statistics South Africa.

부 록❙ 211
1990년대 이래 남아공의 실업률은 계속해서 20%를 상회해왔는데,
2002년에는 그 정점인 27.2%에 달했다. 그러나 구직 활동을 포기한 실망
실업자(discouraged workers)까지 포함할 경우, 실업률은 30%가 넘을 것
으로 추정된다.

부표 6. 실업률(매년 평균값)

구 분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실업률(%) 25.4 27.2 27.1 23.3 22.6 22.3 23.5 22.9 24.0
자료: Statistics South Africa, Labour Force Survey(revised), Quarterly Labour Force Survey.

[부록 그림 8]이 보여주듯이, 남아공에서는 특히 15~24세 젊은 노동자


의 실업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남아공 사회가 안고 있
는 심각한 문제이다. 남아공과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갖는 나라들에서는 젊
은 노동자들의 고용률이 80%에 달하나, 남아공의 경우에는 53%에 불과
하다.

부록 그림 8. 15~64세 젊은 노동자의 국가별 실업률(2008년)

주: 브라질은 2007년 데이터임.


자료: OECD Labour Force Statistics Database, ILO Laborsta Database; Statistics South Africa, Quarterly Labour
Force Survey.

212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부표 7]이 보여 주듯이 젊은 흑인 중 43%와 젊은 컬러드 중 32.9%는
실업 상태에 있다. 백인은 실업률이 가장 낮은 집단이다. 15~24세 흑인의
실업률은 백인의 그것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남아공에서는 실업률에서의
인종 간 차이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표 7. 연령별 실업률과 인구 그룹(2009년 4/4분기)


(단위: %)
노동 연령
구 분 15~24 25~34 35~64 총계
인구 비율
총인구 48.3 28.5 13.5 24.3 100.0
인종별
흑 인 53.8 32.2 16.6 28.6 77.7
컬러드 43.3 22.4 11.2 20.8 9.6
인도/아시아인 22.1 9.4 8.6 11.1 2.9
백 인 14.5 5.0 3.4 4.9 9.8
자료: Statistics South Africa(2009), Quarterly Labour Force Survey. (Quarter 4).

부록 그림 9. 인종별 15~24세 젊은 노동자 실업률

자료: Statistics South Africa, Quarterly Labour Force Survey.

[부표 8]은 남아공 사람들의 교육 수준별 실업률을 보여 준다. 이 표에


서 알 수 있듯이, 다른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교육 수준이 높으면 실업
률이 상당히 낮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서부터 중등
학교 졸업 학력을 가진 집단 간에는 실업률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다. 이것은 중등교육 과정에서 직업을 찾는 데 필요한 기술 교육이 효과
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부 록❙ 213
부표 8. 교육 수준별 실업률
(단위: %)
구 분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총 실업률 27.1 24.7 23.8 22.6 22.3 22.9
무 학 17.3 13.1 15.6 16.3 13.2 14.6
초등학교 중퇴 25.1 22.5 22.8 20.3 20.4 21.6
초등학교 졸업 29.9 25.1 25.0 23.5 24.2 23.8
중등학교 중퇴 34.1 31.9 30.3 28.3 28.9 29.3
중등학교 졸업 28.6 26.4 24.5 23.7 22.6 24.2
대학교 이상 9.8 7.6 7.4 8.0 7.2 7.7
자료: Statistics South Africa(2008), Labour Market Dynamics in South Africa.

바. 정부 재정 현황과 대외 부채

1990년대 초반까지 남아공은 상당한 재정 적자를 겪었다. 그러나 1990


년대 중반부터 2001년까지 재정 적자의 폭은 크게 감소했다. 이러한 국고
상황 개선은 몇 가지 중요한 재정 정책의 결과였다. 특히 효과적인 세금
정책 개편을 통한 세수 확대는 국고 상황을 개선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
할을 했다.
정부의 신중한 재정 지출은 2006년과 2007년에 흑자를 가져왔다. 그러
나 2008년에는 0.6%의 손실이 초래되었다. 이는 정부의 공공 부문 지출
확대가 가져온 결과이다. 이것은 인프라에 대한 투자 확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정부는 공공 부문에 대한 지출 증가를 통해 공공 서비스를 강화
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안정적인
국가 재정 상황 덕택에 2002년에 국내 총생산의 38.9%를 차지하던 정부
부채가 2008년에는 국내 총생산의 23.8%로 감소했다. 2008년 남아공의
총 부채는 국내 총생산의 6.2%를 차지했다.

214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부록 그림 10. 정부 재정GDP 대비 비중)

주: 1년 주기(4월 1일~3월 31일), 2009년은 추산치.


자료: National Treasury, GFS Database.

부표 9. 정부 재정 (GDP 대비 비중)
(단위: %)
구 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세입(양여금 포함) 23.6 22.9 23.6 25.6 26.6 26.9 26.3
지출과 순 부채 24.3 25.4 25.6 26.1 26.3 26.1 26.9
종합 수지 -0.7 -2.5 -2.0 -0.5 0.3 0.8 -0.6
정부 부채 38.9 39.6 37.2 35.3 32.9 27.1 23.8
국가 총 부채 10.8 7.9 6.7 6.5 6.8 6.0 6.2
자료: South African Reserve Bank online information, Quarterly Bulletin time series.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2008.

부록 그림 11. 인프라 항목에 대한 공공 부문 지출 (GDP 대비 비중)

자료: National Treasury.

부 록❙ 215
사. 대외 무역과 투자

1) 무역 현황

남아공은 무역이 국내 총생산의 65% 내외를 차지하는 대외 개방도가


높은 국가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남아공은 무역 흑자를
유지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관세 철폐 등 무역 자유화로 인해
무역 흑자폭이 감소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경제성장에
따른 수입 수요 증가와 유가 상승 등의 원인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되
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의 무역 추이를 살펴보면, 상품과 서비스를
포함한 무역의 비율이 국내 총생산의 53.8%에서 73.8%로 크게 증가했
다. 이 기간에 수출 성장세가 두드러졌지만, 수입이 크게 증가했으므로 무
역 수지 적자는 심화되었다.

부표 10. 남아공의 국내 총생산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


(단위: %)
구 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상품과 서비스 포함 62.1 53.8 53.8 55.6 62.5 66.0 73.8
교역 조건(%의 변화)
금을 포함 2.1 3.7 1.1 0.4 4.4 3.2 1.5
금을 제외 0.1 4.8 1.8 0.2 2.9 3.0 0.9
자료: WTO(2009), Trade Policy Review Report by the Secretariat Southern African Customs Union.

부표 11. 남아공 수출입 동향


(단위: 백만 달러)
구 분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수 출 51,870 57,897 69,867 80,207 62,380 81,311 96,701
수 입 55,029 68,157 79,923 91,058 64,867 80,212 100,008
교 역 량 106,899 126,054 149,790 171,265 127,247 161,523 196,709
무역수지 -3,159 -10,260 -10,056 -10,851 -2,487 1,099 -3,307
자료: WTO(2009), Trade Policy Review Report by the Secretariat Southern African Customs Union.

216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2000년 이래로 수출 품목 중 제조업 부문과 농업 부문은 감소한 반면,
광물 자원은 증가했다. 현재 주요 수출 품목은 광물 자원이다. 또한 승용
차도 수출 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7위 품목이다. 이러한 현상은 남아공 정
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동차산업 육성정책에 따라,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
사들의 생산 기지가 이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데 기인한다.

부표 12. 남아공의 주요 수출 품목(2011년)


(단위: 백만 달러, %)
순위 수 출 품 목 금 액 비 중
1 철광 및 그 정광 455.946 19.13
2 페로알로이 432.846 17.78
3 동의 웨이스트와 스크랩 361.730 15.17
4 옥수수 290.857 12.20
5 알루미늄의 괴 210.448 8.83
6 백금 120.505 5.06
7 승용차 76.657 3.22
8 화학목재펄프 58.940 2.47
9 크롬 광석 54.626 2.29
10 스테인리스강의 평판 압연 44.091 1.85
자료: World Trade Atlas.

부표 13. 남아공의 주요 수입 품목(2011년)


(단위: 백만 달러, %)
순위 수 입 품 목 금 액 비 중
1 승용차 850.013 37.79
2 전화기 142.318 6.33
3 석유와 역청류 138.298 6.15
4 화물자동차 68.603 3.05
5 불도저 47.170 2.10
6 판자 44.440 1.98
7 부분품 43.436 1.93
8 스티렌 중합체 32.575 1.45
9 냉장고, 냉동고 31.051 1.38
10 자동 자료처리 기계 30.183 1.34
자료: World Trade Atlas.

부 록❙ 217
반면 제조업은 수입 품목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으로 인해 원유 수입이 증가하고 있고, 최근 들어 남아공 흑인
계층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등의 소비재의 수
입이 증가하고 있다.
[부록 그림 12]에서 알 수 있듯이, 남아공의 주요 수출 대상국은 중국
(8.9%), 미국(7.9%), 일본(6.6%), 독일(6.1%) 등이다. [부록 그림 12]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한국은 남아공의 수출 대상국 중에서 12위(2.47%)를
차지하고 있다. 남아공의 주요 수입 대상국은 중국(19.6%), 독일(12.8%),
미국(8.4%), 사우디아라비아(5.5%) 등이다.

부록 그림 12. 주요 수출 국가 (2009년,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


(단위: %)

자료: Economic Intelligence Unit(2011).

218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부록 그림 13. 주요 수입 국가(2009년,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
(단위: %)

자료: Economic Intelligence Unit(2011).

2) 투자

2003년부터 2008년까지의 기간 동안 남아공으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


투자 액수는 11.5배가량 증가했다. 이것은 남아공 경제에 대한 투자자들
의 신뢰를 확인 가능하게 해준다.

부표 14. 남아공의 금융 거래
(단위: 백만 달러)
구 분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남아공으로 직접 투자1 783.1 701.4 6,522.1 -183.6 5,745.9 9,009.2
남아공으로 증권 투자 723.4 6,406.7 4,787.0 19,582.8 11,616.3 -15,937.6
외국으로 직접 투자2 -552.5 -1,305.4 -909.4 -6,535.7 -3,156.0 3,533.3
주: 1. 외국인들이 남아공에 직접 투자함.
2. 남아공 거주자들이 해외에 직접 투자함.
자료: IMF 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IFC) Version 1.1.82, Balance of Payments Statistics version 1.1.105.

부 록❙ 219
부록 그림 14. 남아공에 직접 투자하는 국가들의 비중
(단위: 십억 달러)

자료: South African Reserve Bank online information. Viewed at: http://www.reservebank.co.za

해외의 주요 투자국은 유럽 연합이며, 특히 영국과 독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미국, 스위스, 일본 등도 주요 투자국에 속한다. 투자 분야를
보면 백금 광물 자원, 유리 제조업, 숙박, 금융 서비스 분야가 높은 비중
을 차지하고 있다.

부록 그림 15. 남아공 직접 투자 항목 비교
(단위: 십억 달러)

자료: South African Reserve Bank online information. Viewed at: http://www.reservebank.co.za

220 ❙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3. 남아공의 경제 전망

남아공은 신흥경제대국 클럽인 브릭스(BRICs)에 가입할 정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정치․경제적 번영을 이끌었던 집권당인 아프
리카민족회의의 장기 집권은 부정부패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세계 경제 불황의 여파로 인해 남아공은 2009년에 경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0년 월드컵 개최에 따른 인프라 건설과 넘쳐나는 외국
인 관광객 덕분에 남아공은 위기를 극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공의 향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국내 총생산 성장률이 2013년에는
3.8%, 그리고 2014년에는 3.6%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어두운 전망
은 2014년 선거 결과의 불투명성 및 기술자 부족 현상, 높은 실업률, 범죄
와 부패 등의 구조적 제약에 기인한다.

부표 15. 경제성장 예상

구 분 2012 2013 2014 2015


GDP 성장률(%) 4.8 3.8 3.6 4.0
총 농업생산 성장률(%) 3.7 3.3 3.5 3.2
인플레이션(%) 5.7 4.4 4.3 4.9
환율(랜드R:USD, 연말) 8.75 9.25 9.40 9.60
재정 수지(GDP의 %) -4.8 -3.8 -3.1 -2.7
상품의 수출(십억 달러) 81.4 83.7 86.0 88.2
상품의 수입(십억 달러) 82.6 86.1 86.5 88.4
대외 부채(십억 달러) 51.4 50.9 48.5 46.3
경상 수지(십억 달러) -21.0 -20.4 -16.1 -13.7
경상 수지(GDP의 %) -5.8 -5.7 -4.3 -3.5
자료: Economic Intelligence Unit(2011).

부 록❙ 221
❙Executive Summary❙

The Study of Land Issues in South Africa

Yongkyu Chang, Kyudeug Hwang, Byung-Soo Seol, Kyoung Hwa Kang


and Bethel Ghebru

Within the context of historical and socio-economic complexities and


implications, this study aims to deal with land issues in South Africa, which
have been a major point of debate since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when
the white settlers’ contact with indigenous peoples was formally initiated.
Against this background, first, the current study focused on examining the
perceptions and practices of peoples concerning the land uses and values in
South Africa. Second, it covered the land tenure system during the pre-colonial
period as well as the processes of European settlers’ land plunder since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Third, it examined a number of negative aspects
of land policy during the Apartheid era (1948-1993). Since the demise of
Apartheid system, finally, it explored the ANC-led government land policy from
the onset of the post-Apartheid epoch to the present.
Since the 17th century, South Africa was placed into the influence of white
minority settlers and the British imperialists, who made the indigenous peoples
dominated and degraded with being deprived of land rights. As noted, the
history of land in South Africa has been marred by the domination and
exploitation caused by the white settlers. This implies that the history of colonial
rule and land dispossession should become a focal point of land issues in South
Africa.
Once the National Party (NP) supported by the Dutch origins was at the
helm of South African government in 1948, the white regime institutionally
installed land private tenure rights, which created a fundamental transformation
of relationships between the indigenous Bantu peoples and the whites with
causing the destructive and harmful situations for the black societies. The
Apartheid regime established and implemented legislation for denying the
ownership rights of black people. As a result of the enactment of the Native’s
Land Act of 1913, the black had to move from their land to the reserved area
called Bantustan. Moreover, this caused the distorted land situations in which
the white minority only accounting for less than 15% occupied more than 70%
of the entire land in South Africa.
After the end of the Apartheid period, the new South African government
facilitated the market-led land reform programs. Given the programs sought
to correct the injustice of land redistribution, reduce the poverty, contribute
to the sustainable uses and development of land and economy and set up a
balanced and equitable land tenure rights, they were initially treated as an
ambitious and proper approach to the land problems in South Africa. However,
the post-Apartheid government has been confronted with a number of
difficulties while protecting the legacy of traditional land system. In this context,
the various land policies of the post-Apartheid era can be characterized by
failure, ambivalence, ambiguity, dilemma and inconsistency. This shows that
South Africa has failed to eradicate the old and deep-rooted Apartheid legacy.
Livelihood based on land remains the significant matter for people in both
rural and urban areas. In the midst of high rate of unemployment and unstable
income conditions, many people in South Africa are placed to rely on land
for guaranteeing food security and their sources of income through the agrarian
productivity. This means that the government’s land policies and programs
for reducing poverty should be treated as one of the primary goals in
socioeconomic terms in the post-Apartheid epoch.
Currently, meanwhile, the land reform issues have become more prominent
than ever. The issues retain always emotional and symbolical aspects in the
national debate for the past and the future. Similarly, some proponents
supporting and protecting the indigenous land system have asserted that the
system has intrinsically ecological and cultural values beyond the economic
benefits. Thus, the government has been demanded of reconsidering the meaning
and value of cultural features as well as economic ones in dealing with the
land policy. Additionally, the government should provide farmers a substantial
access to land which is mainly approached by them for the purpose of making
a living. Moreover, some government policies for the future are supposed to
protect and enhance the flexibility and freedom of choice for the individual.
Under the circumstances, the main purpose of land reform in South Africa
should be highlighted within the equitable land rights and redistribution. The
problem is that the South African citizens, particularly Afrikaners who are the
large-scale farmers and the Bantu people who are mostly peasant proprietors,
tend to have a strong attachment for land. In the post-Apartheid era, South
Africa has implemented a multi-faceted program of land reform to address
problems of historical dispossession and rural poverty, relying heavily on the
principle of ‘willing buyer, willing seller.’ This version of market-led agrarian
reform has been influenced by the World Bank but enjoys support from
landowners and elements within the ruling ANC committed to maintaining
the structure of large-scale, capital-intensive farming.
The focal point of the slow pace of land reform is considered as the potential
element of conflict in South Africa. In fact, 18 years since apartheid ended,
a derisory 4% of white-owned farmland has been redistributed, mainly bought
from white landowners willing to sell at prevailing market prices. The rate
of land transfer remains far below official targets which would be expected
to take about 60 years to resolve the land disputes. This suggests that it has
a potential conflict to be exploded with making little positive impact on
livelihoods or on the wider rural economy.
전략지역심층연구 발간자료 목록

■ 2012년 12-01 한·인도 제약산업 비교분석을 통한 협력과 경쟁 전략 / 이 웅ㆍ송영철

12-02 신정부 출범 이후 미얀마 개혁·개방에 대한 주요국의 대응과 시사점 /


오윤아ㆍ정재완ㆍ박나리

12-03 미얀마 외교정책의 변화와 주요국과의 관계 / 장준영

12-04 자바 경제회랑에 대한 한·인니 산업협력방안 /


강인수ㆍ송유철ㆍ이호생ㆍ한홍렬

12-05 라오스의 인적자원개발 분야 ODA 현황과 한국의 지원전략 /


이요한

12-06 몽골의 투자환경과 한국기업의 진출 확대방안 /


이재영ㆍ제성훈ㆍ김홍진ㆍ간투무르 뭉크낫산

12-07 중앙아시아 에너지 수출국 국부펀드의 특징과 시사점: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 조영관

12-08 카자흐스탄의 산업다변화 정책과 녹색성장 협력방안 연구 / 주진홍

12-09 CAREC(Central Asia Regional Economic Cooperation)의 현황과


한국의 협력방안 / 조영관ㆍ성원용ㆍ이상준ㆍ주진홍

12-10 러시아·중국· 인도 삼각협력체제의 전략적 함의와 시사점 /


백준기ㆍ김재관ㆍ이남주ㆍ박상남

12-11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 장용규ㆍ설병수ㆍ 황규득ㆍ강경화ㆍ베텔

12-12 동부아프리카 2개국(에티오피아, 케냐)의 사회경제개발 역량강화를 위한


협력방안 연구 / 이진상ㆍ변 웅

12-13 에티오피아의 중소기업 발전과제와 한국의 개발협력방안 /


곽성일ㆍ전혜린ㆍ백석훈

12-14 브라질 북동부지역의 투자환경과 한국의 진출 확대방안 /


권기수ㆍ박미숙ㆍ이시은

12-15 중남미 엘리트집단 특성에 관한 연구 /


김기현ㆍ박윤주ㆍ김영철ㆍ이상현

KIEP 설립 이후 현재까지의 모든 발간자료 원문은 홈페이지(http://www.kiep.go.kr)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2-16 이슬람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구조와 위험요인 /
이권형ㆍ손성현

12-17 이란의 정치·권력구조와 주요 정파별 경제정책 /


이권형ㆍ박재은ㆍ박현도

12-18 싱가포르의 주요 산업: MICE, 의료관광을 중심으로 /


이재호ㆍ박나리

12-19 조지아의 주요 산업: 교통인프라, 정보통신 산업을 중심으로 /


강부균ㆍ민지영

12-20 멕시코의 주요 산업: 석유화학,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


김진오ㆍ이시은

12-21 요르단의 주요 산업: 전력, 의료 산업을 중심으로 / 윤서영ㆍ박재은

12-22 모잠비크의 주요 산업: 전력산업, 농업을 중심으로 / 전혜린

12-23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Ⅰ


인도, 동남아시아

12-24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Ⅱ


중앙아시아

12-25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Ⅲ


러시아, 몽골

12-26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Ⅳ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 2011년 11-1 인도 경제개혁 20년의 평가와 전망 / 김찬완ㆍ손승호ㆍ임정성

11-2 남아시아 3개국 투자매력도 분석과 진출방안 / 이순철ㆍ이영일

11-3 한·인도 양국에서의 국가 이미지 /


조충제ㆍ은기수ㆍ박 건ㆍ장원봉ㆍ유성용ㆍ정혜원

11-4 한·인도 그린에너지산업 협력방안 / 김현제ㆍ조상민ㆍ박찬국

11-5 한·인도 금융산업 협력 확대방안: 은행, 증권, 보험 /


이 웅ㆍ최호상ㆍ정무섭ㆍ서대교

11-6 ASEAN의 의사결정 구조와 방식 /


강대창ㆍ박나리ㆍ유현석ㆍ김형종ㆍ이동윤
11-7 동남아시아의 최근 정치·외교에 대한 전략적 평가: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중심으로 /
조흥국ㆍ윤진표ㆍ이한우ㆍ최경희ㆍ김동엽

11-8 메콩지역 개발 전략: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


김태윤ㆍ김홍구ㆍ조영희ㆍ이요한ㆍ신민금

11-9 동남아시아 이슬람 경제의 이해 :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 강대창ㆍ박나리ㆍ김형준ㆍ홍석준ㆍ원순구ㆍ손승호

11-10 미얀마의 사회경제개발과 한국의 개발협력 구상 /


이호생ㆍ강인수ㆍ송유철ㆍ한홍렬

11-11 미얀마 사회문화·정치와 발전잠재력 /


오윤아ㆍ장준영ㆍ최재현ㆍ우꼬레ㆍ강대창ㆍ김유미ㆍ박나리

11-12 포스트소비에트 20년 중앙아시아의 미래: 통합 가능성과 균열


요인 연구 / 이재영ㆍ김석환ㆍ정세진ㆍ박정호ㆍ박병인ㆍ나희승

11-13 한·중앙아시아 인적지원의 교류현황과 활성화 방안 /


윤성학ㆍ김영진ㆍ김일겸ㆍ김안국ㆍ홍미희ㆍ성동기ㆍ이시영

11-14 중앙아시아 외국인투자의 특징과 한국기업에 대한 시사점 /


조영관ㆍ주진홍ㆍ강명구ㆍ김영식ㆍ오영일ㆍ이상준

11-15 몽골 광물자원 개발 현황과 한국의 진출방안 /


이재영ㆍ이평래ㆍ윤익중ㆍ이시영ㆍS. Avirmed

11-16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Ⅰ


인도

11-17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Ⅱ


동남아시아 1

11-18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Ⅲ


동남아시아 2

11-19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Ⅳ


중앙아시아 1

11-20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Ⅴ


중앙아시아 2

11-21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Ⅵ


몽골, 터키
■ 2010년 10-1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투자매력도 분석과 한국의 진출방안 /
조영관ㆍ강명구ㆍ김계환ㆍ김한칠ㆍ성원용ㆍ이시영

10-2 중앙아시아 에너지 플랜트시장 전망과 한국의 참여방안에 관한 연구 /


윤성학ㆍ문창권ㆍ변현섭ㆍ이성훈ㆍ장세진ㆍ주진홍ㆍ최 호

10-3 우즈베키스탄 지배집단과 권력 엘리트 연구 /


이재영ㆍ김석환ㆍ박상남ㆍ손영훈

10-4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의 국가적 이미지 /


윤성학ㆍ은기수ㆍ박수미ㆍ박 건ㆍ장원봉

10-5 한국형 개발경험전수사업 추진을 위한 기초연구: 기존 사례


분석 및 우즈베키스탄에의 적용 / 강인수ㆍ송유철ㆍ이호생ㆍ한홍렬

10-6 중앙아시아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Ⅰ


중앙아시아: 정치ㆍ문화

10-7 중앙아시아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Ⅱ


중앙아시아: 경제ㆍ자원ㆍ과학
장용규(張龍奎)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와힐리어과 졸업
남아공 University of KwaZulu-Natal 인류학 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소장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 교수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역임
(現, E-mail: ykchang@hufs.ac.kr)

저서 및 논문
󰡔춤추는 상고마: 남아공의 문화읽기󰡕(2003) 외
“Cultivating Spirits: Capitalism and Spiritual comodification in South Africa”(2011) 외

황규득(黃圭得)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어과 및 동대학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졸업


남아공 University of Pretoria 정치학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겸임교수 역임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장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 교수
(現, E-mail: kyudeug@hufs.ac.kr)

저서 및 논문
󰡔아프리카의 역사와 정치·경제󰡕(공저, 2007)
“The Evolution of Trade Reform in South Africa: Coherence or Complexity?”
(2012) 외

설병수(薛秉洙)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졸업
호주 Monash University 인류학 박사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연구초빙교수 역임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現, E-mail: bsseol1369@hanmail.net)
저서 및 논문
“The Paradox of Circular Labor Migration: A Case Study of Keate’s Drift Town, South
Africa”(2010) 외

강경화(姜京和)

단국대학교 화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졸업, 정치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아프리카 지역학 박사 과정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보조원
(現, E-mail: hwa5970@hanmail.net)

저서 및 논문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and Education Reforms in Tanzania”(2009) 외

베 텔(Bethel Ghebru)

경희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아프리카 지역학 박사 과정
(現, E-mail: bethel@hufs.ac.kr)

저서 및 논문
「한국어와 암하라어의 격 실현 양상 비교 연구」(2009) 외
전략지역심층연구 12-11
연구보고서 12-34

남아공의 토지 문제 연구
2012년 12월 26일 인쇄
2012년 12월 31일 발행

발 행 인 채 욱
발 행 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37-747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대로 246
전화: 02-3460-1142 FAX: 02-3460-1144
인 쇄 서울기획문화사 전화 02-2272-1533
등 록 1990년 11월 7일 제16-375호

ISBN 978-89-322-1417-7 94320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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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구 자 회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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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사항
전략지역
심층연구
Studies in Comprehensive Regional Strategies 12-11 12-11 전략지역심층연구 12-11
2012년 KIEP 연구보고서
무역이 고용 및 부가가치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정책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DDA 협상 지연의 요인 분석과 국제적 대응방안 남 신흥경제국가들에 대한 종합적·심층적인 이해를

한국 기발효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


아 위해 [전략지역 심층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 이의 일환으로 인도/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
무역자유화 효과의 실증분석과 정책 대응: 소비자후생을
중심으로
의 아시아/러시아/몽골,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지역에
대한 연구결과물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경제개방과 R&D 정책의 상호작용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토
저탄소 녹색성장정책과 다자무역규범 간의 조화:

주요 쟁점과 정책 시사점 문
제 [2012년 전략지역 심층연구 보고서]

Africa
신기후변화체제하에서 한국의 대응전략:
새로운 감축-지원 통합 메커니즘의 모색 연
국가 채무가 국가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 분석 구 12-01 한·인도 제약산업 비교분석을 통한 협력과 경쟁 전략
12-02 신정부 출범 이후 미얀마 개혁·개방에 대한 주요국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거시금융 정책의 평가와 시사점 대응과 시사점

금융시장을 통한 효율적 환헷지 방안과 정책적 시사점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12-03


12-04
미얀마 외교정책의 변화와 주요국과의 관계
자바 경제회랑에 대한 한·인니 산업협력방안
대규모 외부충격(disasters)이 거시경제 및 금융시장에 12-05 라오스의 인적자원개발 분야 ODA 현황과
미치는 영향
한국의 지원전략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과 유로존의 개혁과제 12-06 몽골의 투자환경과 한국기업의 진출 확대방안
12-07 중앙아시아 에너지 수출국 국부펀드의 특징과 시사점:
한ㆍ중ㆍ일 경제협의체 구상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최빈개도국 개발과제와 한국의 ODA 정책방향 12-08 카자흐스탄의 산업다변화 정책과 녹색성장 협력방안 연구
12-09 CAREC(Central Asia Regional Economic
G2 시대 일본의 대중(對中) 경제협력 현황과 시사점
Cooperation)의 현황과 한국의 협력방안
중국 도시화의 시장 창출 효과와 리스크 분석
The Study of Land Issues in South Africa 장용규 12-10 러시아·중국·인도 삼각협력체제의 전략적 함의와
시사점
중국기업 연구개발 투자의 특징과 시사점 황규득
12-11 남아공의 토지문제 연구
중국ㆍ대만ㆍ홍콩의 경제통합과 정책적 시사점 설병수
Yongkyu Chang, Kyudeug Hwang, Byung-Soo Seol, Kyoung Hwa Kang 12-12 동부아프리카 2개국(에티오피아, 케냐)의
강경화 사회경제개발 역량강화를 위한 협력방안 연구
러시아의 해외직접투자 패턴과 한국의 투자 유치 확대방안 and Bethel Ghebru
베 텔 12-13 에티오피아의 중소기업 발전과제와 한국의 개발협력
한국의 메콩 지역개발 중장기 협력방안: 농업, 인프라 및
방안
인적자원개발을 중심으로
2001년 남아공 정부는 향후 15년 안에 농지의 30%를 재분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토지재분배 정책을 발표했다. 하 12-14 브라질 북동부지역의 투자환경과 한국의 진출 확대방안
동남아 주요 국가들의 인력송출 현황과 한국의 대응방안 지만 2010년 남아공 정부는 토지 개혁의 실패를 인정했다. 2009년 말까지 농지 가운데 불과 6.9%-약 567만 헥타 12-15 중남미 엘리트집단 특성에 관한 연구
르-만이 재분배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추진 의지부족과 아파르트헤이트의 잔재 등이 그 원인으로 지적되는 가 강장 12-16 이슬람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구조와 위험요인
아시아 주요국의 대인도 경제협력 현황과 시사점 경용
운데, 남아공 정부는 2011년에『토지개혁청서(Green Paper on Land Reform)』
를 발표했다. 이 정책은‘자발적 구매 화규 12-17 이란의 정치·권력구조와 주요 정파별 경제정책
안데스 자원부국과의 경제협력 확대 방안: 베네수엘라,

·
·
자, 자발적 판매자’원리를 재검토하고, 시장 주도적 토지 개혁을 폐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2-18 싱가포르의 주요 산업: MICE, 의료관광을 중심으로
에콰도르,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베황
규 12-19 조지아의 주요 산업: 교통인프라, 정보통신 산업을 중심으로
중동지역 정세변화에 따른 대중동 新경제협력 방안 모색 텔득 12-20 멕시코의 주요 산업: 석유화학,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
12-21 요르단의 주요 산업: 전력, 의료 산업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건설ㆍ플랜트 시장특성 분석 및 한국의 진출방안 설
병 12-22 모잠비크의 주요 산업: 전력산업, 농업을 중심으로
북한의 시장화 현황과 경제체제의 변화 전망 수 12-23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Ⅰ: 인도, 동남아시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의 진로모색과 시사점 12-24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Ⅱ: 중앙아시아


12-25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Ⅲ: 러시아, 몽골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경제의 진로모색과 시사점 Republic of South Africa 12-26 전략지역심층연구 논문집 Ⅳ: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EU 금융감독 및 규제변화 137-747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대로 246
T.02-3460-1001 F.02-3460-1122 http://www.kiep.go.kr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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